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13 화복과 길흉은 한 울타리안에 있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6:53
13  화복과 길흉은 한 울타리안에 있다  영원 유청(靈源惟淸)스님 / ?∼1117 
 

 1. 영원 유청(靈源惟淸:?∼1117)스님이 서주(舒州) 태평사(太平寺)에 머물 때, 불안(佛眼:1067∼1120)스님이 대중을 대함에 늘 빈틈이 없어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 요점을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차라리 여유있게 하느라고 범하는 실수는 있을지언정 다급한 데서 실수하면 안되며, 간략한 데서 실수할지언정 자세한 데서 실수해서는 안된다. 다급하면 고칠 수 없고, 자세하면 용납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중도(中道)를 지키면서 여유있게 상대하면 대중을 대하여 일을 주관하는 법도에 맞는다 하겠다." 『습유(拾遺)』

2. 영원스님이 장령 수탁(長靈守卓:1065∼1123)스님에게 말하였다.
"도가 펴지는 것도 원래 자연스러운 시기가 있는 법이다. 지난날 자명(慈明)스님이 형(荊)·초(楚) 사이에서 마음을 놓아버리고 수치와 모욕을 참으며 지낼 때, 사람들은 스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스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죽 이어진 큰 성(城)과 기왓조각이 부딪치면 상대가 안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신정(神鼎:?∼901)스님을 뵙고 난 후, 명예가 총림에 퍼져 결국은 임제(臨濟:?∼867)스님의 도를 일으켰다."
아 - 아, 도와 시기를 구차하게 억지로 할 수 있겠는가. 『필첩(筆帖)』

3. 영원스님이 황태사(黃太史)에게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렇게 비유하였다.
`땔나무 더미 아래에다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누워 있으면서 아직 불붙지 않았다고 태평하게 여긴다.'
이 말은 실로 안위의 기미와 생사의 이치를 비유한 것으로서, 밝게 뜬 해처럼 그 사이에는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평소 한가히 지낼 때는 생사문제를 염려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예측하지 못한 데서 일이 터져 나오면 아무리 발버둥쳐 구해 보려 하나 끝내 어찌할 수가 없다." 『필첩(筆帖)』

4. 영원스님이 불감(佛鑑)스님에게 말하였다.
"대체로 동산(東山) 사형의 편지를 받아 보면 한번도 세상 일〔世諦〕에 관해 말씀한 적은 없고, 정녕 몸을 잊고 도를 널리 펴 후학을 이끌어주는 일뿐이었다.
지난번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뭄으로 입은 농사 피해, 나는 그것을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선가(禪家)에 안목(眼目) 없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올 여름 안거에 100여 명이 집안에서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화두를 들고 있으나 한 사람도 알아낸 이가 없으니, 이것이 근심스러울 뿐이다.'
참으로 지극하신 말씀이다. 살림이 잘 다스려지지 않음을 근심하고, 관리에게 미움 사서 책망 들을까를 두려워하며, 명성과 지위가 드날리지 않을까 염려하고 자기 권속이 적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자와는 실로 천지차이라 하겠다. 매양 생각해 보아도 이치에 맞는 이런 말을 어떻게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 우리 조카 그대가 법손〔嫡嗣〕이 되어 제 힘껏 가풍을 진작하려면 당연히 종도(宗徒)들의 여망에 부응해야 하리니, 이 점을 간절히 비는 바이다." 『섬시자일록(蟾侍者日錄)』

5. 맷돌을 돌리면 깎이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땐가 다하고, 나무를 심고 기르면 자라나는 것이 눈에 띄지는 않아도 어느 새 크게 자란다. 덕을 쌓고 거듭 실천하면 당장은 훌륭한 점을 모르나 언젠가는 쓰이고, 의리를 버리면 그 악한 것을 당장은 모른다 해도 언젠가는 망한다. 배우는 사람이 충분히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면 큰 그릇〔大器〕을 이루어 명예로운 이름을 남길 것이다. 이것이 고금에 변치 않는 도이다.[필첩(筆帖)]

