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공의 이해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4:10

“경론은 문자보다 본질 터득을”

 

법명이라는 율사가 대주선사에게 말했다. “선사들은 대부분 공에 떨어지더군요.” 대주가 말했다. “도리어 좌주들이 대부분 공에 떨어지던데.” 법명이 크게 놀라서 물었다. “어째서 좌주들이 도리어 공에 떨어진다고 하는 겁니까.” 대주가 말했다. “경론의 문자는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이와 먹의 문자는 모두 공하다. 왜냐하면 소리로 건립된 명칭과 구절 등의 법은 공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좌주들은 그와 같은 명칭과 구절에 집착하고 있으니 어찌 공에 떨어지지 아니겠는가.” 법명이 물었다. “그러면 선사들은 공에 떨어지지 않느다는 겁니까.” 대주가 말했다. “공에 떨어지지 않지.” 법명이 물었다.

 

“어째서 공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대주가 말했다. “문자가 지혜로부터 발생하는 경우에는 대용이 현전하는 경우인데 어찌 공에 떨어지겠는가.” 법명은 자신의 과오를 느꼈지만 아직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대저 경장과 율장과 논장은 모두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독송하면서 교학에 의지하여 받들어 행하는데 무슨 까닭에 견성하지 못하는 겁니가.” 대주가 말했다. “그것은 마치 미친 개는 흙덩이를 쫓아가지만 사자는 흙덩이를 던지는 사람을 물어뜯는 것과 같다.” 이에 법명은 감사의 예를 드리고나서 찬탄하고 물러갔다.

 

대주혜해는 마조도일의 제자이다. 법명율사는 율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좌주였다. 제딴에는 불립문자를 주장하는 선사를 놀려줄 셈으로 대주를 찾아가서 먼저 대주의 마음을 떠 보았다. 공에 떨어진다는 낙공(落空)은 공의 본래적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공을 단순히 허무로 간주하다든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청하고 망연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와 같은 법명의 질문에 대하여 대주는 오히려 경론을 연구하면서 글자에 빠져 있는 좌주들이야말로 공에 떨어지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좌주들의 경우 글자와 소리와 구절 등으로 나타나는 경론은 종이에다 먹으로 씌어진 흔적에 불과한데도 마치 대단한 무엇이라도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집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선사들은 그와 같은 글자와 명칭을 살아있는 안목으로 대하기 때문에 그것은 모두 생명을 지닌 가르침으로 되살아난다.

 

먹의 흔적일 뿐…집착 안될 말

생명 지닌 가르침으로 생각해야

 대주는 그것을 대용이 현전하는 경우로 말하고 있다. 대용은 경론의 가르침에 굴림을 당하지 않고 반대로 경론의 가르침을 굴리는 행위로서 일상의 삶에서 그것을 향유하면서 필요한 수단을 활용할 줄을 아는 태도이다. 그와 같은 대용현전(大用現前)의 행위에 대하여 대주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것은 비유하면 반야는 본래부터 무생의 도리로서 작용하지만 언제나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말을 들은 법명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자존심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좌주가 공부하는 경론은 틀림없는 부처님의 말씀인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를 묻는다. 곧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율장은 부처님의 행동이며 논장은 부처님의 지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만약 경론이 잘못된 것이라 말한다면 부처를 욕하는 꼴이고, 올바른 경론을 공부하는데도 견성하지 못한다면 인과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 것이다.

 

이에 대주는 개와 사자의 비유를 든다. 사람이 돌멩이를 던지면 어리석은 개는 그 돌멩이를 쫓아가 물어뜯지만 현명한 사자는 돌멩이를 던진 사람을 쫓아가 물어뜯는다는 이야기다. 개는 중생이고 어리석은 자이며, 사자는 보살이고 현명한 사람이다. 곧 개는 문자로 표현되어 있는 경론의 본질을 터득하지 못하고 도리어 문자에 얽매이는 좌주의 입장을 비유한 것이다. 그제서야 법명은 수긍을 하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법명은 좌주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뉘우치고 대주에게 감사의 예를 드리고는 선법을 찬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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