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고애만록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15:06

고애만록

1.몽암 총선사의 일심발원, 용맹정진
몽암 총蒙庵聰선사는 복주 장락주씨長樂朱氏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조금 자라서는 다른 사람에게 대들어 모욕을 주거나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열아홉 살에 신주信州 귀봉사龜峰寺의 광 회암光晦菴 스님에게 귀의하였고 스물일곱 살에 도첩을 얻자 회암스님에게, 대중에 섞여 오로지 자신의 생사 대사를 깨닫는 데 전념하고 여러 가지 소임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를 바라니 회암스님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너느 참선만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불법이란 일상 생활 모든 작용 가운데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일 때문에 빼앗길까 두려워하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한 달 안에 깨닫지 못한다면 그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이에 물러나와 ‘불법이란 평상시 모든 작용 가운데 있다’는 구절을 창문 위에 써붙여 놓고 옆구리를 자리에 붙이지 않은 채 반달을 지냈다. 회암스님이 수시로 그의 행동을 엿보니, 그의 결심은 매우 맹렬하였다. 이에 회암스님은 그가 만일 도를 깨치지 못하면 미쳐 버릴까봐 속으로 걱정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콧물을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나기에 그는 “아, 이 아이를 버렸구나!” 생각하고 그 연유를 물어보니 속가의 부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랬다는 것이다. 회암스님은 ‘이 때가 일추 一槌를 가하기에 좋은 기회다’ 라고 생각하여 몽암스님을 불러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느냐? 말해 보아라.”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멱살을 움켜쥐고 세차게 뺨을 때리면서 말하였다.
“수많은 무명번뇌가 어느 곳에서 오느냐?”
그리고 또 한 번 따귀를 후려치니 그 자리에서 의심이 얼음녹듯 풀리게 되었다. 이에 몽암스님은 예의를 갖추어 사례하고 소리 높여 게송을 읊어 바쳤다.
了了了徹底了
無端赤脚東西走
踏破晴空月一輪
八萬四千門洞曉
알았다, 알았다. 철저히 알았다.
괜스레 맨발로 동분서주 했었구나.
창공의 둥근 달을 밟으니
팔만사천문이 밝기도 하다.
그러나 회암스님은 또 다시 소리쳤다.
“이 둔한 놈아, 몽둥이 서른 대는 맞아야겠다”

2. 파암 조선선사의 참선
파암 조선破庵祖先 선사가 한 번은 말하였다.
“요즘 형제들은 공부를 할 때 본성本性을 찾지 않기 때문에 효험을 보지 못한다.” 내가 행각할 당시 밀암密庵 스님이 구주衢州 오거산烏巨山에 계셨는데, 나는 그곳에서 지객知客 소임을 맡아 보다가 사임하고 쌍림사雙林寺를 찾아가 수암水庵스님을 뵈었다.
쌍림사에는 긴 회랑이 두 개 있었는데, 나는 밤이면 밤마다 잠을 자지 않고 동쪽 회랑에서 서쪽 회랑으로 왔다갔다 하며 화두를 들고 공부하였다. 이렇게 두세 번을 돌고 승당으로 들어와 다시 하나에만 골똘하니, 상판 하판에 있는 도반들이 모두 얼어 터진 겨울 참외처럼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깨닫지 못한다면 나도 저 승당의 얼어 터진 겨울 참외 같을 텐데 이러고서도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그 당시에 웬만큼은 공부가 되어서 선실에서 입을 열 수 있을 정도였으나 미세한 번뇌까지는 끊지 못하여 마음이 결코 편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몸을 일으켜 평강平江의 만수사를 찾아가 승당 앞에 쉬고 있었다. 당시 만수사에 등 지암燈止庵스님은 감쪽같은 솜씨로 학인을 다루는 노장이었는데, 공양을 마치고 북을 올리자 스님의 선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때 마음속으로 그를 속이고 들어가지 않을 심산이었으나 동행한 도반이 이미 선실로 들어가면서 내게 들어갔었냐고 물었다. 는 동행을 속이고 들어갔노라고 하자니, 나와 동행인데 내가 그를 속이면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점차 사천四川으로 돌아가자고 윽박지르게 될까봐 마음이 초조하고 번민스러웠다. 리하여 승당僧堂 편으로 들어갔는데 머리를 들어보니 순간 ‘조당照堂’이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 와 닿았다. 러자 이제껏 품어왔던 의심이 단박에 풀렸다. 유자적하게 장산蔣山으로 올라가 다시 밀암스님을 뵈니 서로 의견이 들어맞았다.
파암스님의 참선은 마치 한신韓信의 적은 군사가 배수진을 치고 딴 마음이 없이 필사적으로 싸웠기 때문에 승리할 수 었던 것과 같은 일이다.

