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불수불탐분/1/복덕에 탐착 하지 않아야 대승보살이니라

通達無我法者 2008. 10. 10. 18:52

 

 

복덕에 탐착 하지 않아야 대승보살이니라

 

 
<사진설명>경주 불국사 극락전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앞의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에서는 우리 마음의 근원적 바탕인 진리는 비록 형상을 떠나 있지만, 마치 봄이 색과 소리 없이 꽃을 피워주듯, 인연에 의해 현실적으로 모습을 나타내므로 결코 허무한 것이거나 단멸의 상태인 것이 아니라고 설(說)해졌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여기의 불수부탐분(不受不貪分)에서는, 단멸(斷滅)이 아닌 법신(法身)의 실상(實相)을 깨닫기 위해 금강경을 수지하고 무상(無相)의 보시(布施)로 중생을 제도하면 복덕을 얻게 되지만, 대승보살은 그 복덕을 수용하려 하지도 않고 열반에 탐착하지도 않는다는 내용이 설(說)해집니다.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持用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세계에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한다면, 또 다시 어떤 보살이 일체의 법이 텅 비어 ‘나’라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진리를 얻는다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에 비해 얻는 바 공덕이 더 수승하나니~”

 

[六祖]通達一切法 無能所心者 是名爲忍 此人 所得福德 勝前七寶之福也

일체 법을 통달해서 능소의 마음이 없는 것을 인(忍)이라 이름 하니, 이 사람의 얻는 바 복덕은 앞의 칠보를 보시하는 복덕보다 수승하다.

 

[冶父]耳聽如聾 口說如啞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으로 말해도 벙어리 같도다.

 

〈보충설명〉 너와 나를 구별하는 능소심(能所心)을 여의면, 세상의 소리나 눈에 보이는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내 본래자리에 머물러 너나없이 평등하게 삽니다. 그러면 귀에 들리는 소리에도 얽매이지 않고 말에도 탐착함이 없어지니까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을 열어도 벙어리 같아집니다.

 

馬下人因馬上君 有高有下有疏親 一朝馬死人歸去 親者如同陌路人 是舊時人 改劫舊時行履處
말 아래 사람은 말 위의 주인으로 말미암아 고하(高下)와 소친(疏親)이 생기도다. 어느 날, 말도 죽고 주인도 죽으니 친했던 사람들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똑같도다. 이는 다만 옛 사람이 다시 옛날의 살림으로 돌아갔을 뿐이로다.

 

〈보충설명1〉 주인과 하인의 신분 등은 진실된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본래 우리의 마음은 분별이 없었는데 홀연히 일어난 ‘나’라는 상(相)에 얽매여 높고 낮고, 가깝고 먼 사람을 만들어 괴로움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강경을 읽고 수행해서 진리를 깨달으면 옛 부터의 청정한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보충설명2〉 ‘친자여동맥로인(親者如同陌路人)’은 전국시대의 소진장(蘇秦張)이라는 사람의 시(詩)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白馬紅纓彩色新  不因親者强來親

흰 말에 붉은 갓끈 풍채가 훤하니, 친할 까닭 없는데도 억지로 친한 척.

一朝馬死黃金盡  親者如同陌路人

어느 날 말도 죽고 돈도 떨어지니, 친했던 사람도 길거리 사람 같네.

 

何以故 須菩提 以諸菩薩 不受福德故 須菩提 白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須菩提 菩薩所作福德 不應貪着 是故 說不受福德

“어떤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여! 모든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수보리여! 보살은 지은 바 복덕을 응당 탐하거나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까닭으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六祖]菩薩 所作福德 不爲自已 意在利益一切衆生 故 言不受福德也

보살의 지은 바 복덕은 자기를 위함이 아니요, 뜻이 일체 중생의 이익에 있기 때문에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冶父]裙無腰袴無口

치마에 허리가 없고, 바지에 양발을 넣는 통로가 없도다.

 

〈보충설명1〉 치마에 허리끈이 없고 바지에 양발을 집어넣을 통로가 없으면 그 치마와 바지는 있어도 쓸모 없게 됩니다. 중생에게 환원시키는 보살의 보살행도 그 복덕이 질펀하게 널려있지만 탐착하지 않기 때문에 보살에게는 필요 없는 복덕인 것입니다.

 

〈보충설명2〉 위와 같이 상식을 부정하여 진리를 들어내는 것을 전통적으로 ‘반상합도(反常合道)’라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시들이 많이 있는데 하나만 예를 들겠습니다.

 

打起黃鶯兒  莫敎枝上啼

노란 꾀꼬리 쫓아버려 나뭇가지 위에서 울게 하지 말라.

啼時驚妾夢  不得到遼西

울 때에 님 만나는 꿈이 깨어 요서땅에 이르지 못하리니.

似水如雲一夢身  不知此外更何親

흐르는 물과 구름처럼 살으리. 꿈같은 내 몸이여! 알 수 없어라. 이 외에 다시 무엇과 친하겠는가?

箇中不許容他物  分付黃梅路上人

이 낱 가운데 다른 물건 허용치 않으니, 황매산의 사람에게 분부하노라.

 

〈보충설명〉 사조(四祖) 도신(道信) 스님을 뵙고 오조(五祖) 홍인(弘忍)스님이 “이 마음이 너무 괴로우니 한 말씀 해주십시오” 했습니다. 그 때 도신 스님은 “누가 너를 얽어매었느냐?”고 응답하셨습니다. 스승의 이 법문을 듣고 황매산의 홍인스님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법신자리와 보살의 진리자리는 물이나 구름같이 어디에도 매이지 않기 때문에 복덕이란 것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