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청화스님] 모든 중생을 부처님 같이

通達無我法者 2007. 11. 26. 14:09

모든 중생을 부처님 같이

나나 너나 모든 존재가 본래 둘이 아니다. 이렇게 믿고 모든 중생을 부처님 같이 대해야만 불교의

믿음입니다. 그래야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의 도리,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연기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의 도리에서 왔기 때문에 -본래는 하나라 하더라도 사람이 되고 다른 짐승이 되고 했으면 그때는 구분이 있지 않겠는가?- 구분이 있게 보는 것은 우리 중생이 구분이 있게 보는 것이지 성자는 하나의 생명체 부처님으로 보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부처님 도리 연기법으로 고찰한다면 본래 물질이 없습니다. 본래 공한 자리에서 잠시간 그림자 같은 상을 낸 것이 내 몸이고, 네 몸이고, 달 또는 해라고 하는 것이지 본래 고유한 모양이 없습
니다.


모양이 없기 때문에, 본래 모습 그대로 부처한테서 왔기 때문에 사람이 되고 개가되고 새가되고 소가 되고 했다 하더라도 바로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산도 부처고 물도 부처고 다 부처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면 산은 그대로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고찰할 때는 산도 부처님이고 물도 부처님 입니다. 그러기에 소동파 같은 분도 산은 바로 부처님의 청정 법신의 몸이요, 또 물의 흘러가는 소리는 바로 부처님의 그런 광대무변한 법문이요,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부처님한테 가는 길은 바로 행복스러운 길입니다. 한 걸음 가면 한걸음 간 만치 우리 업장이 녹아지고 동시에 우리 마음도 감로수 같은 그런 맛이 차근차근 우리한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믿으셔야 됩니다. 본래가 우리 눈으로 보는 물건은 제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 차원에서 있다고 보고, 보석으로 보이는 것이지, 본래의 차원 연기법의 그런 우주의 도리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텅텅 비어 있습니다. 그렇게 보시고서 그런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화두(話頭)가 있고 염불(念佛)이 있고 주문(呪文)이 있습니다. 어느 화두나 염불이나 주문이나, 부처님 팔만 사천법문 모두가 본래로 하나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