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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D9.「뽓타빠다 경」(Potthapāda) - 인식의 문제, 자아의 문제

通達無我法者 2010. 10. 11. 22:38

「뽓타빠다 경」(Pot*t*hapāda Sutta, D9) - 인식의 문제, 자아의 문제

장아함28.포타바루경(布咤婆樓經)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해제]

 

 「뽓타빠다 경」(Pot*t*hapāda Sutta, D9)


인간의 정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인간을 설명하시면서 심리현상들[行, 상카라] 가운데서 인식[想, 산냐]을 따로 독립시켜 오온에다 따로 인식의 항목[想蘊]을 넣으셨다. 그러면 도대체 이러한 인식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인식이 있다면 인식하는 주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영원한 인식이 있어서 그것을 자아라고 불러야 하지 않는가?

 

이런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 바로 본경이다. 본경에서는 이러한 인식과 인식을 하는 자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존재하는가를 두고 뽓타빠다라는 유행승과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고 심도 깊은 대화가 전개된다. 역자는 본서 제1권의 중요한 경 세 가지만을 들라면 주저하지 않고「범망경」(D1)과「사문과경」(D2)과 본경을 들고 싶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주신다.
① 인식은 수행의 정도에 따라 바뀐다.
② 무소유처가 인식의 구경이다.
③ 인식의 완전한 소멸도 가능하다. 그것을 상수멸이라 한다.
④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은 그것이 아무리 미묘하고 섬세하다 하더라도 존재론적 실체인 자아가 아니다.
⑤ 어떤 방식으로 자아를 상정하든 그것은 바뀔 수밖에 없다. 존재란 흐름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유가 응유(curd)로, 생 버터로, 정제된 버터(ghee)로, 최상의 버터[醍醐]로 바뀌어 가는 것과 같다. 자아라는 것은 흐름의 특정한 기간의 특정한 상태를 인습적으로 이름붙인 것일 뿐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

 

이처럼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은 단순히 대상을 무엇이라고 아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은 매순간 촐랑대는 그런 종류의 인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행을 통해서 실현되는 삼매의 경지 혹은 경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인식(sukhuma-saññā)을 말하고, 이는 사문들이 삼매 수행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일종의 이념이나 이상향 등을 나타내는 술어이다. 그러므로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想, 산냐]은 자아라는 인식[我相], 중생이라는 인식[衆生相], 영혼이라는 인식[壽者相], 개아(個我)라는 인식[人相]으로 대표되는 금강경의 4상(相, 想, 산냐)과 일맥상통한다.

 

본경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처럼 ‘존재론적 실체, 즉 자아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존의 고구정녕하신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뽓타빠다는 안타깝게도 계속 존재론적인 실체를 상정하고 그것을 세존께 질문한다.

 

