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직설(眞心直說)

머리말(自序)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6:41
 





머리말(自序)

 

 


[질문] 조사들의 오묘한 도를 알 수 있습니까?


[대답] 옛 사람이 이르지 않았던가. 도는 알고 모르는데 있지 않다고. 안다고 하는 것은 망상이고 모르는 것은 무기(無記)다. 참으로 의심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탁 트인 허공과 같은데 어찌 굳이 옳다(是) 그르다(非)하는 생각을 하겠는가.


[질문] 그렇다면 조사들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중생들에게 아무 이익도 없단 말입니까?


[대답] 부처님이나 조사들이 세상에 출현하여 사람들에게 다로 법을 준 일은 없고 중생들에게 스스로 자기 번성을 보게 했을 뿐이다. 『화엄경』에 말하였다. 모든 법이 곧 마음의 자성(自性)임을 알면 지혜의 몸(慧身)을 성취한다. 결코 타인에 의해 깨닫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나 조사들은 사람들에게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푹 쉬어 자기 본심을 보게 하였다. 그래서 덕산(德山) 스님은 입문(入門)하는 이에게 방망이로 대했고, 임제(臨濟) 스님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 밖에 무슨 말이 더 필요했겠는가.


[질문] 예전에 마명(馬鳴) 보살은 『기신론(起信論)』을 짓고, 육조(六祖) 스님은 『단경(壇經)』을 설하고 오조(五祖) 황매(黃梅) 스님은 『반야경(般若經)』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다 점차로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어찌 법에 방편이 없겠습니까?


[대답] 가장 높은 묘고봉(妙高峰) 위에서는 원래 헤아림을 허락하지 않지만, 둘째 봉우리에서는 조사들이 간략하게 말로 아는 것을 용납하였다.


[질문] 감히 비노니, 둘째 봉우리에서 대강 방편을 베풀어주십시오?


[대답] 그 말이 옳다. 큰 도는 아득하고 비어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참 마음(眞心)은 그윽하고 오묘해서 생갓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그 문을 알고 들어가지 못하면, 설사 5천부의 대장경을 살펴볼지라도 많은 것이 아니고, 진심을 크게 깨달으면 단 한마디의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벌써 군더더기이다. 이제 눈썹을 아끼지 않고 삼가 몇 장(章)의 글로써 진심을 밝혀 도에 들어가는 기초와 절차를 삼고자 한다. 이에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