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주해20

通達無我法者 2007. 8. 21. 10:06

行錄(행록)


〈39-1〉

≪주해≫

* 1) 사초재황벽(師初在黃檗) 운운 : 이 일단(一段)의 이야기는「임제대오(臨濟大悟)의 기연(機緣)」이라고 하며《벽암록》11칙의〈평창(評唱)〉에서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전해지기도 한다.《조당집》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에 대해서 본록〈마방(馬防)의 서〉 주해를 참조할 것.

* 2) 행업순일(行業純一) : 수행의 태도가 진지하고 전일(專一)함.

* 3) 수좌(首座) : 선원에서 선승들을 지도하는 수석 승려. 선어록에서는 제일좌(第一坐), 좌원(座元), 선두(禪頭), 수중(首衆)이라고도 한다. 임제대오(臨濟大悟) 당시의 수좌는 진존숙목주도종(陳尊宿睦州道蹤 780~877) 선사이다.

* 4) 후생(後生) : 젊은이. 후배.

* 5) 부증참문(不曾參問) : 참문(參問)이란 참선수행에 관한 문답. 부증(不曾)이란 과거에도, 장래에도 참문(參問)할 생각이 없다는 강한 어기(語氣)가 들어 있다.

* 6) 부지문개마(不知問箇什) :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는 뜻. 이 대답은 단순히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임제의 예리한 기개(氣慨)가 포함되어 있는 표현이다.

* 7) 당두화상(堂頭和尙) : 선원의 조실 노사(老師). 여기서는 황벽(黃檗)을 가리킨다.

* 8) 성미절(聲未絶) : 묻는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 9) 문화작마생(問話作麽生) :「조실 스님과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뜻.

* 10) 단갱거문(但更去問) :「다시 한번 가서 물어보게」라는 뜻. 단(但)은 강한 강조의 뜻을 나타낸다.

* 11) 여약거시(汝若去時) 운운 :「그대가 만약 가려고 하거든 반드시 조실 스님께 고하고 떠나게.」


〈39-2〉

≪주해≫

* 1) 천착(穿鑿) : 구멍을 뚫음. 여기서는 스스로 단련하여 원숙하게 성장시키는 것.

* 2) 고안탄두대(高安灘頭大愚) : 고안(高安)은 홍주(洪州) 서주부(瑞州府)에 있다. 탄두(灘頭)란 격류(激流)가 흐르는 물가. 아마도 강서(江西)의 서주부(瑞州府)에 있는 금강(錦江)의 북안(北岸)인 듯하다.《전등록》10의 목록에는 대우(大遇)가 귀종지상(歸宗智常 ;〈14-28〉참조)의 법을 이은 사람으로 나와 있다. 상세한 전기는 불명(不明 ; 본서의 해제〈임제의현의 생애와 사상〉을 참조하기 바람.〉

* 3) 황벽유하언구(黃檗有何言句) :황벽에게서 무슨 가르침을 받았는가?」언구(言句)는 언교(言敎).

* 4) 황벽여마노파(黃檗與麽老婆) 운운 :「황벽 스님은 할머니 같은 친절함으로 너에게 일러주었거늘.」철곤(徹困)은 뼈가 부러지도록 힘든 모양.《조당집》7 설봉(雪峰)의 장,《전등록》9 위산의 장,《현사광록(玄沙廣錄)》에 같은 구절이 보인다.

* 5) 원래황벽불법무다자(元來黃檗佛法無多子) :「황벽의 불법은 원래 단순하구나, 조작이 없는 것이구나」라는 뜻. 종래의 해석으로는,「황벽의 불법은 원래 많은   것이 아니구나」라고 읽었는데 이것은 맞지 않다. 무다자(無多子)라는 말은 수량이나 가치(價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간명직재(簡明直裁)한 진리를 뜻하는 것.

* 6) 요상귀자(尿牀鬼子) : 오줌싸개. 귀자(鬼子)는 어린아이를 꾸짖는 말.


〈39-3〉

≪주해≫

* 1) 각회(却回) : 물러나서 돌아옴.

* 2) 저한래래거거(這漢來來去去) 운운 :「이 녀석, 이렇게 왔다갔다만 하니 언제 깨달아 마치겠느냐?」라는 뜻.

