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12 도덕있는 사람은 대중과 같이 즐긴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6:51
12  도덕있는 사람은 대중과 같이 즐긴다   담당 문준(湛堂文準)스님 / 1061∼1115 
 

 1. 담당 문준(湛堂文準:1061∼1115)스님이 처음 진정스님을 참례하고 나서 항상 휘장 속에서 불을 켜 놓고 책을 읽자, 진정스님이 이렇게 꾸짖었다.
"배우는 목적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이니, 많이 배웠다 해도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았다면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구나 저마다 다른 백가(百家)의 이론은 산처럼 바다처럼 방대한데 그것을 다 보려 하는가. 그대는 지금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고 있는데 이는 마치 하인이 주인을 부리는 격이니 도업(道業)을 방해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모름지기 모든 바깥 인연을 다 끊고 오묘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니, 그렇게 해나가다가 뒷날 되돌아본다면 문을 밀어젖힐 때 지도리에 맞듯 순조로울 것이다."
담당스님은 그때부터 익히던 것을 버리고 선관(禪觀)에만 전일(專一)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납자가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를 읽는 소리를 듣고 활연히 깨달아 응어리가 풀린 뒤, 말물이 틔어 대중 가운데 스님을 능가하는 자가 드물었다.

2. 도덕이 있는 사람은 대중과 같이 즐기고, 도덕이 없는 사람은 혼자 즐기기를 좋아한다. 대중과 즐기는 사람은 발전하지만 자기 몸만 즐기는 사람은 망한다. 요즈음 주지라 불리우는 자들은 자기의 좋고 싫은 감정으로 대중을 대하는 경우가 많아, 그 때문에 대중들이 그를 거스른다. 좋아하면서도 단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사람의 장점을 알아주는 사람은 찾아보아도 드물다. 그러므로 근심과 즐거움을 대중과 함께 하고, 좋고 싫음을 같이하는 자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의(義)가 있는 곳이라면 천하 누군들 귀의하지 않겠는가. 『췌우집(贅集)』

3. 도라는 것은 고금의 바른 저울이다. 그런데 그것을 널리 펴는 문제는 변화에 통달하는 데 달려있다. 변화를 알지 못하는 자는 문자에 구애되고 가르침에 집착하여 모양과 감정에 막히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방편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778∼898)스님에게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면〔萬法歸一〕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一歸何處〕"라고 묻자, 조주스님은 "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때 삼베로 옷을 지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옛사람이 권도(權道)의 변화에 통달하지 못했더라면 이처럼 응수할 수 있었겠는가?
성인이 말씀하시길, "그윽한 골짜기는 사심이 없어 마침내 메아리를 이루고, 커다란 종은 종틀에 매여 있기 때문에 치는 대로 소리가 난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큰 방편에 막힘이 없는 상근기(上根氣) 인재가 상도(常道)로 되돌아가 합치하려면, 하나만 고집하느라 변화에 응하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이상로서(與李商老書)』

4.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스승이 될 만한 사람으로 벗을 삼아야 한다. 언제든지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일마다 본받을 만하여 나에게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혹 지식이 나보다 약간 나은 경우도 사귈 만하나, 부족한 점을 경책해야 하고 만일 나와 비슷한 경우라면 없느니만 못하다. 『보봉실록(¿峯實錄)』

5. 조정(祖庭)이 말운(末運)에 당하여, 시끄럽게 들뜨지 않는 정도의 수행자도 진실로 만나기 어렵다. 옛날에 진여(眞如:?∼1095)스님이 지해사(智海寺)에 머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상강(湘江)의 서쪽 도오사(道吾寺)에 있을 때, 대중은 많지 않았으나 늙은 납자 몇 명이 이 도리를 참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위산(大山)으로부터 여기에 와서는 대중이 9백명을 밑돌지 않았으나 대여섯 사람도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로써 사람을 얻는 것이 많은 숫자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안다. 『실록(實錄)』