3. 당 승선사의 염고拈古
몽당 승夢堂升선사는 설두스님이 “주主와 객客을 세우는 것은 멀쩡한 살에 긁어 부스럼을 내는 일이요, 옛 것과 어제것을 들어 말하는 것은 모래에 흙을 뿌리는 일이다. 그대로 아무일 없다면 그야말로 구멍없는 철추鐵鎚고, 따로 기관機關을 두면 무간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신 설법을 들어 염송하였다.
“이런 놈은 승속僧俗의 안목을 다 갖추어야 하리라. 활구活句 아래서 밝히면 여러 불조에게 스승이 될 것이며 사구死句 아래서 밝히면 자신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
이어서 말하였다.
“설두의 이러한 법은 활구活句인가 사구死句인가. 설두가 지옥에서 나온 뒤에 너희들에게 말해 주리라.”
또 말하였다.
“달마대사께서 대중 법문에서 제각기 소견을 말하게 하니 어린아이들이 투백초鬪白草 놀이 하듯 하다 사방으로 흩어져 진귀한 풀을 찾다가 황혼이 되어 놀이를 마치고 돌아갈 때면 어지럽혀진 것은 누구에게 쓸도록 하겠는가?”
스님이 평소 하신 법문은 인간 가운데는 주공이나 공자와 같고 금수 중에는 용과 봉황 같았다.
노년에는 문을 닫고 사람들과 만나 주지 않았으므로 납자들이 그를 만나는 것은 과거에 급제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날 운개 수지蕓蓋守智스님은 참선하는 스님들이 편한 것만 찾으며 도심이 깊지 못하고 미워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도 머리를 흔들고 거절하였다. 그러다가 입실을 허용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보니 선방에 사람이 가득 하였다는데, 몽당스님도 그런 사람이다.

4. 절옹 불심선사가 여찬스님에게 내린 법어
절옹불심浙翁佛心선사가 여찬如璨스님에게 설법하였다.
진짜 도인은 하루 스물네 시간 언제나 확실히 육근六根이 비어 있다. 마치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의 얼굴이 비치고 중국인이 오면 중국인이 비치는 황제 헌원씨軒轅氏의 거울처럼 진여 열반 보리 번뇌, 그리고 세간의 허깨비, 정욕, 순역, 시비, 그 어느 것 하나 빠뜨림 없이 비추어 낸다. 어느 것도 이를 더럽힐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육근에 실오라기만큼이라도 딴 생각이 일어나면 많은 장애, 원한, 근심을 가지게 되며 수없는 전도顚倒를 겪게 될 것이니, 이것이 범인과 성인의 갈림길이다.
성인과 범부가 애당초 다른 것은 아니지만, 일을 마친 자를 성인이라 하고 마치지 못하면 범부라 이르는 것이다. 방거사의 “이는 성인이 아니라 단지 일을 끝마친 범부일 뿐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러한 뜻이다. 알았다면 다시 자세히 참구해야지 목전의 결과에 경솔히 집착해서는 안 된다. 사람(선지식)을 만나보려 할 때는 마치 음식을 씹을 때 윗니와 아랫니가 맞듯 해야한다. 우선 단숨에 낭떠러지까지 가서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경계’에 이르러야만이 풀무 속에 들어가 선지식의 단련을 받을 만한 알맞은 때가 되는 것이다. 진짜 도인이라는 사람들은 본분을 벗어나지 않는다. 홀연히 시절 인연이 다가오면 부끄러움이 없으므로 자연히 느긋하여 여유 만만하게 될 것이다.“
이 법어를 읽어 보니 참으로 임제종臨濟宗의 골수이다.

