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하안거 결제법문에서 소임맡은 제자들에게 / 단교(斷橋)스님
단교(斷橋)스님은 성격이 꼬장꼬장해서 납자들을 인정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가 국청사(國淸寺)의 주지가 되던 날 영상담(泳象潭)을 수좌로, 구고전(垢古田)을 서기로 삼았다. 당시 장주의 성명은 전해오지 않는다. 여름 결제 때 불자를 들고 법당에 올라 인사말을 한 다음 법문을 하였다.
”수좌는 선배 스님들에 비해 칭찬할 만하지 못하고 서기가 하는 법문은 마치 인물을 그릴 때 모든 것을 다 그려놓고 눈동자를 찍지 않은 격이며 장주가 하는 법문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러고서도 뒷날 나는 노승의 법회에서 소임을 보다가 왔노라 하겠지!”
그는 불법 주관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여 조금이라도 불법을 손상한다거나 후학을 오도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았는데, 비록 말로는 그들을 눌렀으나 실제로는 그들을 일으켜주었다. 오늘날 불법을 주관하는 자들은 자신의 안목은 밝지 못하면서 사탕발림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는 데 힘쓰고 그들이 감동하여 법제자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 만일 단교스님이 이런 속된 짓을 보았더라면 어찌 침을 뱉고 욕을 하는 데 그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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