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념처경(大念處經)

2-5. 있는 그대로에 대한 관찰

通達無我法者 2007. 12. 7. 10:25

2-5. 있는 그대로에 대한 관찰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요소에 따라 있는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이 몸을 관찰하여 '이 몸에 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도우자(屠牛者)나 혹은 그 제자가 소를 죽여 거리에서 조각조각 나누어 각을 뜨듯이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요소에 따라서 있는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이 몸을 관찰하여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이와 같이 혹은 안으로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밖으로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안팎으로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혹은 몸에 대하여 생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몸에 대하여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몸에 대하여 생하고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문다.

또한 지식으로 안 것과 잊지 않고 기억되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몸이 있다.'고 생각하여 나타내면 의지함이 없고 머물고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해설
우리의 몸은 고체성의 진(地), 액체성의 수(水), 열(火), 운동〔風〕등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학설은 고대 인도에서 통용되던 것이나 불교에서도 이러한 사대설(四大說)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의 위나 폐, 심장이나 팔, 다리 등 몸의 모든 기관은 굳게 뭉쳐지고, 물기가 있어서 서로 관련되어 작용하며, 발산시켜서 다시 새로운 것으로 만들고, 성장하고 없어진다. 이 같은 네 가지 근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태어나서 자라고 유지된다.

우리의 몸이 지·수·화·풍의 네 가지 요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되어진 그대로, 있는 그대로 살릴 수가 있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네 가지 요소가 인연에 따라서 우리의 몸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있게 된 인연과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불교는 지금 어떻게 사느냐를 가르치는 종교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고, 오로지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해결하여 올바르고 멋지며 행복하게 사는 길을 가르친다.

네 가지 요소로 되어 있으므로 이 네 가지를 살리는 삶이 올바른 삶이다. 몸을 관찰하여 생긴 모습, 이루어진 상태에 끌리지 말고 그것이 어떻게 되어진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굳은 것은 굳은 대로, 더운 것은 더운대로, 움직이는 것은 움직이는 그대로 살려야 한다. 혈액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은 풍의 요소를 살리는 것이다. 몸이 더운 것은 화의 힘이니, 몸을 덥게 유지하기 위해서 영양 있는 식사를 하여 에너지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몸을 움직여서 건강을 유지하고, 주어진 지식을 살려서 문화 창조에 이바지하고,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살려서 보다 나은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은 네 가지 요소를 있는 그대로, 되어진 그대로 살리는 삶이다.

우리는 겉에 나타난 모습만을 보고 그 모습에 집착한다. 그러나 나타난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이룩한 네 가지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더 나아가 그 네 가지 요소도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의 도리에 의해서 인연법으로 모였다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인연으로 모인 것이니, 어느 것에도 의지할 필요가 없고 어느 것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

앞에서 예로 든 바와 같이, 도살자가 소를 잡아서 온몸을 칼로 베어 각을 뜨듯이 우리 몸의 모든 기관들도 여러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소를 잡아서 각을 떠놓으면 그것은 이미 소가 아니듯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몸도 내가 인다. 오직 네 가지 요소요 공일뿐이다. 따라서 의지할 것이 무엇이며 집착할 것이 무엇이랴. 그러나 그러한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므로 허무에 떨어지거나 실존적인 관념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네 가지 요소를 보는 것은 절대 관념을 끊기 위해서이고, 몸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되어진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은 허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진실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유(有)에 떨어져서도 안 되고, 무(無)에 떨어져서도 안 된다. 몸을 관찰하여 사대(四大)를 보고, 사대를 보아 몸을 관찰하면서 유와 무에 떨어지지 않고 중도에 머물면 그것이 참된 관찰이다.

밥을 먹을 때에 밥을 관찰하고 먹는 맛을 관찰하면 그 식사는 알맞은 식사가 될 수 있다. 지나친 욕심이나 맛에 끌리지 않기 때문이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나 지식도 되어진 것이요, 얻어진 것이므로 거기에 집착하여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관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것이 이루어진 인연을 알고, 그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한 수행이 바로 몸의 모든 기관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안과 밖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또한 생하고 멸하고, 생과 멸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