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68.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의 수행과 주지살이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01
 

 

 

68.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의 수행과 주지살이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은 법명이 선달(善達)이며, 선거 자씨(仙居 紫氏)자손이다. 젊은 시절 급암 신(及菴宗信)스님과 함께 행각하면서 소임을 맡지 않기로 다짐하였다. 강서지방에 머물 때 설암(雪巖)스님을 찾아뵙고 대중속에 섞여 그의 회하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설암스님이 그의 출중한 인물과 법도 있는 행동을 보고서 그에게 당사(堂司)*라는 소임을 맡기려 하자 급암스님과 상의하니 급암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지난날 나와 맹세를 해놓고 이제 와서 어기려고 하는가?

스님은 결국 당사 소임을 사양하였다. 그후 고향인 선거(仙居)로 돌아가니 마을 사람들이 다복사(多福寺)의 주지로 맞이하였으나 그곳을 버리고 호남지방을 돌아다니다가 복엄사(福嚴寺)의 주지가 되었다. 복엄사는 당나라 때 도관(道觀)이었던 것을 사대(思大)스님에 와서 선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그 당시 불평하는 도사들이 많자 사대스님은 그들의 후세를 모두 주지로 삼겠노라는 서약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성은 목(木), 이름은 달선(達善)이라는 자가 있었다. 스님의 이름과 글자만 바뀌어 있을 뿐, 똑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님을 목도사(木道士)의 재생(再生)이라고 믿었다. 그후 절서(浙西)지방으로 돌아와 경산사 운봉(雲峰)스님을 뵙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 깨침을 얻었다. 때마침 혜운사(慧雲寺) 주지자리가 비자 스님이 그곳 주지로 전보되어 처음 올리는 향불을 운봉스님에게 바쳤다.

그 후 보령사(保寧寺)․정자사(淨慈寺)․경산사의 주지를 지내면서 가는 곳마다 모두 기록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스님은 주지하는 곳마다 침상을 마련하지 않고 밤마다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르며 정좌하였다가 아침이 되면 대중 처소로 나가는 것으로 일상을 삼았다. 또한 타고난 체질이 보통사람과는 달라 몹시 추운 날씨에도 성긴 갈포 옷을 입고 무더운 여름에도 두터운 솜옷을 입었으며, 사원에 남은 재산으로 경산 동쪽 산기슭에 대원원(大圓院)을 지어 행각승들을 맞이하였다. 어느날 스스로 때가 온 줄을 알고 대중을 모은 후 평생 행각하던 이야기를 끝마치고 곧 입적하였다.

총림에서는 승직을 지내지 않았다 하여 그를 낮추어 보는 자가 있지만, 지난날 백장(百丈)스님께서 사원의 소임 체제를 세우기 전엔 사람들이 오로지 도에만 힘썼다. 그리하여 마음을 깨쳐 불법을 짊어지게 되면 마치 하늘에 뜬 태양처럼, 온 누리를 흔드는 우레처럼 식(識)을 가진 모든 중생이 그의 빛과 일깨워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무슨 소임이 있었길래 그를 낮추어 볼 수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