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69. 역(易)수좌의 선정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02
 

 

 

69. 역(易)수좌의 선정


역(易)수좌는 자가 무상(無象)이며 송 장군(宋 將軍)의 집안, 하씨(夏氏)의 아들이다. 팔힘이 남보다 뛰어나고 무술에 정통하여 일찍이 부친의 벼슬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달갑게 생각하지 않다가 관직을 버리고 출가하여 상우(上虞) 봉국사(奉國寺)에서 잡일을 하다가 출가 삭발하였다. 그의 스승이 그에게 “심경(心經)”을 외우도록 하였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한 글자도 기억하지 못하자 그를 몹시 미워하였다. 어느 날 선 묘봉(之善妙峰)스님이 그 절을 지나는 길에 그의 스승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글자를 모르고 오로지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것만 좋아하니 아마 선정(禪定)을 닦던 사람이 다시 태어난 성 싶다. 이 사람을 나에게 줄 수 없겠는가?”

스승은 그를 따라 가도록 흔쾌히 허락하였다.

처음 설두사(雪竇寺)에 이르러 방부를 들이고 부지런히 참구하며 누워 자는 일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른나무처럼 꼿꼿하게 선정에 들어 있었다. 그의 옆에 정(正)수좌가 계속해서 그의 동정을 살폈는데 7일이 지나서야 서서히 선정에서 풀려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양 깊은 밤에 회랑(回廊) 처마밑을 천천히 오가는 것이었다. 이에 정수좌가 ”큰 일을 마쳤으니 기쁘겠소!” 하였으나 역수좌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에 보이는 종루를 가리키며 입에 나오는대로 게송을 읊었다.

또다시 정수좌의 말에 따라 첫 새벽에 지팡이를 흔들면서 길을 재촉하여 이틀 후에 화정산(華頂山)에 닿았는데, 계서(溪西)화상을 뵈려 하였으나 날이 저물어 벌써 산문이 닫힌 뒤였다. 산문 밖에서 잠을 자고 이른 새벽 산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계서화상을 뵈었는데 서로 문답하며 시험하는 동안 종지를 깨치고 향로대를 걷어차고는 곧장 그곳을 떠났다. 계서화상이 불렀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마침내 산을 내려오고야 말았다. 이윽고 항주 천목사(天目寺) 고봉(高峰)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두 사람의 말이 딱딱 들어맞자 고봉스님은 그를 수좌로 삼았다.

지정(至正) 원년(1341) 명주(明州) 해회사(海會寺)에 와서 한 방에서 단정히 기거하며 모든 인연을 끊은 채 그림자가 문 밖을 나가지 않았으며 그의 곁에 도구(道具)가 떠나지 않으니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였다.

지정(至正) 갑오년(1354) 정월 느닷없이 시자승에게 다음 달 24일에 강동지방에 잠시 놀다 오겠다고 하였는데, 그 날이 되자 목욕 하고 옷을 갈아입고 행전을 찾아 발에 묶고 시자승의 부축을 받으며 부처님 앞에 가서 삼배를 올린 후 물러나와 가부좌를 하고서 대중스님들에게 결별을 고하였다.

”지난번에 내가 너희들에게 오늘 길을 떠나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말을 마치고 잠자듯 고이 열반하시니, 향년 99세이다. 7일 동안 관 속에 모셔 두었으나 얼굴빛이 선명하고 수족이 부드럽고 따뜻하여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다비를 하자 불길이 높이 솟구쳐 흩어지는 모습이 마치 수많은 기왓장이 하늘로 튀어오르는 것같았고 연기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다비가 끝난 후 사리가 많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