본경은 무언가 궁극적 실재를 상정하는 그런 관념과 관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결코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우리 불교 수행자들도 깊이 새겨볼 말씀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름만 불교를 하고 있지 어쩌면 대아, 진아, 주인공, 불성, 여래장이라는 존재론적인 실재를 상정하고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깨치고 그것과 하나 되거나, 아니면 그것의 은총과 광명으로 살려는 발상을 굳게 움켜쥐고 놓지 못하고 있지나 않는가? 참으로 이런 다른 발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라 다른 수행, 다른 스승, 다른 가르침을 불교라는 이름으로 거머쥐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자는 부처님의 고구정녕한 메시지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뽓타빠다는 세존의 말씀을 공감하고 세존을 존경하였기에 세존의 신도는 되었지만 자아라는 존재론적인 단정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세존 문하로 출가하지는 못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본서 제8경의 나체 수행자 깟사빠와 대조가 된다. 깟사빠는 계․정․혜 삼학의 길이야말로 사문이 닦아야 할 본업이라는 세존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해서, 고행이야말로 사문의 본업이라는 그의 견해를 버리고 세존의 문하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본경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찟따는 자아와 세상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관심이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해탈․열반의 실현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파악하고 부처님 문하에 여덟 번째로 출가를 결심한다. 그는 이전에 일곱 번이나 출가와 환속을 거듭했지만, 본경을 통해서 부처님의 이와 같은 심심미묘한 가르침을 정확히 파악하였기에 다시 여덟 번째로 출가를 감행하여 다시는 환속하지 않았고 아라한이 되었다. 존재론적인 가설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유행승 뽓타빠다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디가니까야에 실린 역자 주 : 본경은‘인식과 인식을 하는 자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존재하는가?’를 두고 세존과 뽓타빠다라는 유행승이 전개해가는 여러 측면의 다양하고 심도 깊은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경의 제목도 「뽓타빠다 경」(Poţţhapāda Sutta) 이다. 본경은 중국에서 「포타바루 경」(包吒婆樓經)으로 한역되어 『장아함』의 25번째 경으로 전해온다. 물론 여기서 포타바루(包吒婆樓)는 뽓타빠다의 음역이다.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은 단순히 대상을 무엇이라고 아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은 매순간 촐랑대는 그런 종류의 인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행을 통해서 실현되는 삼매의 경지 혹은 경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인식(sukhuma-sańńā)을 말하고, 이는 사문들이 삼매 수행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일종의 이념이나 이상향 등을 나타내는 술어이다. 그러므로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 상(想, 산냐)은 자아라는 인식[我相], 중생이라는 인식[衆生相], 영혼이라는 인식[壽者相], 개아라는 인식[人相]으로 대표되는 금강경의 4상(相, 想 산냐)과 일맥상통한다. 역자는 본서 제1권에서 가장 중요한 경 세 가지만을 들라면 주저하지 않고 「범망경」(D1)과 「사문과경」(D2)과 본경을 든다.]

 

 

 


 

 


§. 서언
§. 뽓타빠다 유행승
§. 인식의 소멸에 대해서
§. 원인과 더불어 인식은 일어나고 소멸한다
§. 인식의 구경
§. 인식의 구경은 하나인가
§. 먼저 인식이 생기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긴다.
§. 인식은 자아인가
§.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와 뽓타빠다
§. 하나로 확정되지 않은 법과 하나로 확정된 법
§.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 느끼며 병들지 않는가
§.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미녀의 비유
§. 사다리의 비유
§. 세가지 자아의 획득
§. 뽓타빠다의 귀의
§. 찟따가 구족계를 받음

 

 

서언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뽓타빠다 유행승은 삼백 명 정도의 많은 유행승의 회중과 함께 띤두까 나무로 에워싸여 있고 하나의 강당을 가진 말리까 원림(園林)에 있는 강연장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 가셨다.

 

 

2. 그때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드셨다. ‘지금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이르다. 나는 이제 하나의 강당만 있는 말리까 원림으로 뽓타빠다 유행승을 만나러 가는 것이 좋겠다.’그래서 세존께서는 띤두까 나무 근처에 있으며 하나의 강당만 가진 말리까 원림(園林)에 있는 강연장으로 가셨다.

 

 

뽓타빠다 유행승

 

 

3. 그때 뽓타빠다 유행승은 많은 유행승의 무리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시끄럽고 큰 목소리로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즉 왕의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들 이야기, 군대 이야기, 겁나는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수 이야기, 옷 이야기, 침대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관한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들이었다.

 

 

4.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자신의 회중을 조용히 하도록 하였다. “존자들은 소리를 죽이시오. 존자들은 소리를 내지 마시오. 사문 고따마께서 오고 계십니다. 저 존자께서는 조용함을 좋아하고 조용함으로 단련되고 조용함을 칭송합니다. 이제 우리 회중이 조용함을 알면 그분은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 유행승들은 침묵하였다.

 

 

5. 그러자 세존께서는 뽓타빠다 유행승에게로 다가가셨다.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 보고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을 환영합니다. 세존께서는 오랜만에 여기에 오실 기회를 만드셨습니다. 이리로 와서 앉으십시오. 세존이시여, 이것이 마련된 자리입니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뽓타빠다 유행승도 역시 다른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뽓타빠다 유행승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그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하다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인식의 소멸에 대해서

 

 

