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어록(達磨語錄)

달마의 실체론(實體論)-5. 마음은 인간의 가장 큰 적이다

通達無我法者 2008. 10. 10. 19:17

 

 

그대가 미혹되는 순간 여섯 가지 감각과 그 경계는 고통과 죽음을 맛보게 된다. 그는 예리한 눈을 가졌고 이 짧은 말속에 엄청난 뜻이 담겨 있다. 그는 그대가 미혹되었을 때, 그대가 마음의 작용에 떨어졌을 때, 다섯 가지 요소가 이 세계와 그대의 여섯 가지 감각을 만들어낸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말은 매우 이상한 말이다. 금세기에 와서야 겨우 과학이 인간의 여섯 번째 감각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경전에서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달마만이 여섯 번째 감각을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그 감각은 얼마 전에야 비로소 발견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의 귀속에 있다. 귀는 항상 다섯 가지 감각 중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귀 속에 한 가지 감각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평형감각이다. 만약 그대가 귀를 다친다면, 그대는 더 이상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치 그대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게 될 것이다. 술에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는 것은 알코올이 그의 평형감각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모든 약물이 이 여섯 번째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그대가 약물중독이 되면 그대는 몸의 균형을 잃게 된다.

한 술취한 사람이 어는 날 밤에 집으로 왔다. 그는 잠긴 문을 열려고 애를 썼지만 손이 떨려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도저히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소리쳤다.

"맙소사! 이게 왜 이렇게 안 되지? 지진이 났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잖아!"

한 경찰관이 그곳을 지나다가 그 술취한 사람을 보고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회사 일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경찰관은 그에게 와서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가 대답했다.
"아이쿠, 친절도 하셔라. 당신이 이 집을 붙잡고 있는 순간에 내가 열쇠 구멍 속에 열쇠를 꽂으면 될 거요. 그러니 집을 좀 붙잡고 있으시오. 굉장한 지진이 일어나고 있소."

여섯 번째 감각이 귀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금세기에 와서야 외과 의사들은 몸의 평형감각이 귀속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달마는 그대가 미혹될 때, 그대가 마음에 있을 때, 그대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여섯 가지 감각은 그대에게 고통과 죽음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말한다.

그대가 각성하는 순간 여섯 가지 감각과 그 경계는 열반과 불멸을 맛본다. 달마는 그대가 마음을 초월할 때, 그대의 여섯 가지 감각은 열반과 불멸을 맛본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다 똑같다. 이 세상이 그대의 오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대가 한번 마음을 초월하게 되면, 그때 그것들은 열반과 불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달마는 육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이 세상을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대의 잠에 대해서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대가 세상을 포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그대가 육체를 고문하도록 원치 않는다. 이 몸과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대가 각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대는 지금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침묵으로 들어가라. 그 침묵은 그대의 각성을 계속 유지시켜 줄 것이다. 그대의 존재 전체가 깨어 있는 의식으로 빛날 것이다. 그때 이 육체는, 이 감각은, 이 세상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뀐다. 그것이 바로 열반이며 불멸이다.

도(道)를 구하는 자는 자신을 초월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을 발견할 때 그는 거기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그가 도를 발견할 때 역시 거기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된다. 그대가 도를 찾는 데 마음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벌써 미혹된 것이며 거기에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게 된다. 그대가 깨어 있을 때 거기에 불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깨어 있음이 곧 불성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매우 아름다운 말이다. 그대는 물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대가 미혹되었을 때 불성은 존재하지 않다가, 그대가 각성했을 때 불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달마는 그 반대로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옳았다. 그대가 미혹되었을 때 그대는 모든 종류의 환상을 갖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 그대 내부에는 욕망이 있다. 그대가 그것을 인식할 때도 있고 그것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릴 때도 있다. 그 욕망은 부처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각성하고 싶은 마음, 깨닫고 싶은 마음 말이다.