* 3) 작마생득저한래(作麽生得這漢來) 운운 :「어떻게든 이 사람을 붙잡아서 한 방망이 먹여야겠군.」득(得)은「붙잡다」라는 뜻. 래(來)는 득(得)에 붙는 일종의 조동사(助動詞). 득은 미래형의 원망(願望)을 나타내는 조동사. 욕(欲), 요(要)와 같은 용법.


〈39-4〉

≪주해≫

* 1) 당시(當時) : 그때.

* 2) 득대우력(得大愚力) 운운 : 득력(得力)은 은혜를 입었다는 말.〈14-43〉을 보라.

* 이상은 임제의현의 대오(大悟)에 관한 이야기이다.《조당집》에 전해지는 임제 대오의 기연(機緣)은 판이하게 다르지만《전등록》,《천성광등록》의 기록은 본서와 일치한다.《사가어록》은《천성광등록》과 마찬가지로 이 일단(一段)을 책의 맨 처음에 두고 있다. 그만큼 임제의현의 선(禪)으로서는 이 이야기가 옛부터 유명했던 것이다.

  임제의현의 탄생에서 중요한 것은 수좌의 역할이다.《조당집》에서는 황벽이 1인 2역을 맡고 의현은 황벽과 대우 사이를 왕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서에서는 황벽의 분신 역할을 수좌가 맡고 있다. 뒷날 이 수좌를 목주도종(睦州道蹤)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史實)적인 근거가 뚜렷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특히 운문문언(雲門文偃)의 개오(開悟)와 관계가 있는 목주가 의현의 경우에도 똑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것은 북송(北宋) 초기의 선을 대표하는 오가(五家)의 개조 두 사람이 같은 인물에 의해서 탄생되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연출함으로써 남악(南岳)―마조(馬祖)계 선(禪)의 역사적 의의를 재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일어난 일들은 모두 각범혜홍(覺範慧洪)의《목주도종선사영당비(睦州道蹤禪師影堂碑)》에 실려 있다. 송대(宋代)에 들어와 강서(江西)의 황벽산과 대우산은 임제의 법을 잇는 사람들의 활동무대가 되어, 본래는 전기도 알려져 있지 않은 대우가 의현의 스승으로서 중시되고 이 도량이 재흥되기에 이른다.《사가어록(四家語錄)》이 편집된 것도 모두 이때의 일이다. 하북(河北)의 진주 임제원은 송인(宋人)에게는 이제 먼 이역(異域)에 속하게 된 것이다.  


〈40-1〉

≪주해≫

* 1) 사재송차(師栽松次) : 이 일단(一段)은부터「임제재송(臨濟栽松)의 이야기」로 칭해지며,《벽암록》38칙의 평창과 함께 임제선의 원류(源流)가 되고 있다.

* 2) 허다(許多) : 매우 많이.

* 3) 일여산문작경치(一與山門作境致) 운운 : 첫째는 사찰 경내의 풍치를 위해, 둘째는 후인의 본보기를 위해서. 표방(標榜)은 標牓이라고도 쓴다(《傳心法要》). 원래는 도로의 표지판.《전등록》12 임제의 장(章)에는 이 일구(一句)가「후인들에게 예언을 주기 위해서입니다〔與後人作古記〕」라고 되어 있다.

* 4) 장두타지삼하(將钁頭打地三下) : 괭이로 땅을 파는 모습. 삼하(三下)는 세 번.

* 5) 오종도여 대흥어세(吾宗到汝大興於世) :「나의 선(禪)이 그대의 시대에 가서 세계의 구석구석에 널리 알려질 것」이라는 뜻.


〈40-2〉

≪주해≫

* 1) 위산거차화(潙山擧此) : 황벽이 임제를 향하여,「나의 가르침이 너의 시대에 가서 퍼지게 될 것」이라고 고한 말을 가리킨다.〈40-1〉참조.

* 2) 촉() : 뒷일을 맡김.

* 3) 지시년대심원(祇是年代深遠) 운운 :「먼 장래의 일이므로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라는 뜻. 지시(祗是)는「그렇지만」의 뜻.