6. 이렇게 말씀하시자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앉아서 한 이야기는 그냥 두십시오. 그 이야기는 세존께서 나중에 들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근래에 며칠간 여러 외도 사문ㆍ바라문들이 토론 장소에 모여서 함께 자리를 했는데 그때‘존자들이여, 어떻게 해서 인식의 소멸은 있게 됩니까?’라고 인식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거기서 어떤 자들은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인간의 인식은 일어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합니다. 일어날 때에는 인식하는 자가 되고 멸할 때에는 인식 없는 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인식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두고 다른 자는 ‘존자들이여,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존자들이여, 인식이야말로 인간의 자아입니다. 그것은 다가오기도 하고 물러가기도 합니다. 다가올 때에는 인식하는 자가 되고 물러갈 때에는 인식 없는 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인식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두고 다른 자는 ‘존자들이여,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존자들이여, 큰 신통과 큰 위력을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인식을 집어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합니다. 집어넣을 때에는 인식하는 자가 되고 빼낼 때에는 인식 없는 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인식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두고 다른 자는 ‘존자들이여,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존자들이여, 큰 신통과 큰 위력을 가진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인식을 집어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합니다. 집어넣을 때에는 인식하는 자가 되고 빼낼 때에는 인식 없는 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인식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제게는 세존에 대한 기억이 일어났습니다. ‘오, 참으로 세존이 계시는구나. 오, 참으로 선서(善逝)께서 계시는구나. 그분이야말로 이러한 법들에 아주 능통한 분이시지.’라고.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인식의 소멸에 대해서 능숙하시고 그 본성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어떻게 해서 인식은 소멸합니까?”

 

 

원인과 더불어 인식은 일어나고 소멸한다

 

 

7. “뽓타빠다여, 여기서‘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인간의 인식은 일어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문ㆍ바라문들은 처음부터 틀렸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뽓타빠다여, 원인과 더불어 조건과 더불어 인간의 인식은 일어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공부지음이란 무엇인가?”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며, 영지(靈知)와 실천이 구족한 분[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부처님[佛]이며, 세존(世尊)이다.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법을 설한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막혀있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동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들을 받아지녀 공부짓는다. 유익한 몸의 업과 말의 업을 잘 갖추고, 생계를 청정히 하고, 계를 구족하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고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계를 구족하는가? 뽓타빠다여, 여기 비구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윈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겸손하고 자비로운 자가 되어 일체 생명의 이익을 위하고 연민하며 머문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중간 생략>⋯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다음과 같은 하천한 재주를 부려 삿된 생계로 생계를 꾸린다. 즉 신의 축복을 비는 의식, 귀신을 부르는 의식, ⋯ 이전에 처방한 약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진통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영위하는 삿된 생계를 멀리 여의었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8.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뽓타빠다여, 예를 들면 관정(灌頂)한 끄샤뜨리야 왕은 적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뽓타빠다여, 그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구족한다.”

 

 

9. “(1) 뽓타빠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는가?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 귀로 소리를 들음에 ⋯ 코로 냄새를 맡음에 ⋯ 혀로 맛을 봄에 ⋯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 마노[意]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2)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잘 갖춘다 ⋯


(3) 비구는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


(4)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 해태와 혼침을 버려 〮⋯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


〮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자기 마음속에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제거되었음을 자신에게서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풀려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다다른 사람으로 여긴다.”

 

 

10. “뽓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로운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그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있었던 그의 감각적 욕망의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者)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부지음이다.”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11.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부지음이다.”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12.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평온에 기인한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평온에 기인한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부지음이다.”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13.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평온에 기인한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부지음이다.”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14.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물질[色]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空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물질에 대한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부지음이다.”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15.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무한한 알음알이[識]’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부지음이다.”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16.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일체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무소유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무소유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부지음이다.”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인식의 구경

 

 

17. “뽓타빠다여, 비구는 [이처럼] 여기서 [초선의 경지에서] 고유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는데 그때 그는 그 경지로부터 다시 [제2선이라는] 다른 경지로, 다시 [제3선이라는] 다른 경지로 이렇게 점차적으로 인식의 구경(究竟)을 체험하게 된다. 이제 그가 인식의 구경에 서있을 때에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쁘다.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일 내가 의도하고 계속적으로 [업을] 형성해 나가면 이런 나의 인식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인식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나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으리라.’라고. 그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가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인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소멸을 체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알아차리는 인식이 차례대로 소멸하는 증득[等至]이 있다.”