가장 깊은 마음속에서조차 그대의 어두운 무의식 한구석에서 깨달음에 대한 열망이 일어나고 있다. 그 누구도 탐욕이나 분노나 어리석음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달마가 이렇게 말한 것이 맞다.
"그대가 미혹되었을 때 불성이 존재한다. 그대가 깨어 있다면 불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깨어 있음이 바로 불성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깨어 있을 때, 그대는 이미 부처이며 따라서 불성에 대한 추구는 사라진다. 그대가 부처일 때, 그대는 부처가 되겠다는 생각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은 그것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 순수함이 그것 자체를 인식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불성은 그것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만 인식되는 것이다. 집에 도착한 사람에게는 불성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부처는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지식은 다른 존재에 대해서 아는 것이다. 그러나 거울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비출 수 있지만 자신은 비출 수 없다. 거울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삶과 죽음을 미워하지도 말고 사랑하지도 말라. 그대의 모든 생각이 미혹되지 않도록 하라. 삶 속에서 그대는 열반이 시작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 속에서 어떤 재생도 없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서양에서는 그 누구도 환생에 대해서 말한 사람이 없었다. 플라톤이나 칸트, 포이에르바흐, 러셀, 사르트르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도 그것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들은 위대한 천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생에 대해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생각은 오직 한 생애에만 매여 있었고 그것은 너무나 큰 비극이었다.

존재계는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풍부함으로 넘쳐흐른다. 모든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오직 몇몇 희귀한 사람만 빼놓고 말이다. 그리고 그 희귀한 사람들은 바로 깨달은 자들이다. 깨달은 자의 죽음은 궁극적인 죽음이다. 그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육체에 속박되지 않는다. 그는 다시는 마음에 의해 고통을 받지 않는다. 그의 의식은 얼음 한 조각이 바닷물에 녹아들 듯이 완전히 녹아들어 전체와 하나가 된다. 그는 그야말로 마지막을 맞이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특정한 모습으로, 특정한 부분으로 나누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바로 우주 자체가 될 것이다.

사람이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온 우주는 더 한층 높은 의식 단계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의 의식이 존재계 전체에 퍼지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존재계는 더욱 풍부해진다. 한 사람의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 그것은 온 우주에 해답이 된다. 존재계는 갈수록 풍부해지고 아름다워지며 즐거움이 넘쳐나게 된다.

형체에 미혹되지 않고 형체를 보며, 소리에 미혹되지 않고 소리를 듣는 것이 바로 해탈의 상태이다. 형체에 집착하지 않는 눈이 바로 선(禪)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소리에 집착하지 않는 귀 역시 선(禪)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간단히 말해서 모든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자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다. 미혹됨이 없을 때 마음은 불국토(佛國土)가 된다. 미혹되는 순간 마음은 지옥(地獄)으로 변한다.

위대한 선사 한 사람이 생각난다. 일본의 황제는 그를 만나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 선사가 있는 승원으로 가는 길은 매우 위험했다. 거친 들판과 숲과 험한 산을 넘어가야 했다. 하지만 결국 황제는 그 선사를 만나러 갈 것을 결심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죽음이 오기 전에 그는 죽음이 파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드디어 선사가 사는 승원에 도착해서 선사가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선사에게 가서 절을 한 후에 말했다.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천당과 지옥이 존재합니까? 나는 죽음이 가까웠고 내 관심사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디에 갈 것인지, 천당인지 지옥이지 말입니다."

그러자 그 선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우리의 황제가 이렇게 바보인지 몰랐다."

그러자 황제는 바보라는 소리에 그만 화가 나서 칼을 빼어 들었다.

그리고는 선사의 목을 내리치려는 순간 선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이 지옥의 문이다."

그 말에 황제는 행동을 멈추고 칼을 거두었다. 그리고 선사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선사가 또 말했다.
"그대는 이미 천당에 들어갔다. 이제 가라. 분노와 폭력은 지옥의 문이다. 그리고 지옥은 그대 마음속에 있다. 그러나 이해와 자비와 침묵은 천당의 문이다. 그것들은 너의 마음을 초월해서 있다. 나는 그대에게 그 둘 다를 경험하게 했다. 내가 그대를 바보라고 부른 것을 용서하라.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나는 그대가 스스로 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제 잊어버려라."

그러자 그 황제는 고마움으로 선사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는 살아오는 동안 그토록 확실한 대답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그는 가설 속에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에 만난 사람은 엄청난 사람이었다. 그 선사는 왕을 바보라고 부름으로 해서 순간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에게 천당과 지옥의 문을 둘 다 보여 주었다. 그대의 마음이 지옥이다. 그대의 마음을 초월하는 것이 극락이다. 마음을 초월하라. 이것이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의 본질이다.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