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제일 사리불(智慧第一 舍利佛) /다문제일 아난(多聞第一 阿難陀) / 두타제일 마하가섭(頭陀第一 迦葉)/신통제일 목건련(神通第一 目健連) / 해공제일 수보리(解空第一 須菩提)/ 설법제일 부루나(說法第一 富樓那) / 논의제일 가전연(論議第一 迦전廷) / 천안제일 아나율(天眼第一 阿那律) /지계제일 우바리(持戒第一 優波離) / 밀행제일 라후라 (密行第一 羅帿羅) /
지혜제일 사리불(智慧第一 舍利佛)
사리(舍利)는 어머니라는 뜻으로 弗 또는 弗多는 弗多羅의 준말이며 아들이라는 뜻. 아버지가 '실사'이기 때문에 '우파실사'라고도 한다. 사리불은 범어로 사리푸트라고 하는데 사리불다, 사리불나, 사리자라고도 하며 한문번역으로는 취로자, 신자(身子)라는 뜻이 되기도.
마갈타국 왕사성 북쪽 나라촌에서 출생, 이웃의 목건련과 함께 소년시절에 육사외도의 한 사람으로서 회의론을 내세워 당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산자야 벨라티 풋타의 문하에 들어가 산자야의 가르침을 7일만에 통달, 산자야가 죽고 죽고 없자, 스승을 대신하여 제자들을 교화하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부처님의 제자인 아설시의 전도에 의해 듣고 목건련과 함께 250명의 제자들과 부처님께 귀의. 자기수행에 정진함과 동시에 남을 교화하기에 노력. 석존교단 가운데 제일 중요한 지위의 인물이며 부처님보다 먼저 입적. 일부러 부처님보다 앞서 입멸하였다고 전한다. '반야경' 계통의 경전에서 살펴보면 '사리자'라는 명칭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렇게 경전에서 부처님이 설법의 상대로서 '사리자'라고 호칭되는 사람이 바로 이 사리불이다. 그만큼 사리불은 지혜가 뛰어난 제자.
다문제일 아난(多聞第一 阿難陀)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며 제바달다의 친동생. 부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모시면서 가장 많은 말씀을 직접 들었으므로 '다문제일'이라 불린다. 카필라성의 석가종족의 집에서 출생, 부처님이 성도하시던 밤에 태어났다고 한다.
미남인 탓으로, 여자의 유혹이 몇번 있었으나 지조가 견고하여 몸을 잘 보호하여 수행을 완성하였다. 부처님을 설득하여 여성의 출가를 허락케 한 인물이며. 100세가 넘게 매우 오래 살았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전기에 의하면 (1)부처님이 전도 생활하신 지 20년 후에 여러제자들 중에서 선출되어 친근한 시자가 되다. (2)다문제일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이 멸도하신 후에 대가섭을 중심으로 제1결집에서 부처님이 직접 설한 가르침을 모두 암송해냄으로써 후대에 경장(經藏)을 성립케 하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 (3)부처님의 이모 고담미의 출가에 진력한 일이 있다.
또 어떤 기록에는 3종 아난, 4종아난을 말하였으나 이는 부처님 1대의 설법을 전파한 덕을 나타낸 것인듯 하다.
두타제일 마하가섭(頭陀第一 迦葉)
가섭은 욕심이 적고 족한 줄을 알아 항상 엄격한 규율을 행하였다 하여 '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또한 가섭은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 라는 일화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섭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여 확정하는 제1결집을 주도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부처님의 임종 후 유해를 넣은 관은 가섭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리 해도 불이 붙지 않아 다비를 행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범어로는 <마하까샤파> 부처님의 십대제자의 한사람으로 음을 따서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고 한다. 임도 왕사성의 장자였던 바라문 니그루다칼파의 아들로서 비팔라나무 아래서 탄생하였으므로 <비팔라야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일찌기 비야라 성의 바라문딸과 결혼했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세속적인 욕망의 무상함을 깨달아 부부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8일만에 바른 지혜의 경지를 증득하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엄격한 계율로 두타행頭陀行을 하였고, 교단의 상수제자로 존경을 받았으며, 부처님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어느날, 사위국의 깊은 숲속에서 오랫동안 수행하다가 길게 자란 수염과 머리, 헌옷을 입은 채로 기원정사에 찾아갔을 때, 대중들은 그를 마음 속으로 경멸하였다. 그때 부처님은 여러 대중의 마음을 읽고 <어서오너라 가섭이여, 여기 내 자리에 앉아라>하시고는, 가섭존자에게 자리를 내어 주시고는 모든 無上의 正法을 모두 가섭에게 부촉하여 자신이 入滅한 후 모든 수행자의 의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어느 때 자섭이 바사성에 머물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석존이 열반하신 소식을 듣고, 즉시 쿠시나가라의 천관사로 가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한 후 다비의식을 거행하였다. 그후 그는 500명의 아라한들과 함께 아난阿難과 우바리婆離離로 하여금 경과 율을 결집하도록 하였다. 선가禪家에서는 가섭을 대법장大法藏 제1祖로 높이 받들고 있다. <불교학대사전, 홍법원, 1990>
신통제일 목건련(神通第一 目健連)
같은 이름의 제자들이 많아서 마하, 혹은 대(大)를 붙여 대목건련, 혹은 마하목건련이라 불린다. 연유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신통력이 뛰어났다 하여 신통제일이란 별명이 주어졌다. 또한, 백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우란분절이라는 불교의 유명한 행사는 이 목건련에 대한 전설에서 유래한다. 중인도 왕사성 근방의 구리가촌 바라문의 아들, 처음에는 벨라티풋타에게서 사리불과 함께 도를 배웠으나, 사리불이 5비구의 하나인 아설시를 만나 불법을 알고 깨달았을 때는 함께 죽림정사로 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다. 불교에 귀의한 후에 여러 고장을 찾아다니며 부처님의 교화를 펼치고, 신통이 제일이었다 한다. - 불교학대사전
대목건련이락도 불리우는데 줄여서 목련이라고 하며 목련존자라고도 합니다. 목련존자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어머니를 천상세계에 태어나시게 했던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요. 그때부터 불교에서는 우란분재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목련존자는 원래 바라문족의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목련이 성장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재산을 3등분하여 은 천신과 성현등 바라문의 스승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나머지 2/3은 아들과 부인에게 똑같이 나누었다. 그래서 목련은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유훈을 반드시 실천해 주시기를 당부하고 멀리 장사를 떠난 일화가 있다.