 

 

18.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 하는가? 그대는 이전에 알아차리는 인식이 차례대로 소멸하는 증득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이 설하신 것을 이와 같이 잘 알겠습니다. ‘뽓타빠다여, 비구는 [이처럼] 여기서 [각각의 경지에] 고유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는데 그때 그는 어떠한 경지로부터 다시 다른 경지로, 이렇게 점차적으로 인식의 구경을 체험하게 된다. 이제 그가 인식의 구경에 서있을 때에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쁘다.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일 내가 의도하고 계속적으로 [업을] 형성해 나가면 이런 나의 인식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인식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나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으리라.’라고. 그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가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인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소멸을 체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알아차리는 인식이 차례대로 소멸하는 증득[等至]이 있다.’라고.”


“그러하다, 뽓타빠다여.”

 

 

인식의 구경은 하나인가

 

 

19.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인식의 구경이 하나라고 천명하십니까, 아니면 개별적 인식의 구경들을 천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인식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고 개별적인 인식의 구경들도 천명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인식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시고 개별적인 인식의 구경들도 천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소멸을 체험할 때마다 나는 인식의 구경을 천명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나는 인식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고 개별적인 인식의 구경들도 천명한다.”

 

 

먼저 인식이 생기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긴다.

 

 

20. “세존이시여, 그러면 먼저 인식이 생기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깁니까, 아니면 먼저 지혜가 생기고 그 다음에 인식이 생깁니까, 아니면 인식과 지혜가 전도 후도 없이 [동시에] 생깁니까?”


“뽓타빠다여, 인식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긴다. 그러나 인식이 생기면 지혜도 반드시 생긴다.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참으로 이것에 조건 지워져서 나의 지혜는 생긴다.’라고. 뽓타빠다여, [조건 지워져서 생긴다는] 이런 방식을 통해서‘인식이 먼저 생기고 다음에 지혜가 생긴다. 그러나 인식이 생기면 지혜도 반드시 생긴다.’라고 알아야 한다.”

 

 

인식은 자아인가

 

 

21. “세존이시여, 그러면 인식이 인간의 자아입니까, 아니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입니까?”


“뽓타빠다여, 그런데 그대는 무엇을 두고 자아라고 이해하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거칠고 물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을 저는 자아라고 이해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가 거칠고 물질로 되었고 네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을 자아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그대에게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런 방식에 의한다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나니, 거칠고 물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자아가 머물러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생기고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는‘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르게 되고 만다.’고 알아야 한다.”

 

 

22.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것을 자아라고 이해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가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것을 자아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그대에게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런 방식에 의한다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나니,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자아가 머물러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생기고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는‘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르게 되고 만다.’고 알아야 한다.”

 

 

23. “세존이시여, 저는 물질이 아니며[無色] 인식으로 이루어진 것을 자아라고 이해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가 물질이 아니며 인식으로 이루어진 것을 자아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그대에게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런 방식에 의한다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나니, 물질이 아니며 인식으로 이루어진 자아가 머물러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생기고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는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르게 되고 만다.’고 알아야 한다.

 

 

24.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저는 인식이 인간의 자아인지, 아니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까?”


“뽓타빠다여, 그대와 같이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다른 [가르침을] 좋아하고 다른 수행을 추구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자는 참으로 인식이 인간의 자아인지, 아니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지를 알기 어렵다.”

 

 

25. “세존이시여, 만일 저와 같이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다른 [가르침을] 좋아하고 다른 수행을 추구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자는 참으로 인식이 인간의 자아인지, 아니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지를 알기 어렵다고 하신다면, 세존이시여,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세존이시여, 그러면‘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은 끝이 있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세상은 끝이 있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세상은 끝이 없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세상은 끝이 없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26. “고따마 존자시여,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27. “고따마 존자시여,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고따마 존자시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無記]

 

 

28. “세존이시여, 그러면 왜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십니까?”


“뽓타빠다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출세간]법에 바탕한 것이 아니며,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고,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29.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엇을 설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30. “세존이시여, 그러면 왜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청정범행의 시작이며, 전적으로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설명한다.”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선서시여.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셨다.

