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산 록
(四家語錄)
1. 행록
위산스님의 휘(諱)는 영우(靈祐:771~853)이며 복주(福州) 장계(長谿) 땅 조씨(趙氏) 자손이다. 15세에 출가하여 본군(本郡) 건선사(建善寺) 대매 법상(大梅法常:752~839)스님에게 머리를 깎았고, 항주(杭州)의 용흥사(龍興寺)에서 대소승(大小乘)의 교리를 연구하였다. 23세에 강서(江西)로 가서 백장 회해(百丈懷海:749~814)스님을 참례하게 되었는데, 백장스님이 한번 보고는 바로 입실(入室)을 허락하여 마침내 참선하는 납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어느날 백장스님을 모시고 서 있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누구냐?"
"영우(靈祐)입니다."
"화로 속에 불이 있는가 헤쳐 보아라."
스님은 헤쳐 보더니 말하였다.
"불이 없습니다."
백장스님은 몸소 일어나 깊이 헤쳐 조그마한 불씨를 찾아서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너는 이것이 없다고 말했지."
스님은 여기서 깨닫고 절을 한 뒤에 자기의 견해를 말씀드리니 백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잠시 나타난 갈림길일 뿐이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불성을 보고자 하면 시절인연을 관찰하라'고 하셨다. 때가 되면 미혹했다가 홀연히 깨달은 것 같고 잊었던 것을 홀연히 기억해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자기 것이었지 남에게서 얻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리라.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깨닫고 나면 깨닫기 전과 같고, 마음이 없으면 법도 없어진다'고 하셨다. 이것은 다만 허망하게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따위의 생각이 없어져 본래의 마음과 법이 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대가 이제 그렇게 되었으니 잘 간직하라."
다음날 백장스님과 함께 산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백장스님이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불을 가져올 수 있느냐?"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느냐?"
그러자 스님은 장작개비 하나를 집어들고 입으로 두 번 훅훅 불어서 백장스님께 건네주었다.
"벌레 쫓는 막대기로군!"
*대혜 종고(大慧宗果:1089~1163)스님은 이것을 이렇게 말하였
다.
"백장스님이 이 말을 못했더라면 전좌(冶座:위산)에게 속을 뻔했다.
그때 스님은 전좌(冶座:대중의 臥具나 음식 등 살림을 맡음) 소임을 맡고 있었다. 사마두타(司馬頭陀)가 여우 이야기〔野狐話頭〕를 가지고 스님에게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이 문짝을 세 번 흔드시니 사마두타가 말하였다.
"꽤나 엉성한 사람이군."
"불법(佛法)에 무슨 엉성하고 치밀함이 있습니까?"
어느날은 사마두타가 호남(湖南)에서 오더니 백장스님에게 말하였다.
"지난날 호남에 살 때 대위산(大山)이란 데에 올라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산은 1,500명의 선지식을 모을 수 있는 도량입니다."
"내가 가서 살 수 있겠는가?"
"스님께서 거처할 곳이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가?"
"스님은 뼈로 된 사람〔骨人〕인데 그 산은 살로 된 산〔肉山〕입니다. 설사 스님께서 거처한다 하더라도 대중이 1,000명도 모이지 않을 겁니다."
"나의 대중 가운데 그 산에 거처할 만한 인물이 있겠는가?"
"두루 살펴보겠습니다."
당시에는 화림 선각(華林善覺)스님이 제1좌(第一座)였다. 백장스님이 시자에게 선각스님을 모셔오라 하시고는 물으셨다.
"이 사람이 어떻겠는가?"
사마두타는 기침을 한 번 하고 선각스님을 뒤로 몇 걸음 물러서게 한 뒤에 백장스님에게 말했다.
"안되겠습니다."
백장스님은 다시 스님(위산)을 불러오라 하셨다. 스님은 이 때에 전좌(冶座) 소임을 보고 있었는데 사마두타가 보자마자 말하였다.
"이 사람이야말로 바로 위산(山)의 주인이 될 수 있겠습니다."
백장스님은 이날밤 스님을 방으로 불러들여 법을 전하셨다.
"내가 교화할 인연은 여기에 있으니, 위산의 훌륭한 경계에는 그대가 살면서 나의 종풍을 계승하여 후학을 널리 제도하라."
화림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는 백장스님에게 말하였다.
"외람되지만, 제가 대중의 우두머리에 있는데 영우스님이 어찌 그 산의 주지를 할 수 있는지요?"
"만약 대중 앞에서 격식을 벗어난 말 한마디를 한다면 그대에게 주지를 시키리라."
그리고는 물병을 가리키시며 물으셨다.
"물병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대는 뭐라고 부르겠느냐?"
"말뚝이라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백장스님은 수긍치 않으시고 다시 스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물병을 발로 차서 거꾸러뜨리고는 바로 나가버렸다. 백장스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제1좌인 화림이 도리어 영우에게 졌구나!"
백장스님은 드디어 스님을 위산으로 보냈다. 이 산은 원래 험준하여 인적이 전혀 없으므로 스님은 원숭이떼를 벗삼고 도토리와 밤을 주워 먹으며 살았다. 5, 6년을 지냈는데도 찾아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스님은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본래 주지를 한 목적은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것이었는데, 사람이 오고가질 않으니 나 자신에겐 좋지만 무엇을 구제하랴."
그리하여 암자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였다. 스님이 산 입구에 이르자 뱀․호랑이․이리․표범이 이리저리 얽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스님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의 길을 막지 말아라. 내가 이 산에 인연이 있다면 너희들은 각자 흩어지고, 만약 인연이 없다면 움직이지 말고 내가 여기를 떠나거든 너희들 마음대로 잡아먹도록 하라."
말을 마치자 짐승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니 스님은 다시 암자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채 일년도 못되어 나안(懶安)상좌가 몇몇 스님들과 함께 백장스님이 계시는 곳에서 이곳으로 와 스님을 도왔다. 나안스님은 말하였다.
"제가 스님 회하에서 전좌 소임을 맡겠습니다. 그러다가 대중이 500명쯤 되면 소임을 그만두겠습니다."
이로부터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점차 알게 되어, 여럿이 몰려와서는 절을 지어 주었다. 대장군〔連師〕 이경양(李景讓)거사가 황제께 아뢰어 동경사(同慶寺)라 이름지었고, 정승〔相國〕인 배휴(裴休)거사가 와서 현묘하고 그윽한 진리를 묻곤 하여 이때부터 천하의 선객들이 모여들었다. 법을 얻은 상수제자가 앙산 혜적(仰山慧寂:803~887)스님이었으므로 세상에서 그들을 위앙종(潙仰宗)이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