話頭·參禪

송담스님-다시 태어나는 법

通達無我法者 2007. 5. 9. 17:00
묘체 유래 무처소 妙體 由來 無處所
관음 기재 해동운 觀音 豈在 海東云
하처 청산 구도량 何處 靑山 求道場
하수 특례 낙가산 何誰 特來 洛迦山

묘한 진리의 체는 원래의 처소가 없어 어디에는 진리가 있고, 어디에는 진리가 없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참 불교의 진리는 천상천하 두두물물이 묘체 아님이 없어 전부가 다 어느 곳, 어느 때를 막론하고 진리의체는 이 허공 법계에 없는 데가 다 없는 데, 어찌 관세음 보살이 저 동쪽 바닷가에만 계시겠는가. 어느 곳 청산에 청산이 관세음보살이 계시지 아니하는 도량이 있으리오. 그렇거늘 어찌 모름지기 꼭 보타 낙가산에만 관세음보살이 계신줄 알고 거기에만 찾아갈 것이 무엇이겠는가.

오늘은 불기 2534년 기사년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열반하신 해를 1년으로 해 가지고 금년이 2533년이 되는데 부처님께서는80세에 열반하셨으니 거기에 80을 더하면 2613년이 됩니다. 부처님이탄생하신 지는 2613년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인도 가비라왕국, 지금의 네팔입니다마는 그 가비라왕국의 정반왕을 어버님으로 마야왕비를 어머님으로 해서 태자로 태어났습니다. 그 이름이 싣다르타입니다.

우리 중생의 눈에는 인간 싣다르타 태자 밖에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성문(聲聞), 연각(緣覺)이냐, 보살(菩薩)이냐 또는 부처님이냐, 자기가 깨달은 경지에 따라서 태어나신 싣다르타 태자를 인간 싣다르타 태자로 보기도 하고, 화신불(化身佛)로 보기도 하고, 보신불(報身佛)로 보기도 하고, 법신불(法身佛)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일단 우리 중생의 눈에 역사적으로 볼 수 있는 인간 싣다르타태자의 역사를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싣다르타 태자는 16세에 결혼을하셔서 야수다라라고 하는 아주 예쁜 덕을 갖춘 미인과 결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라후라라고 하는 아들을 보셨습니다. 경전에 따라서는 출가 하신날 탄생하셨다고 적혀있는 경전도 있습니다. 29세에 출가를 하신 부처님은 히말라야 설산에 들어가셔서 6년간을 하루에 삼(麻)씨 한 개와 곡식 한알씩을 잡수시고서 무서운 고행을 하셨습니다.

그래가지고 피골이 상접했습니다. 그토록 무섭게 용맹정진을 고행하셨지만, 깨달음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만을 괴롭히는 고행을 위한 고행을 가지고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구나 그것을 알으시고서 일연하, 일연선하에 내려가셔서 목욕을 하시고, 그때 수자타라고 하는 마을 처녀가 바치는 유미죽을 받아 잡수시고 쇠락한 깨끗한 몸뚱이와 쇠락한 정신으로서 갠지스강 중류 남쪽에 있는 우루베라촌, 그곳을 지금은 부따가야라고 부릅니다만, 우루베라촌 보리수 나무밑에서 다시 정진을 시작하셨습니다.

명상에 들어가 더욱 정진을 하시던 부처님께서는 12월초파일 동천에 떠있는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確徹大悟)를 하셨습니다. 소승경전에는 `그때 무슨 진리를 깨달었느냐' `초저녁에는 사제법을 깨달으시고 중야에는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을 깨달으셨다' 하는 기록이있습니다만 한마디로 말해서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도 설하신 바와같이 생사없는 도리를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깨달으시고서 배나리스 교외에 있는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셔서 교진여 등 다섯 비구를 교화하셨습니다.

