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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까지의 허다한 연설들이 모두 방편으로 대꾸한 것들이어서,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신 실다운 법이란 아주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실다운 법이란 전도됨이 없거늘, 네 지금 묻는 곳에서 스스로 전도되고 있느니라. 그러면서 무슨 실다운 법을 찾는다는 말이냐?"
"묻는 곳에서 이미 스스로 전도된 것이라면, 스님께서 대답하신 곳은 어떠하십니까?" "사물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볼지언정 남의 일에는 상관할 것이 없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개와도 같아서 움직이는 물건을 보기만 하면 문득 짖어대니,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과 눠 별다를 게 있겠느냐."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이 선종은 위로부터 이제껏 이어 내려 오면서 알음알이[知解]를 구하게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도를 닦으라고만 했을 뿐인데, 사실 이것도 교화하는 방편설이니라. 그러니 도 또한 배울 수 없는 것으로서, 뜻을 두고 알음알이를 배우게 되면 도에는 도리어 어둡게 된다. 도에는 일정한 방위와 처소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대승의 마음[大乘心]이라고 하느니라. 이 마음은 안팍.중간 어디에도 있지 않으며, 실로 방위와 처소가 없는 것이니, 첫째로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너에게 말한 것은 뜻으로 헤아림이 다해 버린 바로 그 자리가 도라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뜻으로 헤아림이 다하면 마음에는 방위도 처소도 없느니라.
이 도라는 것은 천진하여 본래 이름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뜻으로 헤아리는데 미혹되었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나오시어 이 일을 자상히 말씀하신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셔서 방편으로 '도'라는 이름을 세우셨으니, 이름에 얽매여서 알음알이를 내서는 안되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을 잊어버려라!'고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자연히 도에 통하고 마음을 알아 본래의 근원에 통달한 이를 사문(沙門)이라 부른다. 사문이라는 자리는 생각을 쉬어서 이루어 지는 것이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도 너희들은 남의 집에 세살이 하듯,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구하면서 배워서 얻으려하니, 될 까닭이 있겠느냐?
옛 사람들은 영민하여 한 말씀 들으면 당장에 배움을 끊었다. 그래서 그들을 '배울 것이 끊어진 할일 없는 한가한 도인'이라고 했다. 반면 지금 사람들은 하찮은 알음알이를 구하고, 널리 글의 뜻의 캐면서 그것을 수행이라고 하지만, 넓은 지식과 견해 때문에 도리어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는 매 것이므로 각각 말씀이 다르다. 다만 요달하여 알기만 하면 미혹되지 않느니라. 무엇보다도 주의할 것은 한 근기를 대상으로 말씀에 있어서 글자에 얽매여 알음알이를 내지 말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실로 여래께서 말씀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종은 이런 일을 따지지 않는 것이니, 다만 마음을 그칠 줄 알면 곧 쉬는 것이요, 다시 앞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느니라."
問 向來如許多言說 皆是抵敵語 都未曾有實法指示於人 師云 實法 無顚倒 汝今問處 自生顚倒 覓什 云 旣是問處 自生顚倒 和尙答處如何 師云 且將物照面着 莫管他人 又云 祈如箇癡狗相似 見物動處 便吠 風吹草木 也不別 又云 我此禪宗 從上相承已來 不□敎人求知求解 只云學道 早是接引之詞 然 道亦不可學 情存學解 却成迷道 道無方所 名大乘心 此心 不在內外中間 實無方所 第一不得作知解 只是說汝 如今情量盡處爲道 情量 若盡 心無方所 此道 天眞 本無名字 只爲世人 不識 迷在情中 所以 諸佛 出來 說破此事 恐汝諸人不了 權立道名 不可守名而生解故 云 <得魚忘筌> 身心 自然達道 識心達本源故 號爲沙門 汝門果者 息慮而成 不從學得 汝如今將心求心 傍他家舍 祈擬學取 有甚 作絶學無爲閑道人 今時人 只欲得多知多解 廣求文義 喚作修行 不知多知多解 蒜成壅塞 唯知多與兒 乳喫 消與不消 都摠不知 三乘學道人 皆是此樣 盡名食不消者 所謂知解不消 皆爲毒藥 盡向生滅中取 眞如之中 都無此事 故 云 <我王庫內 無如是刀> 從前所有一切解處 盡須倂却令空 更無分別 卽是空如來藏 如來藏者 更無纖塵可有 卽是破有法王 出現世間 亦云 <我於燃燈佛所 無少法可得> 此語 只爲空情量 知解但鎖鎔 表裏情盡 都無依執 是無事人 三乘敎網 祈是應機之藥 隨宜所說 臨時施設 各各不同 但能了知 卽不被惑 第一不得於一機一敎邊 守文作解 何以如此 實無有定法如來可說 我此宗門 不論此事 但知息心卽休 更不用思前慮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