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92칙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심〔世尊陞座〕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4:11
 

 

 

제92칙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심〔世尊陞座〕


(수시)

거문고 소리를 듣고 곡조를 알아차리는 지음(知音)은 천 년 만에라도 만나기 어렵다.

토끼를 보고 매를 놓으니 한꺼번에 빼어난 놈을 잡아버렸다. 모든 말을 총괄하여 한 구절로 만들고, 대천사계(大千沙界)를 포섭하여 한 티끌을 만든다. 생사를 함께 하고 종횡으로 자재한다. 이를 증거할 만한 것이 있는가? 거량해보리라.


(본칙)

하루는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시자,

-손님과 주인을 한꺼번에 잃었다. 이번 한 번의 실수가 아니었다.


문수보살이 백추(白槌)를 치면서 말하였다.

“법왕의 법을 자세히 살펴보니, 법왕의 법이 이러하군요.”

-한 자식만이 친히 얻었다.


세존께서는 그만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근심있는 사람은 근심있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근심스러운 사람에게 말하면 남을 근심케 만든다. 북을 치고 비파를 뜯으니 서로를 아는 사람들이 만났구먼.


(평창)

세존께서 영산화상에서의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여주시기 이전에 벌써 ‘이러한 소식’이 있었다. 처음 녹야원(鹿野苑)으로부터 발제하(拔提河)에서 열반하실 때까지, 몇 차례나 금강왕 보검을 사용하셨을까?

당시의 대중 가운데, 납승다운 기상이 있는 놈이 선수를 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면 세존이 뒷날 염화(拈花)하여 한바탕 어지러웠던 일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조께서 묵묵히 말이 없으시던 사이에 문수에게 한 차례 내질림을 당하시고서 문득 법좌에서 오셨는데 그때에 또한 ‘이 소식’이 있었다. 그러므로 석가는 마갈타국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정명(淨名)은 비야리성에서 문수의 입을 막았으니, 이 모두가 이(아무 말 없었던 것)와 같이 이미 설하여버린 것이다.

이는 숙종(肅宗)이 충국사(忠國師)에게 물었던 “무봉탑(無縫塔) 조성”에 관한 화두와 같으며, 외도(外道)가 부처님에게 했던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라는 말과도 같다.

끊임없이 초월해가는 사람〔向上人〕의 경지를 살펴보면, 일찍이 몇 번이나 귀신 굴 속으로 들어가 살림살이를 하였을까? 어느 사람은 “묵묵히 했던 곳을 뜻이 있었다”하기도 하고, 어느 사람은 “한참 동안 말 없이 앉아 있는〔良久〕 곳에 있다. 말이 있는 것은 말 없는 일을 밝힘이며, 말이 없는 것은 말 있는 일을 밝힌 것이다. 영가스님도 ‘침묵할 때가 말하는 것이며 말할 때가 침묵한 것이다’고 말하였다”고들 한다. 그러나 모두 이처럼 이해한다면 3생 60겁(三生六十劫)이 지난다 해도 꿈속에서도 이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이 바로 이를 알아차린다면 다시는 범부와 성인을 나누지 않을 것이다.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며 날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과 손을 잡고 함께 갈 것이다.

다음에 자연스럽게 이를 알고서 지은 설두스님의 송을 살펴보라.


(송)

많은 성인 가운데 작가가 있어서

-석가노인을 비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문제는)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에게 되돌려주어  라. 천 명 만 명 중에서 한 명은 커녕 반 명도 만나기 어렵다.

법왕의 법령이란 이와 같지 않은 줄을 알았네.

-그를 따라 달리는 놈은 삼대처럼, 좁쌀처럼 많다. 이랬다 저랬다 하네.

  참으로 몇 사람이나 여기에 이를 수 있겠는가.


회상(會上)에 선타객(仙陀客)이 있었더라면

-그 가운데서 영리한 사람 얻기는 어렵다. 문수는 작가가 아니며, 화상(설두스님)도 결코 작가가 아니다.


어찌 문수보살이 백추(白槌)를 칠 필요가 있었겠느냐.

-또다시 한 번 백추를 친들 무엇이 나쁘랴. 제이․제삼의 백추가 모두 필요치 않다. 지금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 말할까? 준험하다.


(송)

“많은 성인 가운데 작가가 있어”라는 말은, 영산회상에 모인 8만 4천 대중들이 모두가 성인이었으며 문수․보현보살로부터 미륵보살에 이르기까지 부처님과 대중이 모두 함께 모였으니, 반드시 교묘한 가운데 교묘하고, 기특한 가운데 기특하여야 만이 그의 귀착점을 알 것이라는 말이다. 설두스님의 뜻은 많은 성인 가운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만일 작가가 있었다면 이와 같이 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문수보살 백추(白槌)를 치면서 “법왕의 법을 자세히 살펴보오니, 법왕의 법이 이러하군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설두스님이 “법왕의 법령이란 이와 같지 않은 줄을 알았네”라고 말하였는데, 왜 이처럼 말했을까? 당시 회상 가운데 영리한 놈이 정수리〔頂門〕에 외알눈을 갖추고 팔꿈치에 호신부(護身符)를 붙이고서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시기 이전에 알아차렸다면 다시 굳이 문수가 백추를 칠 이유가 있었겠느냐?

「열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선타파(仙陀婆)는 한 이름에 네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소금, 둘째는 물, 셋째는 그릇, 넷째는 말〔馬〕이다. 한 지혜로운 산하가 있었는데 이 네 가지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왕이 씻고자 하여 선타파를 찾으면 신하는 곧 물을 받들어 올렸고, 밥먹을 때는 소금을 받들어 올렸고, 음식을 먹은 후엔 그릇에 음료를 대령했으며, 외출하려 하면 말을 받들어 올렸다. (이와 같이) 왕의 뜻에 따라 움직여, 어긋남이 없었다. 이는 밝고 영리한 놈이어야 이처럼 할 수 있다.”

어떤 스님이 향엄(香嚴)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왕이 찾는 선타파입니까?”

“이리 오너라.”

스님이 다가오자, 향엄스님이 말씀하셨다.

“둔한 놈이군!”

또다시 조주스님에게

“무엇이 왕이 찾는 선타파입니까?”

라고 묻자, 조주스님은 선상에서 내려와 몸을 굽히고 공손히 차수하였다.

당시에 한 선타파가 있어서 세존이 법좌에 오르기 이전에 확실히 알아버렸다면 그래도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셨다가 다시 내려오셨으니, 벌써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어찌 또다시 문수가 백추를 칠 필요가 있었겠는가?”라 송했는데, 세존에 앞서 제창하다니 참으로 둔하고 어리석다 하겠다. 어느 점이 둔하고 어리석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