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서화(東語西話)

9. 모든 곳에 도가 있다는 뜻은 무엇인가 ?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16:44

9. 모든 곳에 도가 있다는 뜻은 무엇인가 ?


동산연조(東山演祖; ∼1104) 스님께서는
"모든 곳에 도가 존재한다" 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이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곳이란 바로 만사(萬事)이며, 만법(萬法)입니다.
 또 세간의 사법(事法)과 출세간의 지극한 도(道)는
 서로 표리 관계를 이루는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군더더기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대답하였다.

"그대는 무슨 말을 그리도 쉽게 하십니까?
 동산연조께서 `존재한다' 고 말씀한 이유는, 서로 섞어서
 간격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허망한 차별은 바로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로 말한다면,
 <모든 곳>이란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옷을 입을 때 몸 전체가 도라고는 생각할지언정,
 실오라기가 옷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지혜로운 사람은 밥을 먹을 때 입에 가득한 것이 도라고는 생각할지언정,
 곡식의 알맹이가 밥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밖의 갖가지 경우에도
 어느 것도 도와 일체가 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와 일체가 된다' 는 참 뜻이 분명하면 
 `존재한다' 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와는 반대입니다.
 옷을 입을 때도 그것이 도인 줄을 알지 못할뿐 아니라,
 옷에 대해 알음알이를 일으켜 허망한 짓을 하여 갖가지 분별을 짓습니다.
 분별에 빠지게 되면 생사에 끝없이 묶여버리고 맙니다.

 `모든 곳에 도가 존재한다' 할 때에 이 존재의 뜻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즉 세상물정에 섞여서 존재한다는 뜻도 있으며, 
 그저 자기의 수행만 굳건히 존재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깨달아 통달한 사람들은 혼합되어 하나라는 말은 하지만,
 실제로 혼합되어 하나인 줄은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의 수행만 굳건히 지킴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기 수행만을 굳건히 지킨다' 는 뜻은
 순수한 정념(正念)으로써 배워야 할 도를 생각하여
 범부와 성인을 떠나고, 증오와 사랑을 끊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잠시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지중한 보배를 손에 잡은 듯, 봄날에 살얼음을 밟은 듯이
 더욱 굳게 조심하고 신중히 발걸음을 떼놓는 것입니다.
 홀연히 깨달아 `내가 능히 도를 닦노라' 하는 생각과
 또 `닦아야 할 도가 존재한다' 는 생각을 돌이켜 관찰해 보면
 그것들은 모두 일정한 본체가 없습니다.
 종일토록 분명하게 작용한다 해도,
 억지로 하려 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