6. 상대방의 실천에 관한 문제는 한 번 대답하고 따져 묻는 정도로는 다 알지 못한다. 입으로는 날카롭게 변론하는 자라도 실제 일 처리는 미덥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으며, 말솜씨가 없는 자도 더러 이치에 밝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비록 말로는 끝까지 했다 해도 그 이치를 다하지 못했을까 염려스러우며, 입은 굴복시켰다 해도 그 마음은 굴복시키지 못했을까 염려스럽다.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운 문제는 성인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겼다.
요즘의 납자들은 저 잘난 줄만 알 뿐 대중의 마음을 아는 데는 힘쓰지 않고 보고 듣는다는 것이 그저 남의 허물과 틈이나 엿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대중의 바람을 저버리고 어기면서 서로가 속임수를 더할 뿐이다. 그리하여 불조(佛祖)의 도들 더욱 얄팍하게 하여 거의 구제할 도리가 없게 하였다. 『답노직서(答魯直書)』

7. 담당스님이 묘희(妙喜)스님에게 말하였다.
"상법(像法)·말법(末法)시대에는 밖으로 사물을 따라가 마음을 밝히지 못하는 비구가 많다. 비록 큰일을 한다 해도 그것이 도에 관한 것은 아니니, 이는 비루하고 외람된 데 붙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서, 마치 소의 등에 붙어 있는 등에〔〕가 날다가 얼마 못 가는 꼴이다. 가령 천리마의 꼬리에 붙는다면 문득 바람을 좇고 해를 따르는 능력을 가지게 되리니, 이는 몸을 맡긴 곳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는 반드시 처소를 가려 머물고, 큰 인재에게 가서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사벽(邪僻)을 끊고 중정(中正) 가까이서 바른 말을 들을 수 있다.
옛날 복엄 양아(福嚴良雅)스님은 진여 모철(眞如慕喆)스님이 내건 목표를 존중하여 매양 사랑하였으나, 그가 의지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몰랐었다. 하루는 그가 대영 도관(大寧道寬)·장산 찬원(莊山贊元)·취암 가진(翠巖可眞)스님과 함께 가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기쁨을 누르지 못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선문(禪門)의 용상(龍象)인 모든 큰스님들을 그대가 따르며 배우고 있으니, 뒷날 무너지는 우리 도(道)를 지탱해 주고 조사의 가르침을 드러내어 대중을 구제하는 일은 실로 내가 여러 사람에게 이러니저러니할 일이 아니겠군." 『일섭기(日涉記)』

8. 담당스님이 묘희스님에게 말하였다.
참선은 깊은 사려와 뛰어난 투지를 요한다. 다른 사람에게 신의를 주기 위해서나 혹은 권세와 이익을 따르느라 말과 행동을 구차하게 굽히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도반에게 나쁜 본보기가 되지 않을 뿐더러 당시 사람들이 치켜올리거나 깎아내리지 못하게 된다. 『보봉기문(寶峯記聞)』

9. 나는 옛날 영원(靈源)스님과 함께 장강사(章江寺)에서 회당스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영원스님이 하루는 두 스님과 함께 성(城)에 들어갔다가 늦게야 돌아왔다. 회당스님이 "오늘 어디엘 갔었는고?" 하고 묻자 영원스님이 말하였다.
"마침 대영사(大寧寺)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그때 사심(死心:1044∼1115)스님이 곁에 있다가 엄하게 따졌다.
"참선하여 생사를 해탈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말을 성실히 해야 합니다. 청형(淸兄)께서는 어떻게 거짓을 말할 수 있읍니까?"
영원스님은 얼굴을 붉히며 감히 대꾸를 못하였고 그 뒤부터는 성안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허망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나는 영원스님과 사심스님 모두가 훌륭한 그릇임을 이 사건으로 알게 되었다. 『일섭기(日涉記)』

10. 영원스님은 경사(脛史) 읽기를 좋아하여 밥 먹고 쉬는 사이에도 잠시도 쉬지 않았으며, 책을 외어야 읽기를 그만두었다. 회당스님이 그 일을 꾸짖자 영원스님이 말하였다.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은 거두는 공도 크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러므로 태사(太史) 황노직(黃魯直)도 말하기를, `청형(淸兄)께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주리고 목마를 때 마시고 먹을 것을 찾듯하고, 번거롭고 화려한 이양(利養)은 악취를 보듯 합니다'라고 하였읍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천성으로서 억지로 그렇게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췌우집(贅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