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청화큰스님] 불이일원론 (두 번째)

通達無我法者 2007. 11. 26. 14:11

(청화 큰스님 2545년 2월 7일, 동안거 해제법문)

그 무명이란 것이 없을 무(無)자 밝을 명(明)자, 무명인데 무명이란 것이 그야말로 집요한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것이 무명인데, 인생고는 다름 아닌 무명 때문에 잘못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불경에는 제고가 무명고(諸苦無明故)라. 인생고가 무명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생고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무명 때문에 잘못 보아서 있단 말입니다. 따라서 무명의 반대가, 무명의 반대인 동시에 무명의 본체(本體)가, 진여(眞如)란 말입니다. 참 진(眞)자 같을 여(如)자, 진여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무명과 진리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영가현각대사(永嘉玄覺大師)의 증도가(證道歌)에도 있는 법문입니다마는 무명의 실상이 바로 진여불성이란 말입니다(無明實性卽佛性). 무명이 따로 있고 즉 어리석음이라는 무명이 따로 있고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참말로 있는 것은 결국 진여불성(眞如佛性)뿐이란 말입니다. 진여 뿐인데 우리 중생이 자업자득으로 스스로 분별시비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무명도 궁극적으로 따지고 보면 진여 위에 이루어진 하나의 허상에 불과합니다. 허구(虛構)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성불할 때까지는 사뭇 놓치지 않고서 공부를 해야되겠지만 아까 말씀마따나 우리 중생은 모양세계에 있어놔서 모양세계란 것은 그때그때 구분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하루에 세 때 먹어야되고 갈 곳은 가야되듯이, 모양에 따른 한계가 있어서 쉴 때도 필요하고 푸는 제도 맺는 제도도 있고 처음과 끝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공부에는 무간수행(無間修行)이라. 없을 무(無)자 사이 간(間)자, 사이가 없이 공부를 해야 번뇌(煩惱)의 침해를 받지 않습니다.


공부를 했다 안 했다 하면 우리 중생의 본래의 뿌리는 진리일망정 우리가 무명무지가운데 있고 과거 전생의 숙업(宿業)도 많이 짓고 금생에도 학교에서 잘못배우고 사회의 모순상황에서 오염(汚染)을 많이 받습니다. 그 때문에 중생은 범부(凡夫)때는 하나의 속물(俗物)입니다. 속물이란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 속물입니다. 산이나 냇이나 좋은 것이나 궂은 것이나 모두가 다 바로 본다면 이것이 환상에 불과한 것인데, 제법(諸法)이 다 공(空)한 것인데, 제법이 공한 것인 줄 모르는 것은 사실은 중생이 속물이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