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85. 원빈에게 드리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4:53
 





85. 원빈에게 드리는 글



불조의 큰 인연은 개념과 언어, 지견, 알음알이로 총명을 내거나 사유를 일으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잊고 외연을 잊어 밖으로는 모든 모습을 비우고 안으로는 식정(識情)을 벗어나고자 하거든, 뒤로 물러나서 맑고 텅 비고 편안하고 한가함을 지켜서, 맑게 사무쳐 훤히 트이고 모든 방편을 초월하여 대뜸 본래의 오묘한 마음을 꿰뚫어야 합니다.



예와 지금에 뻗치도록 담담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만 년이 일념이고 일념이 만 년이어서 영원히 번뇌가 없습니다. 진실 합당한 경지는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어 변함이 없으니 이?“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견성성불 함”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위와 같이 설명한 것도 이론에 불과합니다. 말로써 말을 버리고 이치로써 이치에 회합하여 사람들이 점진적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이치에 깨달아 들어가는 지름길도 흙탕물 속으로 끌고 다니면서 구구한 이론으로 설명한 것이니, 진실을 드는 데 이르러서는 무슨 이 같은 너저분한 설명들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이 미소하였던 것이니, 이 가운데서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설명하는 도리를 용납하겠습니까. 요컨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대천찰해(大千刹海)를 한번에 꿰뚫어 귀결처를 알아야만, 위로부터 행했던 진정한 법령을 다 알게 됩니다.



덕산스님의 ‘몽둥이’와 임제스님의 ‘할’이 어찌 어린아이의 장난이겠습니까. 만약 본분작가의 솜씨를 갖추었다면 한 수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방거사가 석두스님과 마조스님에게 “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요?”하고 묻자, 석두스님은 그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고, 마조스님은 “그대가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시고 나면 그대에게 말해주리라”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다른 이치겠습니까. 그 지극한 뜻을 캐 본다면 다같이 진흙에 들어가고 물에 들어갔던 것이니 어떻게 높다느니 낮다느니, 얕다느니 깊다느니 하겠습니까. 여기에 이르러선 반드시 있음[有]을 알아야 하고, 있음을 알고 나선 다시 꼭 전변(轉變)하여 갈 줄을 알아야 합니다.



죽은 말이나 지키면서 틀에 떨어지는 것을 부디 조심하십시오. 털끝만큼이라도 주관과 객관, 작용, 현묘한 이성(理性)이 있기만 하면 견해의 가시가 사람을 찔러서 끝내 뽑아버리지 못하리다. 그러고서야 어떻게 생사를 벗어나 안락무위하여 움직이지 않는 경계를 증득하리오. 옛 사람은 실천 그것만을 소중히 여겼는데, 자리를 얻어 법의를 걸친 후에도 스스로 살폈던 것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간절히 바라노니 반드시 잘 간직하여 힘을 얻도록 해야만 좋으리다.



옛날에 현인달사들은 큰 근기를 갖추어 능히 스스로 깨치고, 다시 힘써 실천할 수 있었는데, 이를 ‘공부한다’고 합니다. 오직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마음과 요동하는 사념을 오래도록 살펴서 털끝만큼이라도 있기만 하면 급히 없앴던 것입니다. 결코 어떤 일을 한다는 생각을 짓거나 얘기 밑천으로 삼아 다른 사람을 이겨 굴복받기를 기약하진 않았습니다. 즉 지견을 자라나게 하고, 주관을 세우고, 남을 이겨서 명성을 도모하지 않고 진실하게 오로지 생사대사만을 위해 백겁천생토록 어둡지도 않고 함정에 빠지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전혀 눈썹을 아끼지 않고 남들을 위해 가리켜 보여준 경우가 많습니다. 즉 운문스님을 “자체 그대로 진실이다”하였고, 임제스님은 “보신 화신불의 머리에 눌러 앉는다” 하였으며, 덕산스님은 “마음에 일삼을 것 없다. 마음에 일삼을 것이 없으면 텅 비었지만 신령하며 고요하지만 두루 비친다”하였습니다. 암두스님은 “그저 무심함을 지킬 뿐, 어느 때나 하고자 함도 의지함도 없으면 자연히 모든 삼매를 초월한다”하였으며, 조주스님은 내가 백천명을 보아도 다 부처 찾는 사람뿐이다. 그 중에서 무심도인을 찾기는 어렵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자세히 음미해 보고 마음을 쉬어 나간다면 훗날 언젠가 경계와 인연을 만났을 때 힘을 얻게 되리다. 요컨대 조심스럽게 보호하며 새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배상국이 황벽스님을 뵙고 말끝에 깨달았으나 다시 전심(傳心)의 비요(秘要)를 발휘해서 재삼 간곡히 일러주었으니 자비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우적(于?)이 양양(襄陽)에서 자옥(紫玉)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한 번 부르자 문득 머리를 돌렸으며, 거듭 “흑풍이 배를 표류하게 하여 나찰을 나라에 떨어지게 됐다”라고 지적해주자 비로소 환해졌습니다. 예로부터 선비들 중에 이 일을 소중히 여겨, 잠도 안자고 먹을 것도 잊은 채 똑바로 진리를 본 사람은 이루 셀 수도 없습니다.



