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념처경(大念處經)

2-4. 몸의 안과 밖에 대한 관찰

通達無我法者 2007. 12. 7. 10:24

2-4. 몸의 안과 밖에 대한 관찰

 

다음으로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가죽으로 덮여 있고 여러 가지 깨끗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찬 이 몸을, 위로는 머리끝에서 밑으로는 발바닥까지 관찰하여 '이 몸에는 머리카락, 머리털, 입술, 이빨, 가죽, 살, 힘줄, 뼈, 뼛속 기름, 콩팥, 심장, 간장, 늑막, 비장, 허파, 창자, 장간막, 위, 배설물, 담즙, 담, 고름, 피, 땀, 기름, 눈물, 임파액, 점액, 관절액, 오줌 등이 있다.' 감지한다.

비구들이여, 마치 눈을 가진 살이 포대 속에 여러 가지 곡물, 곧 벼, 멥쌀, 녹두, 콩, 깨, 매좁살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것은 벼다, 이것은 멥쌀이다.'라고 관찰하듯이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가죽으로 덮인 깨끗하지 않은 것으로 채워진 이 몸을 위로는 머리끝에서부터 아래로는 발바닥까지 관찰하여 '이 몸에는 머리카락, 머리털, 입술, 이빨, 가죽, 살, 힘줄, 뼈, 뼛속 기름, 콩팥, 심장, 간장, 늑막, 비장, 허파, 창자, 장간막, 위, 배설물, 담즙, 담, 고름, 피, 땀, 기름, 눈물, 임파액, 점액, 관절액, 오줌 등이 있다.'고 안다.

이와 같이 혹은 안으로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 한 밖으로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안과 밖을 모두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혹은 몸에 대하여 생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몸에 대하여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몸에 대하여 생하고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문다.

또한 지식으로 안 것과 잊지 않고 기억되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몸이 있다.'고 생각하여 감지하면 의지함이 없이 머물고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해설
우리의 몸을 관찰하는 것은 나 자신이 어떤가를 아는 첫걸음이 된다.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관찰하면 그것들이 깨끗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깨끗하지 않다는 것은 더럽다는 뜻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끗함은 절대 가치의 세계를 뜻한다. 따라서 우리 몸의 모든 요소들은 상대적인 가치의 세계에 속한다.

머리카락에서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관이나 부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있으니 있다가 없어질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영원하지 않으며 절대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다. 이 사실을 알면 우리의 몸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보면 잘못이다. 우리 몸의 안과 밖에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여, 비록 지금은 그것들이 나를 이루고 있으나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라고 아는 일이 중요하다. 실체가 없음을 알면 우리의 몸이 인연으로 모인 것이므로 인연이 다할 때까지 소중히 여기고, 몸의 움직임을 따라서 인연법을 살리는 생활을 하게 된다. 실체가 없는 것이 이렇게 내 몸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변하는 와중에서도 변치 않는 법이 있음을 말한다. 변화 속에서 변치 않는 법을 보면 거기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깨끗하지 않은 우리 몸의 모든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깨끗하지 않은 것만 보면 부정에 떨어지고, 깨끗한 것만을 보아도 긍정에 떨어진다. 부정 속에서 긍정을 보고, 긍정 속에서 부정을 보아야 집착하지 않게 된다. 깨끗하지 않은 우리의 법외에 달리 깨끗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몸은 여러 물질적·정신적 요소로 되어 있으므로 공의 도리를 떠나지 않는다. 깨끗하지 않은 것들이 깨끗함도 된다. 깨끗함을 보기 위해서는 깨끗하지 않음을 보아야 한다. 깨끗하지 않다는 말속에 이미 깨끗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깨끗하지 않은 이 몸을 통해서 깨끗한 법을 본다. 그러므로 법은 깨끗하면서도 깨끗하지 않다. 깨끗함이 곧 깨끗하지 않음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색은 깨끗하지 않은 몸이요 공은 깨끗한 몸이다.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이 함께 존재한다.

우리의 몸은 우주의 법 그대로이므로 몸을 통해서 우주를 본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법인 진리를 보이는 무상한 내 몸 속에 있다. 나를 통해서 남을 알고 나와 남을 통해서 우주의 법을 안다. 우주는 나와 남이기 때문이다. 이것과 저것이 어우러져서 집착 없는 생과 멸을 되풀이한다. 

'몸이 있다.'는 지각은 나에 대한 지각이며 나를 알고 법을 아는 것이다. 몸을 관찰하여 마음이 머물면 몸의 부정함과 동시에 청정함을 알 수 있다. '몸이 있다.'는 것을 알면 몸이 공임을 알게 된다. 공이란 '있다'와 '없다'를 떠난 것이면서 '있다'와 '없다'가 모두 같이 존재하는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