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선문정로 / 무구無垢가 동시에 나타난다

通達無我法者 2008. 2. 11. 10:12

선문정로(禪門正路)

만약 제8 이숙식異熟識이 비어 없어지면 인과를 벗어나 곧바로 대원경지로 바뀐다.
“무구無垢가 동시에 나타난다” 하였는데, 부처의 과위 가운데 대원경지를 무구라고 하니, 청정한 진여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대원경지와 상응하면 법신이 나타나서 시방의 무수한 국토를 두루 비추어 이치와 지혜가 한결같으므로, 마침내 구경인 한 마음의 본체를 깨친다 하니, 이는 유식의 궁극 법칙이며 여래의 궁극적 과위이다.
자세히 관찰하니 이 제8식은 깊이 잠겨 있어서 깨뜨리기가 어렵다. 이 식을 실날만큼이라도 뚫고 지나지 못하면 끝내 생사언덕에* 걸려 있는 것이다. 옛날 큰스님과 조사는 모두 이 제8식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는 현묘한 말씀을 하지 않았으나 지금 사람들은 생멸심도 잊지 못하여 마음자리에 든 갖가지로 물든 번뇌 종자를 조금도 씻지 못하고서 도를 깨쳤다고 거짓으로 말하니, 이것은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 하고, 깨치지 못하고서 깨쳤다 함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두렵지 않은가.「八識規 矩 通說」
감산戡山은 선禪과 교敎에 모두 통달한 명 말의 거장이다. 제8 미세유주微細流住를 영원히 떠나서 여래의 극과인 대원경지를 깨쳐야만 진정한 깨침이며 견성임을 분명히 말하였으니, 참으로 조계의 전통을 잇는 극히 드문 선지식이다. 그리고 생멸하는 망심도 끊지 못하고 도를 깨쳤다고 거짓으로 말함을 통탄하였으니, 고금을 통한 수도인의 공통된 병을 지적해 낸 명쾌한 주장이다. 그러니 거칠고 미세한 일체의 번뇌망상을 모두 없애고 구경무심인 대원경지를 실제로 깨쳐서, 크게 쉬어버린 옛사람의 마음자리에 도달해야 한다. 제8의 미세유주를 끊어버린 대원경지는 크게 죽었다 다시 살아난 무심, 무념, 무생, 무주이며, 따라서 단박에 원만히 깨치는 구경정각인 돈오견성이다.

11. 안팎이 투명함(內外明徹)
지혜로 비추어 보아 안팎이 투명해서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면 그것이 곧 근본 해탈인 무념이다.
지智는 해와 같고 혜慧는 달과 같다. 지와 혜가 항상 밝지만 밖으로 티끌경계에 집착하여 망상의 뜬구름에 덮여 밝지 못하니 만일에 참법을 들어 미망의 구름이 스스로 없어지면 안팎이 투명해서 진여 자성 가운데 만법이 모두 나타난다. 견성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壇經」
대원경지로 비추어보아 안팎이 투명하면 이것이 곧 마음을 아는 것(識心)이며 해탈이며 무념이며 견성이니, 근본 무명의 검은 구름이 흩어 없어진 증거이다.

마치 안팎이 투명한 수정구슬처럼 구경지인 묘각에 항상 머물며 밝고 깨끗하므로 모든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라고 하니, 그것은 항상 중도에 있다.
오직 부처님만이 중도 제일의제인 법성심토法性心土에 계신다.「○珞經 上」
수정구슬처럼 안팎이 투명해서 일체의 망상티끌이 모두 없어지면 구경의 묘각인 부처자리이며 견성이다.