이 모두가 그 사람의 근기, 역량, 지혜, 견해가 고명하고 상쾌한 데다가, 그런 뒤에 선지식을 찾아 결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미 옛사람들과 짝이 되었으니 더욱 힘써 실천하면서 물러나지 않아야 됩니다. 깊이 증득하고 깊숙이 깨달아 들어가기를 도모하여 입에 발린 말만을 숭상하지 말고, 반드시 마음 마음이 사물에 부딪히지 않게 하고 사물마다 일정한 처소가 없어야 비로소 되리다.



이 도는 외길로 제창하고 홀로 증득하며 불조의 향상 기틀과 계합하여, 마음의 근원에서 높이 벗어나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마치 전광석화와도 같아서 머뭇거리며 엿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단박에 꿰뚫어 의근(意根)으로 헤아리는 데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치와 성품을 설명하는 데 이르러서는, 말이나 경계 속에서 일정한 틀을 짓고 알음알이를 세워 서로가 전하여 지니면서, 오직 마음뿐임을 설명하여 지수화풍(地水火風)과 융합시키고, 허공의 한량을 가지고 6근과 6진의 일을 꿰뚫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만 이론일 뿐이며 교가(敎家)의 3승5성(三乘五性)과 방편으로 단계를 세운 것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나. 도리어 바보를 만들 뿐입니다.



반드시 불조가 있기 전부터 있어 온 이 한 조각 심전지(心田地)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차려야 됩니다. 가는 털끝만큼이라도 얻은 것이 있기만 하면 이는 사이비반야(相似般若)이니, 응당 잘 분별해서 티끌 경계에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죽는 날에 가서 이치 자리가 분명하지 못하여 끊을 수 없으면, 그 때는 두려운 마음이 어지럽게 일어나 후회해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오조(五組)스님께서는 평상시에 학인들에게 “반드시 죽음에 임했을 때의 선(禪)을 참구하라”고 법문하셨는데, 이는 작은 말이 아닙니다. 설사 총명한 변론과 지혜로 칠통팔달하여 크고 작은 이론이 실낱처럼 이어진다 해도, 그것은 식(識)으로 배운 문자에 불과합니다. 쓸모없는 너절한 것으로는 결국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옛부터 큰 도를 지닌 종사들은 오직 뛰어난 이근상지(利根上智)의 기특한 인물들과 함께 했습니다. 즉 육긍대부(陸亘大夫), 왕경상시(王敬常侍), 배상국(裴相國)과 감지도인(甘贄道人), 진조상서(陳操尙書), 최군(崔群), 이고(李?), 두홍점(杜鴻漸), 방거사(龐居士), 이발(李勃), 우적(于?)과 본조(本朝)의 내한 양대년(內翰楊大年), 이부마(李駙馬) 등 여러 사람의 경우, 탐색하고 참구하여 팔면이 영롱하여 참된 경지를 밟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냈으며 사람들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안팎으로 불법을 보호하면서 큰 법의 바다 가운데서 나루터가 되고 본보기가 되어 남섬부주에 나온 한 생을 허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옛 사람이 이미 그러했는데, 지금은 어찌 일상적인 것만 지키면서 자기의 생사대사와 오묘한 도를 크게 지키는 것으로 지극한 요체를 삼지 않습니까. 내버려 두어 모든 티끌 경계에 끄달리고 얽매이면 말이나 개념, 의미, 법수[數]에 갇혀 뛰어나게 향상의 안목을 지을 만한 대해탈의 근기가 없으니, 애석하다 하겠습니다.



대장부가 껍질을 타파하고 찾아와 법문을 청하였다면 응당 온 몸이 눈[眼]이 되어 허깨비 인연을 간파하고 금강보검으로 애욕의 그물을 끊어야 합니다. 비록 선비가 되어 재관[宰官]의 몸을 하고 있더라도 붓 끝에서 훌륭하게 방편을 짓고 일을 지휘하는 가운데 조사의 법령을 잘 행해야 합니다. 보고 듣는 모든 것에서 인과를 알고 변통을 알면 바로 옛사람과 짝이 되리다.



마지막 한 구절에서 비로소 견고한 관문에 이르니, 요긴한 나루터를 꽉 쥐고서 범부든 성인이든 통과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돌(?)! 다만 수준 낮추어서 설한 방편만을 보고서 눈 뜨고 꿈을 꾸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정수리 위에서 솜씨를 펼 수 있어야 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