6. 영원스님이 혜고(惠古)스님에게 말하였다.
"화복은 서로 맞물려 있고 길흉도 같은 구역인데 사람 스스로가 이것을 부를 뿐이니, 어찌 깊이 생각치 않을소냐. 혹 기쁘거나 노한 자기 감정을 멋대로 부린다면 관대하던 포용력이 좁아지고, 사사로운 마음으로 사치하며 남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이는 모두 주지의 급무가 아니며, 실로 방자함의 싹이자 재앙의 바탕이다." 『필첩(筆帖)』

7. 영원스님이 이천(伊川)선생에게 말하였다.
"재앙이 복을 일으킬 수도 있고 복이 재앙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재앙에서 복이 나온다 함은, 재액이 생기려 할 때에 간절히 무사하기를 생각하고 깊이 이치를 구하면 드디어는 공경하고 조심하게 되므로 재앙이 복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복에서 재앙이 생긴다 함은 거처가 편안하고 느긋할 때는 원하는 대로 사치를 부리며 방종하여 교만과 게으름에 빠지며, 경솔하고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때문에 재앙이 생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어려움이 많으면 뜻을 이루고, 어려움이 없으면 몸을 잃는다'고 하셨다. 얻는 것이 있으므로 잃게 되며, 잃기 때문에 또 얻게 된다. 이로써 복은 요행으로 구하지 못하며, 복을 얻는 것도 그저 틈을 엿보기만 하여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복스럽게 살 때 재앙을 염려하면 그 복을 보전할 수 있고, 얻고 난 뒤에도 잃을까 염려하면 얻을 것이 반드시 이르러 온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다스려졌을 때에도 혼란함을 잊지 않는다." 『필첩(筆帖)』

8. 영원스님이 이천선생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자기모습이 남는 것을 싫어하여 그림자가 질까 두려워하며 등지고 도망가려 한다. 그러나 빨리 도망갈수록 자취는 더욱 많아지며, 그림자도 더욱 빨라진다. 도망가기를 그치고 그늘에 들어가 그림자가 스스로 없어지고 자취도 자연스럽게 끊어지게 하느니만 못하다. 일상생활에서 이점을 분명히 한다면 앉은 자리에서 이 도에 나아가리라." 『필첩(筆帖)』

9. 주지가 되어서 그 지위가 하는 일보다 넘어서는 자는 대체로 끝까지 잘 마무리짓는 경우가 드물다. 그것은 아마도 복덕이 천박하고 도량이 좁으며 지식이 보잘것 없는 데다가 훌륭한 이를 따라 애써 바른 도리를 배움으로써 자기를 넓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리라. 『일록(日錄)』

10. 영원스님은 각범(覺範)스님이 좌천되어 영남지방의 바닷가로 귀양갔다는 소문을 듣고 탄식하였다.
"한길에 심어진 난초는 한 철을 푸르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에 사는 계수나무는 해를 넘기지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재주와 지혜가 있는 사람이 몸을 다치거나 비방으로 재앙에 걸리는 자는 많고, 세상과 함께 떴다 가라앉았다 하며 몸을 보존한 자를 찾아보자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당세에 총명하고 사려깊은 자로서 거의 죽을 뻔한 사람은 남에 대해 이런저런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이며, 굉장한 말재주로 자기를 위태롭게 하는 자는 남의 단점 들춰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셨는데 각범스님에게 이런 문제가 있었다 하겠다." 『장강집(章江集)』

11. 영원스님이 각범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남쪽 지방에 있을 당시 『능엄경(嚴脛)』을 공부하여 특별히 주석을 썼다 하던데, 이것은 모자란 나로서는 원치 않는 바이다. 문자공부로는 자기 성품의 근원을 밝힐 수 없을 뿐더러, 후학들이 부처님의 지혜만을 얻는데 장애만 줄 뿐이니, 그것은 남을 통해 이해함으로써 스스로 깨치는 방편을 막아버리는 데 병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재주만 늘리면 천박한 지식만 성해지고 알음알이를 틔워주면 끝내 묘한 깨달음을 극진히 하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이해와 실천이 맞지 않고 늘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어두워지는 것이다. 『장강집(章江集)』