해공제일 수보리(解空第一 須菩提)
산스크리트명은 수부티(Subhuti)로서 브라만 부티(Bhuti)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현(善現), 선생(善生), 선업(善業), 선길(善吉) 등으로 의역 되었다.
온갖 법이 空한 이치를 처음 깨달은 석존 10대 제자중 한사람.
[증일아함] 제3{제자품}에서는 "좋은 옷을 즐겨 입지만 행이 본래 청정하여 항상 공적을 즐기고 공의 뜻을 분별하여 공적의 미묘한 덕업에 뜻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은둔자 중에서 제일이라고 칭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요한 곳에 은둔한다고 해서 그가 깊은 산속에 홀로 숨어지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들 속에서 생활할지라도 내면의 고요를 응시하면서 대립과 다툼이 끊어진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이다.
다툼이 없는 무쟁행(無諍行)은 바로 맑고 향기로운 행이요, 무아의 빛이 외면으로 비추어진 행이다.
그래서 그는 무쟁도(無諍道)의 제일인자로서도 거론된다. 무쟁행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면,
'그는 총명하였지만 성질이 포악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이며 짐승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못살게 굴었다. 그 도가 지나치자 부모와 친구들도 그를 외면하고 미워해 산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그러나 그는 산으로 들어가서도 마주치는 짐승이나 나뭇가지에 해를 끼치게 되는데 산신의 도움으로 부처님을 뵈어 교화를 받고 출가, 이윽고 무쟁도를 깨닫고 무쟁제일자가 되었다. 출가전의 난폭한 인물이 부처님의 교단에 출가한 이후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수보리는 조용한 곳에서 무쟁의 삼매를 닦아 모든 법의 공적을 관찰하여 은둔제일, 무쟁제일, 해공제일의 인물로 떠올라 마침내 공양을 받을 만한 모든 성문, 아라한 가운데서 으뜸이신 분, 즉 소공양제일(所供養第一)로 찬탄받는다.
사물의 본성을 명확히 꿰뚫는 그의 탁월한 식견은 대승불교에 와서 확연하게 부각된다.
초기 반야계 경전의 정수이자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금강경]에서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공의 모습에 대하여 묻고 대답하는 하모니를 이루어 결국 깨달음이라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석굴암 십대 제자들의 무리 가운데 수보리 존자는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의 두 번째로 등장하는 비구로 어깨가 올라간 구부정한 모습이다. 두 손을 턱 밑에 모아 왼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오른손을 덮어 독특하게 포개고 있는데, 은둔자로서의 그의 개성을 강조하려는 듯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설법제일(說法第一) 부루나. 부루나미다라니자의 약칭으로 부루나의 설법을 듣고 불법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논의제일(論議第一) 마하가전연. 뛰어난 언변과 논리 정연한 말솜씨로 불법을 널리 펼쳤다. 지계제일(持戒第一) 우파리. 십대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노예 출신이다. 부처님이 평등을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우파리는 특히 계율을 가장 잘 지키는 제자로 유명하다.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후라. 부처님의 친아들로 부처님이 카필라국으로 설법하러 갔을 때 어머니와 함께 출가했다.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다. 늘 부처님을 모시고 정진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
논의제일 가전연(論議第一 迦전廷)
마하가전연이라고 불린다. 인도의 변방에 이르기까지 각처를 다니며 교화활동을 하였고, 특히 교의에 대한 논의를 펴는 데는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가전련은 범어로 가타야나인데 논의제일의 제자였습니다. 가전련은 마하가타야나라고 해서 마하가전련이라고 하며 그 뜻을 해석하면 문식(文飾), 불공(不空)이 됩니다. 가전련 존자는 아반티국의 재상이었는데 부처님께서 아반티국에 오심을 영접하러 갔다가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으며,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논리적으로 정리하거나 또는 논리적으로 질문을 잘하였다고 합니다.
