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강사의 질문과 답변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4:08

“분별사식으론 선법 못 깨우쳐”

“경론, 설명의 굴레 탈피하라”충고

공능 못 갖췄다면 한낱 관념일 뿐

 

어떤 강사가 마조를 찾아와서 물었다. “도대체 선종에서는 어떤 법을 전법수지하는 겁니까.” 그러자 마조가 도리어 물었다. “그러면 좌주는 어떤 법을 전법수지하고 있는가.” 강사가 말했다. “외람스러운 말씀이지만 저는 20여 가지 경론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마조가 말했다. “그러면 사자후를 했겠구만.” 강사가 말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이에 마조가 껄껄껄 웃었다. 그러자 승이 말했다. “그것이 곧 제가 말하는 법입니다.” 마조가 물었다. “그래, 무슨 법인가.” 강사가 말했다. “사자가 굴속에서 나온 법입니다.” 마조가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승이 말했다. “그것도 역시 제가 말하는 법입니다.” 마조가 물었다. “그래, 이것은 무슨 법인가.” 강사가 말했다. “그것은 사자가 굴속에 들어가 있는 법입니다.” 마조가 말했다. “그러면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는 법은 무슨 법인가.” 강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위의 문답에 등장하는 선종이라는 용어는 여러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다. 단순하게 좌선을 하는 사람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속고승전>에 처음 보인다. 그리고 조사선법의 선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돈오대승정리결>에 처음 보인다. 여기에서도 경론을 강의하는 강사와 마조 사이에서 일어난 일화로 구성되어 있다. <전등록>의 기록에 의하면 마지막 부분에 마조가 승을 향하여 “이 어리석은 논이로구나” 하고 꾸짖는 말이 붙어 있다. 역시 강사의 입장으로는 선사 앞에서 자신의 밑바닥이 훤히 드러나고 만 것이다.

 

사자가 굴속에서 나온 법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설법이 언설로 표현되어 중생들에게 널리 베풀어진 경우를 가리킨다. 그리고 사자가 굴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직 부처가 세상에 출현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킨다. 강사는 마조가 자신의 강의를 마치 사자후를 한 것처럼 칭찬을 해주자 더욱더 의기양양하여 마치 진짜 사자후를 인정받은 것쯤으로 착각하고 있다. 때문에 굴 밖으로 나온 사자야말로 자신의 출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은근히 자랑하고 있다.

 

이에 마조는 그렇다면 부처가 세상에 자유롭게 출현하고 자유롭게 열반에 들어가는 모습은 어떤 가르침으로 묘사하겠는가에 대하여 묻자 강사는 그만 입이 막혀버렸다. 사자와 사자굴의 비유는 중생이 모두 평등하게 구비하고 있는 여래장 내지 불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래장 내지 불성은 우주법계에 두루 편만해 있기도 하고, 모든 존재에게 무차별한 평등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여래의 종성이 구비되어 있기도 하는 등 갖가지의 경우로 작용을 한다. 그 작용을 자각하는 것은 다만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일상에 널리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의 차이를 가리킨다. 따라서 제아무리 불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온갖 경론을 강의하더라도 현실의 문제에서 활용하는 공능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종의 관념이요 철학일 뿐이다. 선법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조의 말마따나 사자가 굴속을 벗어나 있기도 굴속에 들어 있기도 하는 자유자재한 활작용이 없다면 강사의 경우처럼 얼떠름할 뿐이다. 그와 같은 이론으로 선법을 터득하기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마조의 질문에서 굴속을 자유롭게 출입하는 경우란 곧 사자와 사자굴이 더 이상 나뉘어져 있는 분립의 의미가 아니라 사자 자신과 굴이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 체험의 경지를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강사의 입장으로는 사자가 실제로 출입하는 것으로만 파악하고 있다. 선법에서 늘상 분별사식을 벗어날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사와 같은 분별사식으로는 경론의 설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법은 이것과 저것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포함하고 있다. 일종의 포월(包越)이고 자재이며 무분별이다.

 

 현각스님 / 동국대 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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