* 4) 일인지남(一人指南) 운운 : 어느 남자가 남쪽을 가리켜서, 오월(吳越)의 지방에 왕령(王令)이 행해지다가 대풍(大風)을 만나서 그친다는 이야기. 남원혜옹(南院慧顒)의 출현을 의미한다. 오월은 강남의 절강(浙江) 지방을 가리킨다. 이 지방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천하통일의 대지(大志)를 의미한다.「우대풍(遇大風」이하의 일구(一句)는《전등록》에도 실려 있으며, 원래는 앙산의 제자 남탑광용(南塔光涌 850~936)의 해설이다. 이 구절을 포함한 사적(史的) 과제는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臨濟栽松話와 風穴廷沼의 出生〉(《禪學硏究)》51)을 보라.

* 5) 참풍혈화상야(讖風穴和尙也) : 임제하(臨濟下) 제4세 풍혈연소(風穴廷沼 896~973)의 활약을 예언한 것. 참(讖)이란 참기(讖記)라고도 하며 장래의 일을 미리 예언하는 것. 불전(佛典)에서는 불(佛)의 현기(縣記)라고 한다. 중국 민족의 참위신앙(讖緯信仰)은 불교의 현기(縣記)와 함께 매우 성행하였다. 예를 들어 측천무후(則天武后)의 혁명에 대한 참기(讖記)를 설한《대운경(大雲經)》의 위소(僞疏)를 헌상(獻上)한 예가 있다 (《三階敎硏究》).《보림전(寶林傳)》에는 당(唐)의 중기에서부터 선의 융성과 쇠퇴를 참기(讖記)한 반야다라(般若多羅)와 보지(寶誌)의 게송이 실려 있다.

* 이 일단(一段)은 후대에 성대해지는 문류(門流)의 사람들과 그 선(禪)의 원류(源流)에 대한 이야기이다. 송(宋)의 석실방수(石室方秀)는「뿌

行錄(행록)


〈39-1〉

≪주해≫

* 1) 사초재황벽(師初在黃檗) 운운 : 이 일단(一段)의 이야기는「임제대오(臨濟大悟)의 기연(機緣)」이라고 하며《벽암록》11칙의〈평창(評唱)〉에서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전해지기도 한다.《조당집》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에 대해서 본록〈마방(馬防)의 서〉 주해를 참조할 것.

* 2) 행업순일(行業純一) : 수행의 태도가 진지하고 전일(專一)함.

* 3) 수좌(首座) : 선원에서 선승들을 지도하는 수석 승려. 선어록에서는 제일좌(第一坐), 좌원(座元), 선두(禪頭), 수중(首衆)이라고도 한다. 임제대오(臨濟大悟) 당시의 수좌는 진존숙목주도종(陳尊宿睦州道蹤 780~877) 선사이다.

* 4) 후생(後生) : 젊은이. 후배.

* 5) 부증참문(不曾參問) : 참문(參問)이란 참선수행에 관한 문답. 부증(不曾)이란 과거에도, 장래에도 참문(參問)할 생각이 없다는 강한 어기(語氣)가 들어 있다.

* 6) 부지문개마(不知問箇什) :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는 뜻. 이 대답은 단순히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임제의 예리한 기개(氣慨)가 포함되어 있는 표현이다.

* 7) 당두화상(堂頭和尙) : 선원의 조실 노사(老師). 여기서는 황벽(黃檗)을 가리킨다.

* 8) 성미절(聲未絶) : 묻는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 9) 문화작마생(問話作麽生) :「조실 스님과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뜻.

* 10) 단갱거문(但更去問) :「다시 한번 가서 물어보게」라는 뜻. 단(但)은 강한 강조의 뜻을 나타낸다.

* 11) 여약거시(汝若去時) 운운 :「그대가 만약 가려고 하거든 반드시 조실 스님께 고하고 떠나게.」


〈39-2〉

≪주해≫

* 1) 천착(穿鑿) : 구멍을 뚫음. 여기서는 스스로 단련하여 원숙하게 성장시키는 것.

