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금타스님의 주창] 제3절 우주론 - 1. 서문(序文)

通達無我法者 2007. 4. 20. 22:04

 

 

제6장 금타(金陀) 스님의 주창(主唱)

 

제3절 우주론(宇宙論)


 

 


1. 서문(序文)




제가 이렇게 금강심론(金剛心論)을 말씀 드리니까 ‘자기가 받드는 스승이니까 치켜세우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런지 모르지마는 저는 이미 황혼이 짙은 수행자의 분상에서 그 정도로 속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과학과 불교와의 관계 설정은 우리 불교인들에게 필수적인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序 文


一微를 誤見하면 妄想이 되고, 正見하면 眞覺이 된다. 一切 萬事가 自己의 見解에 依하여 眞妄이 揀別될 뿐, 一微나 一切에 本來 眞妄이 없으며 器世間(現象界) 이대로가 一眞法界로서 一切衆生이 一佛의 化身이며, 個別的 化身이 바로 本身의 佛임을 忘却하고, 顚倒妄想하여 迷惑人이 되고 스스로 凡夫라 이름하나 一大人에게는 聖凡이 없다.

“만약 사람이 三世의 一切가 佛임을 了知하고자 하면, 마땅히 法界性을 觀할지니, 一切가 唯心의 所造니라.”(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함은 華嚴偈이다. 法界性을 見하고 그 以下는 色法으로써 全揀하며, 以上은 心法으로 全收하니, 色卽是空이요 空卽是色이라, 空이란 色碍가 없는 不但空인 眞空을 말하며, 色이란 質碍이면서 그림자와 같이 眞空醴의 妙用인 假相을 말하므로, 卽體 卽用으로서 性ㆍ相이 一如이며, 卽心卽佛이므로, 三世 一切가 普賢境이다.

그러나, 迷惑人은 大日心體가 質碍的 그림자에 가리워, 眞智의 證明이 없이 妄見을 세워서 眞理라고 생각하며, 主客이 顚倒한 事實마저 否認한다.


이에 몇 가지 例를 들면, 熱이 地輪界(地球와 地球의 半徑을 倍增한 球狀의 虛空身을 云함) 自身의 熱임을 모르고, 熱源이 太陽에 있다고 하며, 光明 또한 地球 自我의 光明임을 모르고 太陽이 光源이라 한다. 그리고, 月은 太陽의 反映體라 한다.

그러나, 輓近 飛行術이 發達하자, 태양을 향하여 上昇할수록 冷氣가 다가오고, 또한 어둠을 느끼며, 달밤에는 溫氣가 느껴지는 事實은 무슨 理由인가? 또는 月의 上弦과 下弦이 地球의 그림자에 가리운 表徵이라 하는데 과연 의문이 없을 것인가?

現代 科學 文明을 자랑하면서, 아직도 銀河水가 무엇임을 分明히 알지 못하며, 日月星宿가 어째서 虛空에 浮遊하고 있는지, 그리고 左轉 또는 右轉하지 아니치 못할 理由가 那邊에 있는지, 이에 對한 解明이 曖昧하며, 曆年一時가 365日과 6時 未滿임을 經驗하면서, 太陽과 地球의 距離와는 無關한 事實이라 생각하고, 굳이 地球 半徑의 23440倍라 말하며, 빛(光)이 太陽에서 地球까지 旅行하는데, 8分 20秒 걸린다고 한다. 아무튼 數字는 形式科學에 屬하나 要는 主觀點이 어디에 있느냐가 問題이다.


二十世紀 文明이 여지껏 宇宙를 解剖하지 못하며, 肉限의 實性을 回復한 天眼에 依해서만 發見할 수 있는, 陽核의 七分一에 該當하는 金塵, 곧 原子核의 本質을 分析科學에 依하여 發見하려고 虛勞를 費함은, 正眼이 있는 者 입을 삼가하고 있을 수 없으니, 正見 있는 人士는 채찍을 들고 일어서라! 그리고 聖人들이 認定한 바, 長久한 歲月을 두고, 뼈가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된 精神文明을 登場시켜라!


本說 宇宙의 本質(法界性) 形量(行相)'인 片言 隻句가 萬에 一이라도 正道를 指示하는 助道的 資糧이 될 수 있다면, 幸甚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本說을 六節로 大別하고 百項으로 小分하였으나, 一貫된 道理로 始終하였으며, 더욱이 胎藏界의 數値로써 一律的으로 計算한 數字이므로, 百 中 其 一을 認定할 때, 百을 또한 否認할 수 없을 것이므로, 贅言이면서 이를 附言하는 바이다.


                                             壬午(1942)年 6月 9日

於 井邑 內藏山.碧蓮禪院 釋 金 陀 識



제가 금타 스님의 우주론(宇宙論)의 서문을 읽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혹 참고가 되실까하여 저의 ‘머리말’을 소개해 드립니다.


금타 화상(金陀和尙)께서 저술한 바, 미증유(未曾有)한 파천황(破天荒)의 우주론은 단순한 사변적(思辯的)인 소산이 아닐 뿐 아니라, 경험 과학적인 시도와는 그 차원을 달리한 순수 직관적인 현묘(玄妙)한 선정(禪定)을 통한 통찰이기 때문에, 그 내용에 있어 현행 천문학과 현격한 차이가 있음은 도리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현대천문학 또한 아직도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니, 설사 금타 스님의 천문설이 하나의 가설(假說)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너무나 거창하고 합리적인 체계를 어느 뉘라서 감히 부정할 수가 있을 것인가?


또한, 화상의 우주론은 어디까지나 불설(佛說)에 그 근저(根抵)를 두었으며, 불교 우주관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곧 10억 우주에 관한 초유(初有)의 체계화임을 감안할 때, 참으로 귀중한 불교 문헌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특히 불교인으로서는 불교 우주관에 대한 깊은 고려없이 다만 일지반해(一知半解)한 천문상식만으로 천박한 비판을 함부로 한다면, 도리어 방불훼법(謗佛毁法)의 허물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화상의 우주론이 저으기 난해한 것은 천문학 본래의 성격상 어쩔 수 없을 뿐 아니라, 본 저술이 구체적인 주해(註解)가 없는 원리(原理)만의 논술하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니, 모름지기 진지한 구도인(求道人)의 자세로 숙독(熟讀) 음미한다면, 반드시 귀중한 조도(助道)의 자량(資糧)이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