오비구(五比丘)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사제법을 깨달았습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의 성제를 깨달으셔서 그 제자들로 하여금 한길을 둘이 가지 말고 따로 따로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가서 이 불법을 펴도록 하여 그 뒤로 제자들이 무수히 불어났습니다. 항상 천이백오십의 상수(上首) 제자가 부처님을 따랐고, 열반하실 때까지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름 우기에는 다닐 수가 없으니까 정사(精舍)에 모여서 우기를 피하시고 우기가 지난 다음에는 일년내내 계속유행을 하시면서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셨는데 교화 중심지는 주로 마갈타국 수도인 왕사성의 죽림정사(竹林精舍)와 부처님 고향에 가까운 기원정사(祈園精舍)를 근본 교화 중심지로해서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최초의 12년간은 아함경(阿含經)을 설하셨고, 그 다음 8년간은 방등경(方等經)을 설하셨고, 그 다음 21년 동안에 걸쳐서 반야경(般若經), 지금 우리가 독송하고 있는 금강경도 그 반야경에 소속된 경전입니다마는, 그 반야경은 진공의 진리를 설하신, 그리고 마지막 8년간은 법화경(法華經), 열반경(涅般經)을 설하셨습니다. 팔만사천법문을 사십구년 동안에설하신 부처님은 80세를 일기로 파바 마을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마지막 열반에 드시기 전에 파바마을에서 금속공인 춘다가 올린 공양을 잡숫고, 중병을 얻으셔서 마침내 구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자타가 바치신 유미죽을 잡숫고 도를 깨달으시고, 춘다가 바친 공양을 잡숫고 열반에 드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자타가 바친 유미죽을 잡숫고 깨달음을 얻은 그 공덕이나 춘다가 바친 그 공양을 잡수시고 열반에 드신 것이나 그 공덕은 조금도 다름이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 중생의 공양을 받으셨고 그리고 무량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우리 수천명의 불제자들이 이렇게 오색이 찬란한 정성어린 등불로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이 우리의 정성어린 이 한개의 등을 부처님께올린 그 공덕이나 금일 선남 선녀가 바친 이 한개의 등의 공양은 그 공덕에 있어서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 사부대중 선남 선녀가 바친이 하나의 등 공양의 공덕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2613년 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신 그날을 봉축하는 그러한 뜻으로 등을 올린 것입니다. 그공덕으로 우리는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듯이 우리도 오늘 새로 태어나야 할것입니다. 등을 올리고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요, 업장이 소멸되게 해주십시요,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게 해주십시요, 우리 회사가 잘되게 해주십시요,

그러한 일도 물론 인간 세상에 있어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우리나라는 조국 통일을 부르짖고 세계평화를 구호로 부르짖고 있습니다만 어떠한 민주주의도, 조국통일도, 세계평화도 개개인의 자각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 자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죽어야 새로 태어날 것이 아니냐, 그렇치 않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은 이 몸뚱이 그대로 두고 뱃속에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 그대로 둔채 또 우리 가슴의 심장의 맥박은 팔딱 팔딱 뛰고 있는 그대로 놔둔채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제석천왕이 터어억 자기자신을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죽어서 반드시 당나귀 뱃속에태어날 것을 알았습니다.

제석천왕도 다 삼십이상을 갖춘 참 복많은 그런 하늘나라에서 하늘나라 신 가운데 최고로높고 거룩한 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통이 자재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까 자기가 죽어서 과거에 지은 업으로 인해서 당나귀 새끼로 태어날 것을 알았습니다. 일개 제석천왕으로서 사후세계의 복과 죄를 한몸의 권한으로 쥐고 있는 그러한 천왕으로서 당나귀 뱃속으로 들어가다니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근심속에 사로 잡혀있다가 퍼뜩 생각이 떠오르기를 이 문제는 오직 부처님만이 해결을 해 주실수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 가서 여주어 봐야만 해결책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삼계 대 도사요 사생의 자부이신 진리를 깨달으신 성인 가운에 성현이신 부처님만이 그 문제를 열어 주실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어서 터어억 부처님 앞에 나아가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하셨습니다.

