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염불(念佛)의 방법(方法)
1. 稱名念佛 2. 觀像念佛 3. 觀想念佛 4. 實相念佛…佛의 法身이 非有非空한 中道實相의 妙心임을 觀照하 는 念佛
염불에도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보통 염불이라고 하면 부처의 이름, 명호를 외우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 있고 또는 부처의 상호 곧 32상(三十二相)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춘 원만덕상을 관찰하는 관상염불(觀像念佛)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듯이 부처님의 상호만 보아도 우리 마음에 우러러 숭앙이 되고 한결 안심이 되고 아늑한 평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또 관상염불(觀想念佛)이 있습니다. 음은 똑같습니다만 앞의 것은 상(像)을 관찰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상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공덕(慈悲功德)이라든가 훤히 빛나는 지혜광명(智慧光明) 등 부처님의 공덕을 상상하는 염불입니다.
그 다음은 실상염불(實相念佛)입니다. 이것은 현상적인 가유(假有)나 허무에 집착하는 무(無)를 다 떠나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이른바 법신(法身)자리를 생각하는 염불인 것입니다. 따라서, 진여불성자리를 생각하는 실상염불이 참다운 본질적인 염불입니다. 이른바 법의 실상, 내 인간 생명의 실상, 우주 생명의 실상, 이것을 우리가 관찰하는 것입니다. 관찰은 분명히 뚫어지게 안 보이니까 볼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생각만 해도 관(觀)이라는 뜻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부처의 법신(法身)은 있지도 않고 또는 공(空)하지도 않은 중도실상의 생명의 광명을 관조하는 염불이 곧 실상염불입니다.
이런 데서 우리가 의심을 품는 문제는 부처님의 명호에 대해서입니다. 우리 스님네나 재가 불자들 가운데 "어떤 부처를 염해야 할 것인가?"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분이 있습니다. 지장경(地藏經)을 보면 지장 보살을 염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되어 있고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보면 아미타불을 한번만 잘 염해도 극락세계에 간다고 되어 있고 또 관음경(觀音經)을 보면 욕심 많을 때나 마음이 괴로울 때나 또는 무엇이 안될 때나 좋은 사람 만나고 싶을 때나 모두가 관세음보살을 염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佛子)들은 "뭘 염해야 좋을 것인가?" 또는 "다 한꺼번에 염해야 할 것인가?" 하고 마음에 갈등을 갖습니다.
그런데 가령, 지장 보살님을 위주해서 염하면 관세음 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염하는 것보다도 지장 보살을 염하는 것이 훨씬 공덕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염할 때는 사실은 공덕을 크게 감하는 것입니다. 참답게 지장 보살을 염하는 것이 못됩니다. 또는 관세음보살님을 염한다 하더라도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 염불은 별로 공덕이 없고 관세음 보살을 염하는 것이 가장 수승하다고 생각할 때도 참다운 공덕이 못되고 부처님 법에 여법한 염불도 못 됩니다. 아미타불을 염할 때도 같은 도리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법은 무장무애(無障無碍)하고 평등일미(平等一味)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라는 평등일미 자리에는 높고 낮은 우열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명호(名號)나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 주여!" 하고 기독교식으로 한 명호만 했으면 될 것인데 무슨 필요로 복잡하니 많은 부처님의 명호가 필요 있을 것인가? 하고 의단을 품기가 쉽습니다. 이런 때는 부처님의 불성공덕(佛性功德)을 생각해야 됩니다. 불성공덕은 무한 공덕입니다. 불가설(不可說)이라, 어떻게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비로운 쪽으로도 무한하고 또는 지혜로운 쪽으로도 무한하고 또는 지구 덩어리가 베풀어주는 은혜 공덕으로 보더라도 무한합니다. 그래서 많은 부처와 보살 명호는 이른바 생신(生身) 보살이 아니라 법신(法身) 보살 명호로, 모두가 다 부처 공덕을 상징한 것입니다. 무장무애한 무량공덕을 자비로운 쪽으로는 관세음(觀世音) 보살이고 지혜로운 쪽으로는 문수(文殊) 보살, 대세지(大勢至) 보살이고 또는 원력(願力)쪽으로는 보현(普賢)보살이고 또는 죽어서 가는 영가를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쪽에서는 지장(地藏) 보살, 인로왕(引路王) 보살이고 또는 병고를 다스리고 구제하는 쪽에서는 약사여래(藥師如來), 약왕(藥王)보살입니다. 또는 법신 부처님이 하늘에 있는 달이나 별이나 그런 광명체로 화현(化現)하는 쪽에서는 이른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요, 일광(日光) 보살, 월광(月光) 보살이고 또 북두칠성 등 28수(宿) 그런 쪽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칠성(七星)입니다. 예경할 때에 보십시요 산신(山神)을 외울 때도 처음에 만덕고승(萬德高僧) 성개한적(性皆閑寂)이라는 말을 합니다. 역시 부처님 가르침 따라 성중(聖衆)을 먼저 내놓고서 나중에 산신이 나와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청정무비한 무량공덕이 산에 들어가 있으면 산신인 것이고 물에 들어가 있으면 용왕(龍王)인 것이고 우리 지구에 들어있으면 지장 보살이요 또 별에 들어 있으면 치성광 여래인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올바른 해석이 되겠지요. 따라서 어떠한 때에 중생의 근기 따라서 산신 불공을 하더라도 우리 중생이 볼 때에 산인 것이지 바로 본다면 부처님 화신(化身)인 것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할 때도 산은 그냥 산이 아니요, 물도 그냥 마시는 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바로 불성(佛性)의 산으로, 불성의 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으로 해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경을 보면 다 그런 도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본다면 지장 보살을 부르나 또는 무엇을 외우나 간에 "부처님의 화신으로, 부처님의 공덕으로 우리 중생을 다스리는, 자비로 구제하는 공덕 명호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우리 마음이 부처님한테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지장 보살이나 무엇을 염해도 공부에 조금도 손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사 아미타불이라, 모두를 포괄적으로 법보화(法報化) 삼신(三身)을 말할 때는 아미타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사 아미타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보통 염불할 때는 아미타불을 많이 하는 셈입니다만 어떤 명호를 부른다 하더라도 아미타불을 하는 것이나 다 똑같은 공덕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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