 

 

31. 그러자 그 유행승들은 세존께서 나가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뽓타빠다 유행승에게 모든 측면에서 야유와 험한 말을 퍼부었다. “뽓타빠다 존자는 이처럼 사문 고따마가 말할 때마다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선서시여.’라고 맞장구를 처댑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문 고따마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거나‘생명과 몸은 같다’라거나‘생명과 몸은 다르다’거나‘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라거나‘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거나‘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나로 확정된 법을 설하신 것을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뽓타빠다 유행승은 그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들이여, 나도 사문 고따마께서 확실하게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나로 확정된 법을 설하신 것을 보지 못했소. 그렇지만 사문 고따마께서는 사실이고 옳고 참되며 [출세간]법에 굳게 서고 [출세간]법에 확고부동한 그러한 도닦음을 천명하시오. 그런데 사실이고 옳고 참되며 법에 굳게 서고 법에 확고부동한 그러한 도닦음을 천명하시는데 어떻게 나와 같이 지자가 사문 고따마의 좋은 말씀을 두고 좋은 말씀이라고 기뻐하지 않겠소?”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와 뽓타빠다

 

 

32. 이삼 일이 지난 뒤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와 뽓타빠다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왔다. 와서는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때 세존께서 나가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그 유행승들은 제게 모든 측면에서 야유와 험한 말을 퍼부었습니다. ‘뽓타빠다 존자는 이처럼 사문 고따마가 말할 때마다‘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선서시여.’라고 맞장구를 쳐댑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문 고따마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나로 확정된 법을 설하신 것을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저는 그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존자들이여, 나도 사문 고따마께서 확실하게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나로 확정된 법을 설하신 것을 보지 못했소. 그렇지만 사문 고따마께서는 사실이고 옳고 참되며 법에 굳게 서고 법에 확고부동한 그러한 도닦음을 천명하시오. 그런데 사실이고 옳고 참되며 법에 굳게 서고 법에 확고부동한 그러한 도닦음을 천명하시는데 어떻게 나와 같은 지자가 사문 고따마의 좋은 말씀을 두고 좋은 말씀이라고 기뻐하지 않겠소?’라고.”

 

 

하나로 확정되지 않은 법과 하나로 확정된 법

 

 

33. “뽓타빠다여, 그 유행승들은 모두 눈이 멀었고 눈이 없구나. 그대만이 그들 가운데 유일하게 눈을 가진 자로구나. 뽓타빠다여, 나는 [열반의 구현이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법들을 설하고 천명하기도 하고,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지 못한 법들을 설하고 천명하기도 한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지 못한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하는가? 뽓타빠다여, 나는‘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나는‘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세상은 유한하다.’라는 것은 ⋯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는 것은 ⋯ ‘생명과 몸은 같다.’라는 것은 ⋯ ‘생명과 몸은 다르다.’라는 것은 ⋯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것은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은 [모두]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왜 나는 이러한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지 못한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하는가? 뽓타빠다여, 이러한 것들은 참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며,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법들은 하나로 확정되지 않는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나는 어떤 것이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하는가? 뽓타빠다여, 나는‘이것은 괴로움이다.’라는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하다. 나는‘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는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나는‘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는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하다. 나는‘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는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왜 나는 이러한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하는가? 뽓타빠다여, 이러한 것들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청정범행의 시작이며, 전적으로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것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하다.”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 느끼며 병들지 않는가

 

 

34. “뽓타빠다여, 어떤 사문ㆍ바라문들은‘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한다. ‘그대 존자들이‘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인가?’