12. 도를 닦는 사람은 일거일동과 모든 언행을 반드시 살피고 돌아보아야 한다. 말이 적다 해서 반드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며, 말 잘하는 자라 해서 꼭 지혜로운 것도 아니다. 또한 촌스럽고 소박한 자라 해서 반드시 패륜아는 아니며 공순하다 해서 꼭 충성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선지식은 말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않고 자기 생각만 가지고 납자를 선별하지도 않는다.
강호(江湖)에 떠도는 납자라면 누군들 도를 구하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그 가운데서 분명하게 깨닫고 이치를 본 자는 천백에 하나도 없다. 그 사이에서 자신을 닦는데 힘쓰고 이제껏 배운 것을 모아 덕을 갖추는 데에는 30년이 걸려야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일 하나 잘못되어 총림이 그를 버린다면 종신토록 꼼짝 못하게 된다.
그러나 열두 대의 수레를 비출 수 있는 굉장한 구슬에게도 더 나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죽 이어진 커다란 성곽과 바꿀 만한 구슬인들 어떻게 흠집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범부 유정(有情)으로서 어찌 허물이 없을 수 있겠는가.
공부자(軫夫子)는 성인이셨으나 그래도 "나에게 몇 년의 시간이 주어져 『주역(周易)』을 배울 수 있다면 큰 허물은 없을텐데"라고 말씀하셨다. 경전에서도 말하기를, "사념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지 말고 깨달음이 더디어질까를 염려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더구나 성현 이하라면 누구인들 과실이 없겠는가. 선지식쯤 되어야 정도가 다른 모든 근기를 빠뜨리지 않고 남을 다 곡진하게 완성시켜 줄 수 있다.
"솜씨가 뛰어난 목수는 수레바퀴냐 서까래냐의 쓰임새를 따라 굽었거나 곧거나 못 쓰는 재목이 없으며, 훌륭한 말몰이는 험하고 평이한 길에 적합하도록 고름으로써 노둔한 말이든 천리마든 본성을 잃음이 없게 한다"는 것도 이런 뜻에서 하는 말이다.
다른 것도 이와 같다면 사람도 마땅히 그러하리라. 가령 인재를 선택하는 일에 애증(肯憎)의 감정을 따르고, 합심하느냐 갈라서느냐의 문제도 취향이 같으냐 다르냐에 매인다면 이는 자〔繩墨〕를 버리고 사각형과 원을 마름하며, 저울을 버리고 무게를 다는 것과 같다. 비록 꼼꼼하게 했다 해도 틀린 데가 나오기 마련이다.

13. 훌륭한 주지라면 대중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아 마음을 사사롭게 하지 않으며, 대중의 이목(耳目)을 자기 이목으로 삼아 자기 이목을 개인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중의 뜻을 훤히 알고 여러 사람의 심정을 극진히 할 수 있다.
대중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으면 좋고 싫은 감정을 바로 대중과 함께 하여 좋아해도 삿되지 않고 싫어해도 어긋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자기 속마음에 사사롭게 맡겨 아첨을 달게 받아들이겠는가. 대중의 이목을 자기 이목으로 삼았다면 모든 사람의 밝은 귀와 눈이 다 내것이 된다. 그러므로 밝은 눈으로는 비춰보지 못할 것이 없고 밝은 귀로는 듣지 못할 것이 없으리니, 굳이 무엇 때문에 자기 이목만을 밀어 미혹에 가리움을 자초하겠는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중의 이목을 믿는 경우란 어질고 지혜로운 인재가 자기 허물 고치기를 힘쓰고 대중의 바람에 부응할 때뿐이니, 여기에는 치우침이나 사사로움이 없어서 누구나가 다 마음을 귀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과 인의가 멀리 퍼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애써 남의 허물이나 들춰내려 하고 대중이 하자는 대로 따르지 않아서 자기 중심적인 태도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대중의 마음이 그에게서 다 떠난다. 
그러므로 악한 명성과 거친 행동이 멀리 퍼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이로써 알아야 할 것은 주지되는 사람이 대중의 바람에 부응하면 현철(賢哲)하다는 소리를 듣고, 대중의 바람을 저버리면 용렬한 무리라고 낙인 찍힌다는 것이다.
대체로 속마음을 털어놓느냐, 자기 이목에 맡기느냐가 다르기 때문에 선악과 성패가 이렇게 상반되는 것이다. 이는 허물을 고쳐가는 사정이 다르고 사람을 쓰는 방법이 같지 않아서 그렇지 않겠는가.