터어억 정성을 다해서 오체투지로 부처님 발앞에 엎드리어 아직 일어나기 전에 엎드린 그 상태에서 그 몸뚱이를 떠났습니다. 그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제석천왕의 영혼이 그 몸뚱이를 떠나가지고 저 사바세계에 어느 그릇을 굽는 도공 집의 당나귀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당나귀의 고삐와 굴레가 벗겨져서 굴레와 고삐로 묶여 있던 당나귀가 이리뛰고 저리 뛰고 그 어떻게 해서 그 굴레가 벗겨지니까 너무좋아서 그랬던지 정성드려서 만들어 놓은 많은 그릇을 굽는 도공이 그 정성드려서 만들어 놓은 그릇을 다 깻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래서 몽둥이로 사정없이 당나귀를 두들겨 팼습니다. 당나귀는 그 주인의 몽둥이를 맞고 밴 새끼를 낙태 하였습니다. 낙태를 하자마자 당나귀 뱃속에 태어났던 그 제석천왕의 영혼은 다시 부처님 앞에 엎드려 있는 그몸뚱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처님께서 엎드려 있는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운명하기 직전에 여래앞에 오체투지로 절함으로서 있는 정성을 다하여 귀의한 그 공덕으로 그대의 죄는 전생의 죄업은 다 소멸이 되었느니라.

제석천왕은 부처님의 그 한 말씀을 듣고서 확철대오를 하여 수다원과(須陀遠果)를 증득한 것입니다. 이 설화를 통해서 우리가 죽어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 60년이나 70년을 살고 병들어 몸부림치다가 죽은 뒤에사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몸뚱이 있는 그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불법을 만나기전에는 흥망성쇠와 희로애락 속에서날마다 번뇌와 근심속에 몸부림치고 차라리 자살을 하려고 하는 마음까지도 냈던 사람이 불법을 만나고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 태어나는 분들도 이 가운데에는 많이 계실겁니다. 불법을 믿은지 수십년이 되어서 활구 참선법인 정법의 법문을 듣고 또 새로 태어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납니다. 본래의 중생의 번뇌심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거고 그 번뇌가꺼질 때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사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 났다 꺼졌다 한 것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 윤회를 하는것은 인과법칙으로 틀림이 없는 것이고 이 몸뚱이 살아 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에 번뇌심으로 태어나가지고 번뇌심으로 죽고 또 번뇌심으로 태어나서 번뇌심으로 죽어가면 이것은 영원한 생사윤회 새로 태어나되 삼악도(三惡道)에 태어나면 새로 태어난 보람이 무엇이 있습니까? 중생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속에서 끊임없는 생사윤회는 하루도 참 보잘것 없는 거듭 거듭할수록의 고통만 더하는 그런 생사입니다.

그런데 우리 불법을 믿는 사람은, 최상승 법문을믿는 우리 불제자는 새로 태어날 때 보다 더 나은 곳에 태어나야 하고 새로 태어날 때마다 진리의 눈을 뜰 수 있는 그러한 새로 태어남이어야 할것입니다. 저 제석천왕이 나귀 뱃속에 태어났다가 다시 태어날 때에 수다원과를 증득하듯이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만 생각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집니다.

활구 참선법을 모르는 삶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만 더하고 점점 깊은 고통이 심한 그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 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때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에 업장도 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한 걸음 나아가게 되니 활구참선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 태어난 사람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일 것이 없고 앞으로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치달을 필요도 없고 현재 우리가 닥쳐있는 현실 경계에도 집착을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기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사업이 흥해도 이뭣고, 사업이 침체해도 이뭣고, 팔풍(八風) 경계와 오욕(五欲) 경계에 부딛칠 때, 우리의 마음은항상 해와 같고, 달과 같이 가져라. 그러면 천당 지옥에 끌려가지 아니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팔풍경계와 오욕경계를 당해서 마음을 해와 같이 찬란히 빛나는 태양과 같이 휘향한 밝은 달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뭣고, 이뭣고입니다.

이뭣고 한마디에 흥망성쇠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희로애락의 노예가 되지 않기 때문에 천당 지옥에 포섭되지를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서 등 하나를, 우리의 눈으로 볼수있는 등 하나를 켭니다마는 그 속에는 우리의 정성이 담기어 있습니다. 왜 등을 켜는 그러한 준례가 생겨났을까요.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의 진리의 등을 켜도록 하기 위해서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이 등불을 켜면 어두운 밤이 밝아지듯이 마음속의 등을 켜라. 마음속의 등을 무엇으로 켜! 이뭣고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화두를 처어억 거각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癡) 삼독을 물리치고 오욕경계를 물리치는 등불을 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언필칭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신 것은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기위해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셨다 그렇게 말합니다.