이렇게 물어서 그들이 ‘그렇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면 그들에게 나는‘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알고 보면서 머뭅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하루 낮과 하루 밤이나 반나절이라도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는 자아를 인식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그러면 그대 존자들은‘이것이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이며 이것이 도닦음이다.’라고 알기나 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에 태어나서‘착한 사람들이여,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잘 도를 닦으시오. 착한 사람들이여, 바르게 도를 닦으시오. 착한 사람들이여, 우리도 이와 같이 도를 닦아,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얻었소이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문ㆍ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문ㆍ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미녀의 비유

 

 

35.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나는 이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갈망하고 탐한다.’고 말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게‘이 사람아, 그대는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끄샤뜨리야인지 바라문인지 와이샤인지 수드라인지 알기는 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런 그에게 다시, ‘이 사람아, 그대는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갈망하고 탐하는데 나라에서 제일가는 그 미녀의 이름이 무엇이고 성이 무엇인지,[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피부가] 검은지 흰지 황색인지, 어떤 마을이나 성읍이나 도시에 사는지 아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 다시‘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다시, ‘이 사람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여인]을 갈망하고 탐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렇습니다.’라고 그가 대답할 것이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36. “뽓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문ㆍ바라문들은‘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한다. ‘그대 존자들이‘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입니까?’이렇게 물어서 그들이‘그렇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면 나는 그들에게‘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알고 보면서 머뭅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하루 낮과 하루 밤이나 반나절이라도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는 자아를 인식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그러면 그대 존자들은‘이것이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이며 이것이 도닦음이다.’라고 알기나 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에 태어나서‘착한 사람들이여,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잘 도를 닦으시오. 착한 사람들이여, 바르게 도를 닦으시오. 착한 사람들이여, 우리도 이와 같이 도를 닦아,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얻었소이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문ㆍ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문ㆍ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사다리의 비유

 

 

37. “뽓타빠다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큰 사거리에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런 그에게‘이 사람아, 그대는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그 누각이 동쪽 방향에 있다고 아는가? 아니면 남쪽 방향이나 서쪽 방향이나 북쪽 방향이나 위나 아래나 가운데에 있다고 아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그에게 다시‘이 사람아, 그대는 그대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그런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드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38. “뽓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문ㆍ바라문들은‘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 가졌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한다. ‘그대 존자들이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입니까?’이렇게 물어서 그들이‘그렇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면 나는 그들에게‘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알고 보면서 머뭅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하루 낮과 하루 밤이나 반나절이라도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는 자아를 인식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그러면 그대 존자들은‘이것이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이며 이것이 도닦음이다.’라고 알기나 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에 태어나서‘착한 사람들이여,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잘 도를 닦으시오. 착한 사람들이여, 바르게 도를 닦으시오. 착한 사람들이여, 우리도 이와 같이 도를 닦아,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얻었소이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문ㆍ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문ㆍ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세가지 자아의 획득

 

 

39. “뽓타빠다여, 나는 세 가지 자아의 획득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① 거친 자아의 획득 ②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 ③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무엇이 ① 거친 자아의 획득인가? 거칠고 물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몬물질[四大]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것 ― 이것이 거친 자아의 획득이다. 무엇이 ②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인가? 물질을 가졌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것 ― 이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다. 무엇이 ③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인가? 무색이요, 인식으로 이루어진 것 ― 이것이 무색의 자아의 획득이다.”

 

 

40. “뽓타빠다여, 나는 거친 자아의 획득을 버리기 위해서 법을 설한다.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런데 그대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머묾은 괴로움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러나 결코 그렇게 여겨서는 안된다.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환희가 있을 것이고 희열과 경안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을 것이다. 그런 머묾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41. “뽓타빠다여, 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을 버리기 위해서 법을 설한다.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런데 그대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머묾은 괴로움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러나 결코 그렇게 여겨서는 안된다.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환희가 있을 것이고 희열과 경안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을 것이다. 그런 머묾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42. “뽓타빠다여, 나는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을 버리기 위해서 법을 설한다.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런데 그대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머묾은 괴로움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러나 결코 그렇게 여겨서는 안된다.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환희가 있을 것이고 희열과 경안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을 것이다. 그런 머묾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43. “뽓타빠다여,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거친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이다.


‘도반이여, 이것이 바로 거친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오.’라고.”

 

 

44. “뽓타빠다여,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이다.


‘도반이여, 이것이 바로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오.’라고.”

 

 

45. “뽓타빠다여,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이다.


‘도반이여, 이것이 바로 그 물질[無色]이 아닌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오.’라고.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이것은 아주 정확하고 멋진 말이 아니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것은 아주 정확하고 멋진 말씀입니다.”