* 2) 고안탄두대(高安灘頭大愚) : 고안(高安)은 홍주(洪州) 서주부(瑞州府)에 있다. 탄두(灘頭)란 격류(激流)가 흐르는 물가. 아마도 강서(江西)의 서주부(瑞州府)에 있는 금강(錦江)의 북안(北岸)인 듯하다.《전등록》10의 목록에는 대우(大遇)가 귀종지상(歸宗智常 ;〈14-28〉참조)의 법을 이은 사람으로 나와 있다. 상세한 전기는 불명(不明 ; 본서의 해제〈임제의현의 생애와 사상〉을 참조하기 바람.〉

* 3) 황벽유하언구(黃檗有何言句) :황벽에게서 무슨 가르침을 받았는가?」언구(言句)는 언교(言敎).

* 4) 황벽여마노파(黃檗與麽老婆) 운운 :「황벽 스님은 할머니 같은 친절함으로 너에게 일러주었거늘.」철곤(徹困)은 뼈가 부러지도록 힘든 모양.《조당집》7 설봉(雪峰)의 장,《전등록》9 위산의 장,《현사광록(玄沙廣錄)》에 같은 구절이 보인다.

* 5) 원래황벽불법무다자(元來黃檗佛法無多子) :「황벽의 불법은 원래 단순하구나, 조작이 없는 것이구나」라는 뜻. 종래의 해석으로는,「황벽의 불법은 원래 많은   것이 아니구나」라고 읽었는데 이것은 맞지 않다. 무다자(無多子)라는 말은 수량이나 가치(價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간명직재(簡明直裁)한 진리를 뜻하는 것.

* 6) 요상귀자(尿牀鬼子) : 오줌싸개. 귀자(鬼子)는 어린아이를 꾸짖는 말.


〈39-3〉

≪주해≫

* 1) 각회(却回) : 물러나서 돌아옴.

* 2) 저한래래거거(這漢來來去去) 운운 :「이 녀석, 이렇게 왔다갔다만 하니 언제 깨달아 마치겠느냐?」라는 뜻.

* 3) 작마생득저한래(作麽生得這漢來) 운운 :「어떻게든 이 사람을 붙잡아서 한 방망이 먹여야겠군.」득(得)은「붙잡다」라는 뜻. 래(來)는 득(得)에 붙는 일종의 조동사(助動詞). 득은 미래형의 원망(願望)을 나타내는 조동사. 욕(欲), 요(要)와 같은 용법.


〈39-4〉

≪주해≫

* 1) 당시(當時) : 그때.

* 2) 득대우력(得大愚力) 운운 : 득력(得力)은 은혜를 입었다는 말.〈14-43〉을 보라.

* 이상은 임제의현의 대오(大悟)에 관한 이야기이다.《조당집》에 전해지는 임제 대오의 기연(機緣)은 판이하게 다르지만《전등록》,《천성광등록》의 기록은 본서와 일치한다.《사가어록》은《천성광등록》과 마찬가지로 이 일단(一段)을 책의 맨 처음에 두고 있다. 그만큼 임제의현의 선(禪)으로서는 이 이야기가 옛부터 유명했던 것이다.

  임제의현의 탄생에서 중요한 것은 수좌의 역할이다.《조당집》에서는 황벽이 1인 2역을 맡고 의현은 황벽과 대우 사이를 왕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서에서는 황벽의 분신 역할을 수좌가 맡고 있다. 뒷날 이 수좌를 목주도종(睦州道蹤)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史實)적인 근거가 뚜렷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특히 운문문언(雲門文偃)의 개오(開悟)와 관계가 있는 목주가 의현의 경우에도 똑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것은 북송(北宋) 초기의 선을 대표하는 오가(五家)의 개조 두 사람이 같은 인물에 의해서 탄생되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연출함으로써 남악(南岳)―마조(馬祖)계 선(禪)의 역사적 의의를 재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일어난 일들은 모두 각범혜홍(覺範慧洪)의《목주도종선사영당비(睦州道蹤禪師影堂碑)》에 실려 있다. 송대(宋代)에 들어와 강서(江西)의 황벽산과 대우산은 임제의 법을 잇는 사람들의 활동무대가 되어, 본래는 전기도 알려져 있지 않은 대우가 의현의 스승으로서 중시되고 이 도량이 재흥되기에 이른다.《사가어록(四家語錄)》이 편집된 것도 모두 이때의 일이다. 하북(河北)의 진주 임제원은 송인(宋人)에게는 이제 먼 이역(異域)에 속하게 된 것이다.  