시방세계와 나의 몸과 마음이 마치 밝은 유리같이 안팎이 투명함을 두고 식음識陰이 다 없어졌다고 한다. 식음이 다 없어지고 나면 둥글고 밝고 정밀하고 오묘한 마음이 그 가운데 피어나서(發化) 마치 맑은 유리 속에 보배달을 담은 것과 같다.
그리하여 보살이 행하는 금강金剛 10지와 등각의 원만한 밝음을 뛰어넘어 여래의 오묘한 장엄 바다에 단박에 들어가며, 깨달음을 원만히 성취하여 얻을 바 없음에 돌아간다.「楞嚴經 十」
제8 아뢰야인 식음識陰이 다 없어지면 안팎이 투명하여 한번 뛰어 곧바로 여래의 지위에 들어간다.「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등에서 “식음識陰은 아뢰야(阿賴耶), 또는 아타나阿陀那라고 한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식음이 없어진 이는 원만하고 밝고 정밀한 마음이 그 가운데 피어난다(發化)’고 하였는데, 이는 위로는 모든 부처님의 자비력과 같고 아래로는 중생들의 슬픈 우러름을 받아들여 널리 중생과 같은 모습을 나타내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므로 피어난다(發火)고 말하는 것이다.
심신과 세계, 모든 부처와 중생이 원융하게 섞여 통하는 까닭에 마치 맑은 유리 속에 보배달을 담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능히 지위地位를 벗어나서 큰 깨달음의 바다(果海)에 단박에 들어가 얻을 바 없음에 돌아가니, 이와 같아야 비로소 구경의 가장 높은 법칙이라고 이름한다.「楞嚴經 通議 十」
안팎이 투명한 견성見性은 곧 식음識陰이 영원히 끊어진 큰 깨달음의 가장 높은 과위이다. 화엄경에서는 “10지보살이 방평신통으로 안팎이 투명하다(十地菩薩 方便神通 內外明徹)”고 하였으나, 십지보살은 미세한 무명을 다 끊지는 못했으므로 이때에 “안팎이 투명하다” 함은 제8 아뢰야의 밝은 그림자상(通明影像)이지 진짜 안팎이 투명한 것이 아니다.
「능엄통의」에 이르기를, “이는 오음이 다해 원만히 증득하는 공부를 보인 것이다”고 하였다.

둥글고 밝은 정밀한 마음이 그 가운데 피어나면(發化) 세 종류로 몸이 나뉘어서 중생의 고통의 수레를 멈추게 한다. 유리 속에 보배달을 담은 듯 여여한 이치와 여여한 지혜가 안팎으로 투명하여 10신, 10주, 10회향, 10지 등을 원만히 뛰어넘어 위 없는 부처님의 도를 성취한다.「楞嚴經文句 十」
안팎이 투명한 공부의 결과가 이렇게 현묘하다.

티끌경계가 비고 고요하여 몸과 마음이 안팎으로 한꺼번에 청정하다. 마치 맑은 유리 속에 보배달을 담은 듯 시방세계가 훤하니 어찌 통쾌하지 않은가. 이는 근본무명을 단박에 부수어 8식의 종자를 산산히 부수어 없애는 것이다.「通議 八」
8식의 종자인 미세망상을 깨뜨려 안과 밖이 투명한 무생의 현묘한 길에서 한가로이 자재함은 오직 실제로 참구하여 실제로 깨지는 데에 달려 있다.

만일에 식음識陰이 다 없어지면 비로소 지위地位를 초월하여 얻을 바 없음을 깨닫고 구경의 부처 과위를 원만히 성취하여 맑은 유리 속에 보배달을 담은 것과 같다「通議 八」
능엄경의 부처님 말씀과 이곳의 조사 말씀이 다름이 없음은 다같이 바른 안목을 갖춘 까닭이다.

크게 깨달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라. 힘을 허비할 것 없으니 모든 유위법과는 같지 않다. 모양에 집착한 보시는 천상에 왕생활 복은 되나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아서 힘이 다하면 도로 떨어지니, 내생이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할 뿐이다. 어찌 무위 실상문에서 한번 뛰어 여래 지위에 바로 드는 것과 같으랴. 근본만 깨쳐 얻을 것이요, 지말은 걱정하지 말라. 마치 맑은 유리 속에 보배달을 담은 듯하면 벌써 여의주를 얻은 것이니, 한없이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다.「證道歌」
한번 뛰어 곧바로 여래의 지위에 들어가서 안팎이 투명하면 바로 정통인 견성이다.
거칠고 무거운 망상이 모두 없어진 자재위自在位 이상만 되어도 오매일여한 실제 경계가 나타나지만, 미세한 흐름인 식음識陰까지 남김없이 없애고 여래지에 바로 들지 않으면, 안팎이 투명하여 맑은 유리가 보배달을 머굼은 듯한 구경의 무심은 성취하지 못한다.

*생사의 언덕에 머문다 함은 분단 생사는 벗어났지만 번역 생사에 머물러 있어서, 이 둘을 완전히 벗어난 여래의 자재함은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