 

 

46. “뽓타빠다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큰 사거리에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런 그에게 다른 사람이 다가가서‘이 사람아, 그대는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그 누각이 동쪽 방향에 있다고 아는가? 아니면 남쪽 방향이나 서쪽 방향이나 북쪽 방향이나 위나 아래나 가운데에 있다고 아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묻자 그는‘도반이여, 저것이 바로 그 누각이오. 나는 저 누각을 아래로부터 올라가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오.’라고 말한다고 하자.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아주 정확하고 멋진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정확하고 멋진 말을 한 것입니다.”

 

 

47. “뽓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거친 자아의 획득이기에 ⋯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기에 ⋯ 그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로 그 거친 자아의 획득인데 ⋯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인데 ⋯ 그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오.’라고.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이것은 아주 정확하고 멋진 말이 아니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것은 아주 정확하고 멋진 말씀입니다.”

 

 

48.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은 헛된 것이고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도 헛된 것이며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아의 획득만이 진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은 헛된 것이고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도 헛된 것이며 그때에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만이 진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은 헛된 것이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도 헛된 것이며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만이 진실입니다.”

 

 

49. “찟따여,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50. “찟따여, 만일 그대에게 묻기를‘그대는 과거에 존재했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대는 미래에 존재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대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라고 한다 하자. 이렇게 물으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제게 물으시기를‘그대는 과거에 존재했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대는 미래에 존재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대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라고 한다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존재했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미래에 존재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물으신다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찟따여 만일 다시 그대에게 묻기를, ‘그대가 과거에 자아를 획득했을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미래도 헛된 것이고 현재도 헛된 것이 아닌가? 그대가 미래에 자아를 획득할 때 그대에게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헛된 것이고 현재도 헛된 것이 아닌가? 그대가 현재의 자아를 획득할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헛된 것이고 미래도 헛된 것이 아닌가?’라고 한다 하자. 이렇게 물으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제게 물으시기를, ‘그대가 과거에 자아를 획득했을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미래도 헛된 것이고 현재도 헛된 것이 아닌가? 그대가 미래에 자아를 획득할 때 그대에게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헛된 것이고 현재도 헛된 것이 아닌가? 그대가 현재의 자아를 획득할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헛된 것이고 미래도 헛된 것이 아닌가?’라고 한다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자아를 획득했을 때 제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었고 미래도 헛된 것이고 현재도 헛된 것입니다. 제가 미래에 자아를 획득할 때 제게는 그 자아의 획득이 사실일 것이고 과거도 헛된 것이고 현재도 헛된 것입니다. 제가 현재의 자아를 획득할 때 제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헛된 것이고 미래도 헛된 것입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물으신다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51. “찟따여, 그와 마찬가지로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 없고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얻을 수 없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52. “찟따여, 예를 들면 소로부터 우유가 있고 우유로부터 응유(curd)가 되고 응유로부터 생 버터가 되고 생 버터로부터 정제된 버터(ghee)가 되고 정제된 버터로부터 최상의 버터[醍醐]가 되는 것과 같다.


우유가 되어 있을 때에는 응유라는 이름을 결코 얻지 못한다. 생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정제된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최상의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그때에는 오직 우유라는 이름만 얻을 뿐이다. 응유가 되어 있을 때에는 ⋯ 생 버터가 되어 있을 때에는 ⋯ 정제된 버터가 되어 있을 때에는 ⋯ 최상의 버터가 되어 있을 때에는 우유라는 이름을 결코 얻지 못한다. 응유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생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정제된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그때에는 오직 최상의 버터라는 이름만 얻을 뿐이다.”

 

 

53. “찟따여, 그와 마찬가지로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이런 [자아의 획득]들은 세상의 일반적인 표현이며 세상의 언어이며 세상의 인습적 표현이며 세상의 개념이다. 여래는 이런 것을 통해서 집착하지 않고 표현할 뿐이다.”

 

 

뽓타빠다의 귀의

 

 

54. 이렇게 말씀하시자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 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소서,”

 

 

찟따가 구족계를 받음

 

 

55. 그러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 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56.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성취하고자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재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뽓타빠다 경」이 끝났다.


 

출처 : 대승에서 초기불교로
글쓴이 : 명행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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