〈40-1〉

≪주해≫

* 1) 사재송차(師栽松次) : 이 일단(一段)은부터「임제재송(臨濟栽松)의 이야기」로 칭해지며,《벽암록》38칙의 평창과 함께 임제선의 원류(源流)가 되고 있다.

* 2) 허다(許多) : 매우 많이.

* 3) 일여산문작경치(一與山門作境致) 운운 : 첫째는 사찰 경내의 풍치를 위해, 둘째는 후인의 본보기를 위해서. 표방(標榜)은 標牓이라고도 쓴다(《傳心法要》). 원래는 도로의 표지판.《전등록》12 임제의 장(章)에는 이 일구(一句)가「후인들에게 예언을 주기 위해서입니다〔與後人作古記〕」라고 되어 있다.

* 4) 장두타지삼하(將钁頭打地三下) : 괭이로 땅을 파는 모습. 삼하(三下)는 세 번.

* 5) 오종도여 대흥어세(吾宗到汝大興於世) :「나의 선(禪)이 그대의 시대에 가서 세계의 구석구석에 널리 알려질 것」이라는 뜻.


〈40-2〉

≪주해≫

* 1) 위산거차화(潙山擧此) : 황벽이 임제를 향하여,「나의 가르침이 너의 시대에 가서 퍼지게 될 것」이라고 고한 말을 가리킨다.〈40-1〉참조.

* 2) 촉() : 뒷일을 맡김.

* 3) 지시년대심원(祇是年代深遠) 운운 :「먼 장래의 일이므로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라는 뜻. 지시(祗是)는「그렇지만」의 뜻.

* 4) 일인지남(一人指南) 운운 : 어느 남자가 남쪽을 가리켜서, 오월(吳越)의 지방에 왕령(王令)이 행해지다가 대풍(大風)을 만나서 그친다는 이야기. 남원혜옹(南院慧顒)의 출현을 의미한다. 오월은 강남의 절강(浙江) 지방을 가리킨다. 이 지방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천하통일의 대지(大志)를 의미한다.「우대풍(遇大風」이하의 일구(一句)는《전등록》에도 실려 있으며, 원래는 앙산의 제자 남탑광용(南塔光涌 850~936)의 해설이다. 이 구절을 포함한 사적(史的) 과제는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臨濟栽松話와 風穴廷沼의 出生〉(《禪學硏究)》51)을 보라.

* 5) 참풍혈화상야(讖風穴和尙也) : 임제하(臨濟下) 제4세 풍혈연소(風穴廷沼 896~973)의 활약을 예언한 것. 참(讖)이란 참기(讖記)라고도 하며 장래의 일을 미리 예언하는 것. 불전(佛典)에서는 불(佛)의 현기(縣記)라고 한다. 중국 민족의 참위신앙(讖緯信仰)은 불교의 현기(縣記)와 함께 매우 성행하였다. 예를 들어 측천무후(則天武后)의 혁명에 대한 참기(讖記)를 설한《대운경(大雲經)》의 위소(僞疏)를 헌상(獻上)한 예가 있다 (《三階敎硏究》).《보림전(寶林傳)》에는 당(唐)의 중기에서부터 선의 융성과 쇠퇴를 참기(讖記)한 반야다라(般若多羅)와 보지(寶誌)의 게송이 실려 있다.

* 이 일단(

리가 깊고 흐름이 긴〔源深流長〕것」을 임제선의 특색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임제의 제오세(第五世)로 보이는 풍혈연소의 출생이 위앙의 문답에 의해 예언되어지는 것은 당시 관심의 일단(一端)을 전해주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말(唐末) 5대(代)의 전란기에 하북(河北)의 진주라는 천애(天涯)의 일각(一角)에서 독처(獨處)하며 사람들의 견문 밖에 있던 임제의 선(禪)이 그 문류(門流)에 의해 다시 강남에서 성대해질 무렵, 위산과 앙산의 증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본서의 주요부분인 상당(上堂)과 시중(示衆)은 임제의 언어를 기억하거나 기록했던 직제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정리되었지만, 감변(堪辨)과 행록(行錄)은 제3자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다. 마치 임제의현의 개오(開悟)에 관한 일단(一段)이 임제 스스로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위산과 앙산에 의해 전해진 것처럼《임제록》의 형성에는 편자들의 시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임제의현의 선체험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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