중생제도를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물에 빠져있는 사람 건져내 듯이 중생을 그렇게 건질 수가 있을까요.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되 실지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불보살은 생각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온갖생각이 퍼 일어나는데 그 한량없는 생각을 바로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그런데 생각은 그 체가 공한것입니다. 그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그 본체는 무엇이냐 하면 공이거든요. 확실히 그 생각의 본체가 진공이라고 하는 사실을 요달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적의 이치를 이미 깨달아 버리면 실로 한 중생도 제도받은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인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성 중생이거든. 자성중생서원도요! 우리는 최상승법을 믿는 불제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자성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를 터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법의 근본 뿌리는 중생심으로 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심, 거기서 무량 부처님도 출세하셨고, 팔만사천 보살도 출세하셨고, 그 우리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그 한 생각은 진여 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하나의 거품이요, 하나의 물결인데, 그 일어나는 최초의 그 한 생각을 딱 돌이켜서 이뭣고 할 때에 팔만사천의 묘행이 그속에 다 갖춰져 있는 것이여. 팔만사천 쓰여있는 경에 법문의 뜻도 그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활구 참선법을 최상승법이라 하는 겁니다. 많은 관법이 있고 많은 부처님의 법문이 있지만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최고의 높고 거룩한 법문이요, 거룩한 관법은 이 활구참선법입니다. 중생은 무량 억겁의 무명 번뇌로 말미암아서 원래 갖추어져 있는 그 지혜의 눈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그 지혜의 눈을 바로 뜰수 있는 길을 스스로 터득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친근선우, 친근선우, 선우 착한 벗 모든 불조와 모든 선지식이 모두 이 선우에 해당이 됩니다. 널리보면 그 선지식과 선우를 공경하고 섬기기를 부처님과 같이하라 그러셨습니다. 3000년전에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시고 다음 미륵불이 출생하실때 까지는 56억 7천만년이라 하는 세월을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한량없는 보살들이 보살로써 우리 앞에 화현신으로 출현을 하신 것입니다. 그 보살 화현신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우리 앞에 나타나시냐 하면 시부모로도 나타나고, 남편으로도 나타나고,아내로도 나타나고, 효자로도 나타나고, 불효자로도 나타나고, 친구로도 나타나고, 도둑놈으로도 나타나고, 거지로도 나타나고, 어떠한 별의별 모습으로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그중생으로 하여금 발심하고 그 중생으로 하여금 깨달음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서는 한량없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심으로써 보면 날마다 불 보살의 화현을 친견할 수가 있을 것 입니다마는 탐진치삼독이 가득찬 그 눈으로는 날마다 불보살을 친견하면서도 불보살인줄 모르고 지나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 참 발심을할 때에 우리 집안에 보살의 화현이 함께 사신줄을 알 것이고 우리가 날마다 만나고 스쳐가는 모든 중생들 속에 불보살 화현신이 계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문, 선지식의 법문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발심하기도 어렵고 진리의 눈을 뜨기도 어렵기 때문에 옛날에 부처님이 인행때 설산에서 그 고행을 하고 계실때에,