천안제일 아나율(天眼第一 阿那律)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라 하며, 심원한 통찰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 교단 내에서 화합의 모범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며, 부처님이 열반한 후 제1결집에도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 카필라성의 석가족으로 부처님으 아버지인 정반왕의 동생인 감로반왕의 둥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귀국했을 때 아누림에까지 따라와서 난타, 아난타, 데바 등과 함께 출가하다. 후에 부처님 앞에서 자다가 꾸지람을 받고 여러 날을 밤새 자지 않으면서 수도에 정진하다가 눈이 멀었으나, 그 뒤 천안통을 얻어 불제자 중 천안제일이 되었다. 경전을 결집할 때 장로로서 원조한 공이 컸다. 번역하면 무멸(無滅), 여의(如意) 등이 됩니다.
지계제일 우바리(持戒第一 優波離)
왕족의 이발사 출신으로, 사문들의 이발을 도맡아 했던 사람이다. 그의 입문은 부처님이 내세운 평등사상의 구체적인 실천이라는 점에 큰 의의를 찾는다. 실제 그의 가장 위대한 공적은, 부처님이 열반한 후의 제1결집에서 계율에 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해냄으로써 율장(律藏)을 확립케 한 일이다. 인도의 4계급 중 가장 천한 수트라 출신이며, 장성해서 석가족의 궁중에서 머리를 깎는 이발사가 되었다. 부처님게서 성도하신 뒤 고향에 돌아오시어 법을 설하시자 석가족의 왕자들이 출가할 때 머리를 깎아주기 위해 왕자들을 따라 부처님 계신 데로 갔다. 거기서 모든 왕자들이 출가하는 것으 보고 자신도 출가하고 싶었으나 수트라 출신의 천민으로서 감히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을 아시게 된 부처님께서 아누루다(아나율)에게 분부하시어 석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바리의 버리를 깎고 제자로 삼으시었다. 이는 부처님께서 주장하신 '사성평등'을 실천한 것이며 사성제도가 엄격한 당시로서는 큰 결단이며, 인권의 선언으로 일대사회개혁이다. 부처님께 열반에 드신 뒤에 우바리의 나이 70이 넘었을 때 율장을 주로 우바리가 되뇌어 결집하였다. 우바리 존자는 계율을 잘 지켜 율장전지의 첫 번째 조사로 추앙 받았으며 부처님께서 입멸에 드시고 제1결집 때에는 율장의 부분을 모두 외웠답니다.
밀행제일 라후라(密行第一 羅帿羅)
장애물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라후라는 부처님의 하나뿐인 아들로서, 원래 부처님이 출가하려 할 때에 장애물이 되었다하여 붙인 이름으로 유명하다. 불교교단의 최초의 사미. 밀행이란 은밀히 자기가 지킬 것을 잘 지켜 나가는 행동이라는 정도로 이해함이 좋을듯 하다. 라훌라는 태자시절에 낳으신 아들로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어 귀국하셨을 때 어머니 아쇼다라 부인과 함께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한 밀행제일의 제자입니다. 그때 나이가 15세였다고 하며 출가해서는 부처님이 아버지이신지라 다른 수행자들에게 오만방자하게 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라훌라의 출가 이전에는 모든 수행자들이 하루에 한끼의 음식만을 들었는데 라훌라가 출가한 후로는 두끼의 음식을 드셨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라훌라는 처음 출가해서 수행에 힘쓰지 않고 다른 수행자들을 놀리거나 장난을 하면서 수행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의 처소를 찾아오셔서 라훌라에게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떠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물로 부처님의 발을 씻게 하시고서 발 씻은 물을 마시도록 권하셨습니다. 물론 그 물을 마실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수행하는 데 힘쓰지 않고, 마음도 깨끗하게 갖지 않으며, 계율도 지키지 않고, 욕심내고, 성질내며, 어리석음이 가슴에 가득 들어있는 너와 이 더러운 물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느냐?" 그러시고는 또 대야의 물을 버리게 하시고 그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라훌라는 그릇이 개끗해야 음식을 담을 수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에게 "출가하여서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마음속에 수행할 생각이 없으면 이 더러운 대야와 똑같지 않겠느냐?"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세숫대야를 깨뜨려 버리시고는 라훌라에게 "깨어진 세숫대야가 아깝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라훌라는 "좋은 그릇도 아니고, 이미 더럽혀진 그릇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게서는 또 라훌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미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고 믿음으로써 살아가려고 했으면서 행동을 조심하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았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어 사랑받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저 더러운 물그릇과 깨어진 저 그릇을 사람들이 아깝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수행을 게으르게 하며 저렇게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살겠느냐, 아니면 쓸모있고 필요한 사람으로 살겠느냐? 그렇다면 뜻을 가다듬고 공부하여라." 이러한 말씀을 듣고 라훌라 존자는 열심히 수행하여 밀행제일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