5. 쌍삼 원스님이 진귀겸의「종경록」간행에 부친 글
쌍삼 원雙杉元스님은 유 만암柔萬庵 스님의 법제자이다. 국사 진귀겸陳貴謙과 그의 아우 참예參豫 문정공文定公 진귀의陳貴誼 가 무강武康 용산龍山에 쌍삼암雙衫庵을 마련하여 스님을 모셨다.
국사 진귀겸이 「종경록宗鏡錄」을 간행한 데 답서를 보냈다.
“그대를 찾아가 안부를 물으려 하던 차에 아름다운 글을 받고서 그대가 종경삼매에 들어 논변의 재능과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자유 자재 하게 구사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 기록된 몇 장의 글을 살펴보니 모두가 구슬을 꿰어 놓은 듯하여 참으로 우유를 가릴 줄 아는 거위왕의 안목을 깊이 감탄할 뿐입니다. 다만 염려스러운 일이라면 나날이 새로 깨우침에 따라 지난 날에 익혔던 바를 버림으로써 취사 선택 하는 데 기준이 없을까 하는 점입니다. 주워들은 식견만을 틔워서 성현의 경지를 알려고 든다면 지혜의 힘은 지닐 여지가 없습니다. 도에 이르는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하여 구한다면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오묘한 경지로 들어가 시대와 중생을 끝없이 제도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불교 잘하는 것이 참다운 유도儒道를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편협한 견문에 얽매이거나 파벌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 마음속으로는 긍정하면서도 입으로는 비난하기도 하며, 자세한 내용은 알지도 못하고서 남을 바보 취급하려 들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스스로 속고 있음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이는 모두 알음알이 때문일 것입니다.
선방의 화두는 선승들의 평생 공부인 만큼 선비들의 과거 공부와 같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면서도 좀더 공부할 틈이 없을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째서 어려운 일을 찾고 쉬운 것을 버리며 그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는 것일까요? 이는 전일하게 공부해서 체득한 바 없기에 크게 쉬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부질없이 지식과 견문으로써 이해만을 이루어 자신의 눈을 가리기 때문에 모든 것이 거꾸로 되는 것입니다.
선배의 말씀에 ‘진실로 이 일을 깨달으려면 절대로 이「종경록」을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선입견이 생겨 화두를 듣기도 전에 이미 알아버리고 다시는 의심을 갖지 않는다. 그리하여 성불의 방편을 잃게 되니 도道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므로 비록 세상에 이로운 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해가 된다’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진조상서陳操尙誓가 참선하는 시늉을 하다가 운문스님에게 한 스님의 ‘무엇이 교의敎意입니까?’ 라고 한 물음에 무어라고 의견을 꺼내려 하였으나 말을 하려다가 말을 잃고 생각을 하려다가 생각을 잃어 결국 운문스님에게 재물을 몰수당한 바로 그런 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거사께서 법보시로 큰 시주를 하려거든 반드시 금강권이나 율극봉, 쇠로 만든 찰떡으로 불사를 하셔야지, 사람들을 번뇌의 소굴로 끌고 들어가 속박만을 더해 주어서 어쩌시렵니까.
붓가는 대로 적다 보니 글이 구질구질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짬이 생기면 불러 주십시오. 그대를 찾아가 여러 소리 한 죄를 사과하리다.“
국사 진공이 이 서신을 보고 깨우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