제행무상 諸行無常 시생멸법 是生滅法 생멸멸이 生滅滅已 적멸위락 寂滅爲樂 이라고 하는 반쪼각 반 구절 게송을 듣기 위해서 설산동자는 나찰귀신을 위해서 나찰귀신을 향해서 그 소중한 몸뚱이를 던지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향성에서 반야경을 설하실 때 상제보살(常啼菩薩)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서 너무도 부처님의 법문이 감사하고 고마워서 무엇으로 공양을 올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그래서 공양을 올리지 못한 그 한이 사무쳐 있을 때 마침 성안에 어떤 부자가 병을얻었는데, 산 사람의 뼈 골속에서 뽑은 그 골수를 넣어서 만든 약을 지어 먹어야만 그 병을 나을 수가 있다 해서 누구든지 그 골수를 가지고 온사람에게는 많은 돈을 주겠다 하는 광고를 냈는데, 마침 상제보살이 그골수를 팔았습니다. 그 장자에게 팔아 가지고 그 돈을 구해서 꽃과 향을 사가지고 부처님께 그 공양을 올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분골쇄신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을 위해서 몸뚱이를 잃어버린 위법망구의 신심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가운데 혹 경제사정이 여의치못해 가지고 부처님과 절에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 행여나 골을 빼가지고골수를 뽑으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비록 설산동자는 몸뚱이를 나찰귀신에게 던지셨고, 상제보살은 골수를 뽑아서 장자에게 팔았지만, 우리는그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면, 그 법문이, 과연 그 법문의 요지가, 진의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신연비, 소신연비를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고 경전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손가락을 둘씩, 셋씩, 넷씩, 태워서 연비를 한 그런 참 뜨거운 신심을 가진 수행자를 요즘도 가끔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연전에는 장작불을펴 놓고 자기의 몸뚱이를 사른 등신불이라고 하는 그러한 드라마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분이 실지로 과거에 있었습니다. 그 몸뚱이를 잃어버린, 그 손가락을 하나 태우고, 팔을 하나 태우고, 몸뚱이를 태우는 것이 얼마나 하기 어려운 것인가는 잘 압니다. 그 뜨거운 신심을 백만금을 주고라도 우리는 사야 할 것입니다마는, 소신연비, 분골쇄신의 참뜻은 우리가 여기에 있는 대중들이 날마다 손가락을 태우고, 몸뚱이를 태우라고나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심을 가지고 저 탐진치 삼독심을 찰나간에 돌이켜서 이뭣고를 들으시라 이것입니다.

이뭣고 한 생각 돌리는 것이 손가락 한개 두개 태운것에 다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슬플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즐거울 때도 이뭣고 인 것입니다. 한 생각 돌이킨 것이 한 생을 돌이킨 목숨을 돌이킨것과 맞먹는 것입니다. 몸뚱이의 생사만을 생사로 아는 사람은 범부중생이고,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이 몸뚱이는 본래 공한 것이요, 한 생각 돌이킬 줄을 알 때에 비로소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것입니다. 운변천첩장 雲邊千疊璋 남외일성천 襤外一聲川 약불연순우 若不連旬雨 나지제후천 那知霽後天

저 구름가에 천첩이나 쌓인 산이 있고 울 담밖에 한소리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있더라. 만약 열흘 동안이나 계속해서 내리는 그 비가 없었다면 어찌 비갠뒤에 그 새파란 하늘 있음을 알 수가 있었겠는가. 앞으로 장마계절이 옵니다마는 장마에 그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기를 열흘, 스무날 계속온 뒤에 햇빛이 쨍쨍하게 나야 비로소 햇빛 고마운 줄을 알고 파란 하늘도 비로소 새롭게 느껴지드라.

이 사바세계는 생로병사, 희로애락, 흥망성쇠가 그렇게 뒤범벅이 되어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서 발심하기가 좋고 분심내기가 좋고 그래서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이 갖추어진 세계다 이겁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병고에 시달리시는분, 사업이 여의치 못해서 고통속에 빠지신 분, 아들을 못 낳아서 고통에 빠진 며느님, 또는 아들 딸이 공부를 잘 못해서 대학에 못 들어 갈까봐 걱정이신 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의합이 좋지 못해서 고통받는 분,그런 고통을 어떻게 해서 이겨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발심할 수 있는 좋은 계기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열심히 법회에 나오셔서 듣는 법문, 또 들은 법문이라도 열심히 듣다보면 어느 때인가는 확 지혜의 눈이 열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당하면은 성을 내고 우리 마음에 합당한 그러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기뻐합니다. 천하사람이 전부 역경계(逆境界)아니면 순경계(順境界)속에 걸려서 노예가 되어 가지고 울다 웃다 하면서 아까운 생명을 헛되이 보내면서 삼악도(三惡道)를 향해서 굴러가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오. 내 마음에 맞는 순경계가 머지 않아서 뒤집혀져 가지고 역경계로 변하는 것입니다. 어떤 역경계를 만나서 있다 하더라도 그 고비를 잘 참고 견디면서 노력을 하다보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서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경계 순경계에 놀아나지 말고 어떤 경계를 닥치든지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을 깊이 인식하고 항상 어느때 어느 곳에서도 이뭣고, 역경계 순경계에 끄달려서 울다 웃다 하는 사람은 항상 경계에 속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경계는 다 환으로 우리 중생의 환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곳곳마다 일어나는 그 환의 업에 끄달려 가는 거고 성문 연각은 그 환의 경계가 무서워서 어째던지 그 놈을 없앨려고 그러면서 그 본심을 미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생각만 없앨려고 번뇌망상만 끊을려고 노력을 해 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관법을 닦아가지고 멸진정에 들어가는 것이 궁극의 목적입니다.