14. 요즈음 큰스님이라 하는 이들 중에 두 가지 경계에 끄달려서 지식(智識)이 분명치 못하며, 두 가지 잘못된 풍조에 빠져 법다운 체모를 잃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첫째는 마음에 거슬리는 경계를 마주하면 오그라드는 태도에 빠지는 경우이며, 둘째는 마음에 드는 경계를 받아들여 편리함만을 찾는 풍조에 빠지게 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두 가지 풍조에 빠지고 나면 마음 속에는 희노(喜怒)의 감정이 엇갈리고 우울하고 발끈하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나니, 이는 불교 문중에 먹칠하고 지성인들의 비웃음과 꾸지람을 사게 되는 소치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야만 훌륭하게 받아들여 교화하는 방편을 자유롭게 쓰면서 후학을 잘 인도할 수 있다.
가령 낭야 광조(廣照)스님 같은 경우, 소주(蘇州)에 가서 범희문(范希文)과 만났을 때, 거기에서 신도들이 바친 시주물과 돈 천여 꿰미를 받고는 가만히 사람을 보내 성에 있는 모든 사찰의 대중 숫자를 계산해 보고 모두에게 남 모르게 돈을 보냈다. 마침 그 날은 여러 사람이 모일 단(檀)을 만들어 재(齋)를 베푸는 날이었는데, 이른 새벽에 희문에게 미리 인사하고 배로 떠나버렸다. 날이 밝아서야 대중들은 그가 이미 떠나버렸다는 것을 알았으며, 쫓아간 사람은 상주(常州)에 이르러서야 그를 뵙고 유익한 법문을 듣고 되돌아왔다 한다.
이 노덕(老德)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더니 고소(姑蘇)의 승·속 모두에게 신심을 일으키고 도의 종자를 더욱 깊게 심어 주었다. 스님은 사람을 받아들여 교화하는 방편을 자유롭게 운용했다 할 만하니, 법의 지위를 훔쳐 재물에 구애받으며 자기 한 몸만을 도모하는 자와는 천지차이라 하겠다. 『여덕화상서(與德和尙書)』

15. 문정공(文正公:희문)이 낭야스님에게 말하였다.
"작년에 여기에 와서 법담을 나눌 만한 스님을 찾았읍니다. 그리하여 한 관리에게 곳곳에 좋은 스님이 계시는가를 물어보았더니, 그는 북사(北寺)인 서광사(瑞光寺)에 계신 희(希)·무(茂) 두 스님이 훌륭하다고 가르쳐 주었읍니다. 나는 이밖에 다른 선원과 율원에는 별다른 분이 없는지를 다시 물었더니, 관리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유가(儒家)에서는 선비다운 행을 존중하고, 불가(佛家)에서는 덕업(德業)을 논합니다. 그런데 희(希)·무(茂) 두 스님은 30년 동안 문지방을 넘지 않고 옷은 흰 베옷만 걸치며 명성과 재물에는 결코 걸림이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지방 사람들이 그의 지조와 실천을 높이 사서 스승으로 받듭니다. 법좌(法座)에 올라 설법을 하며 부처님을 대신해 교화를 드날리는 경우에는 근기에 따라 자재하게 설하시니, 선지식이라 일컬어지는 스님들을 저같이 어두운 관리가 알아볼 수 있겠읍니까.'
그리하여 한가한 날, 두 분 큰스님을 방문하여 평소의 행동을 살펴보았더니 관리의 말 그대로였읍니다. 나는 물러나서 생각해 보았읍니다. 예로부터 소(蘇)·수(秀) 지방의 풍속이 좋다더니, 지금 늙은 관리를 살펴보건대 군자와 소인의 우열을 분간하고 있었읍니다. 더구나 식자(識者)이겠읍니까."낭야스님은 말하였다.
"관리의 말과 같다면 실로 높이 평가할 만하니 이를 기록하여 아직 듣지 못한 사람을 깨우치기 바라네." 『낭야별록(¿別錄)』