그래야 태어나지 않고, 태어나지 않아야 죽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썩 훌륭한 법이아닙니다. 보살은 그 환 경계라 하는 것을 꽤 뚫어 봐 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희로애락, 성주괴공, 흥망성쇠, 그런 명사에 얽매이지를 않아, 그래가지고 어떠한 경계를 닥치든지 본래 남이 없는 무생의 진리에 딱 마음을 계합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뭣고입니다. 이뭣고를 자꾸 하다 보면 무슨 생각이 한 생각이 일어나자 마자 이뭣고 하면 그생각이 두째번, 셋째번, 생각으로 번질 겨를이 없습니다. 그것이 번져가지고 결국은 생사윤회를 하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이뭣고 했을때 바로 거기서 생사없는 무생경지로 들어가는 법입니다. 우리 중생의 모든 환은 몽한 경계인데 환은 왜 환이냐 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 몸뚱이에 아주 종기가 일어나가지고 차츰차츰 번져서 아주 망신창이가 됐습니다.

그래가지고 너무너무 비탄에 빠지고 고통에 빠졌다가 누가 "텅"하는 바람에 눈을 뚝 떠보니까 꿈이었습니다. 그렇게 온 전신이 쑤시고 애리고 가렵고 그러던 것이 눈을 딱 뜨자마자 몸뚱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그 구멍구멍 고름이 터져 나오던 곳이 간곳이 없더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의 모든 업이, 업으로 나타나는 모든 경계는 꿈속에 앓는 망신창병과 같은 것입니다. 한 생각 탁 돌이켜 버리면은 한 생각 돌이켜서 깨달아 버리면 방편이 필요가 없어 팔만대장경의 법문이 이 꿈에 앓는 망신창이가 꿈을 깨면서 낫는다고 하는 이 말씀, 한마디 속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떠한 고통을 받더라도 이뭣고, 한마디로써 모든 고통을 다 치료해 나갑시다. 미운 사람을 만나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나, 좋은 경계를 만나나, 괴로운 경계를 만났을 때, 환인줄 깨닫는 법이 바로 이뭣고이니까, 이뭣고를 드시오. 그것이 바로 새로 태어나는길인 것입니다. 등하나를 올리고 우리는 무량억겁으로 윤회할, 윤회고를 벗어나는 이치를 우리는 알았습니다. 앞으로 이 몸뚱이가 20년, 30년, 얼마를 더 유지할란가 모릅니다마는 그까짓 것을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10년을 살다가 가던지 30년을 살다가 가던지 이 몸뚱이는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큰 걱정할 필요없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한 생각만 무섭게 단속을 해 나가면 그속에 우리는 해탈 도를 가는 길이 거기에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2534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서 부처님께서 태어나셨듯이 우리도오늘 이자리에서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났으니 과거에 모든 일은 완전히 다 잊어버리십시오.

간난애가 새로 태어나면서 전생일 다 잊어버리듯이 우리가 지금 전생에 무엇이 어쨌다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 있습니까? 숙명통이 열리면은 전생 과거사도 다 안다고 합니다마는 새로 태어날때 과거일을 다 잊어 버리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오늘 이제는 모든 원한관계도 다 잊어버리고, 근심 고통도 다 잊어버리고, 새로태어난 마음으로 하루하루 한시간 한시간, 일분 일분, 일초 일초를 살아갈 것을 기약하면서 손을 드시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간단한 한마디지만 팔만대장경이 그 속에 다 들었고 온갖 부처님의 성스러운 관법이 이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일파 유조 수부득 一把柳條雖不得
화풍 탑재 옥난간 化風搭載玉欄杆
한 웅큼 버들가지를 휘어 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 난간에 걸어 두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