16. 종산 찬원(鐘山贊元)스님은 평소에 높은 벼슬아치와 사귀지 않아서 명예와 이익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겸양으로 자신을 기르고 도닦는 일로 낙을 삼았다. 사대부들이 그에게 세상사에 응해줄 것을 처음 권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진실로 좋은 터전이 있다면 늦게 되는 것쯤이야 무얼 그리 근심하겠는가? 아뭏거나 가재도구가 모자랄까 근심하는 정도면 그만이지."
형공(荊公)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기미만 살피고도 재앙이 미칠 것 같으면 당장 달아난다 하더니 이 사람이야말로 이 도리를 터득한 사람이라 하겠다." 『췌우집(贅集)』

17. 선철(先哲)이 말하기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깨닫기가 어렵고, 깨닫고 나서는 지키기가 어려우며, 지키고 나면 실천에 옮기는 일이 어렵다"라고 하였다. 지금 막상 실천하려고 보니 깨닫고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 이유는 깨닫고 지키는 일은 굳세고 열심히 정진하여 혼자서 힘쓰면 될 뿐이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반드시 평등한 마음으로 죽기를 맹세하고 자기를 덜어내어 남을 이익케 한다는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등하지 못하고 결심이 굳지 못할 경우, 자신을 덜어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 뒤바뀌어 세속과 영합하고 스승께 아부나 하는 부류에 떨어지게 되니, 두려워해야 한다.

18. 동산(東山) 사형께서는 천성이 뛰어나 모든 일상이 법도에 맞았다. 평소에 하신 법문은 그 이치가 자연스럽고 훌륭하여 제방(諸方)에서 이를 본뜨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궤변이거나 속되지 않으면 과장되고 고루하여 끝내 스님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또한 옛날 사람들 중에서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분이었다.
그러나 사형께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잘난 점을 누그러뜨리고 중생 인도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사람보다 더 간절히 중생을 이끌어주셨다.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법이 없는데 어떻게 제자(諸子)를 지도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불법 문중의 죄인이다."

19. 영원스님은 도를 배우고 의리를 실천함에 있어서 순진하고 후덕하여 옛사람의 격조를 지녔으며, 진중한 태도에 말수가 적어서 더욱 사대부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보통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것을 성인들은 신중히 여기는 법이다. 더구나 총림의 주지가 되어서 부처님을 도와 교화를 펴려 한다면 깨달음과 행동〔解行〕이 부합하지 않고서야 되겠는가. 중요한 점은 그때그때마다 단속하고 자책하여 명예나 물질을 구하는 마음이 속에서 싹트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혹 법령(法令)이 미덥지 못하여 납자들이 잘 따르지 않을 경우가 있으면 물러나 생각해 보고 덕을 닦아 사방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대접해야 한다. 자신이 바른데도 총림이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
이른바 덕 있는 이의 용모만 보아도 사람들의 물든 생각이 싹 없어진다고 하는 이야기이니, 진실됨이 실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기문(記聞)』

20. 영원스님이 원오 극근(圓悟克勤:1062∼1135)스님에게 말하였다.
"납자에게 도를 볼 수 있는 자질이 있다 해도 깊이 새겨두고 더욱 발전시켜주지 않으면, 그 도를 운용하는 면에서 반드시 모가 나고 급하게 된다. 이는 불교 문중에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재앙과 오욕을 부를까 염려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