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18. 주지로 정해지는 인연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24
 

 

 

18. 주지로 정해지는 인연


송 도종(宋 度宗:1265~1274)은 몽고군의 공격이 치열하자 도사에게 명하여 큰 제사를 마련하고 하늘에 글을 올려 국가 중대사를 물었다. 그 당시 고(高)도사가 하늘에 상소를 올렸지만 오랫동안 대답을 듣지 못하였다. 제사를 끝마친 후 그 까닭을 묻자 고도사는, 하늘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은 경산사의 48대 주지를 정하는 일로 하늘의 대답이 늦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호암(虎岩)스님이 경산사 주지로 있을 무렵 적조(寂照)스님은 수좌로 있었는데 호암스님은 항상 법좌에서 이 일을 들추어 대중에게 자랑하였다.

”주지라는 이 자리가 어찌 우연으로 48대까지 이르겠는가. 그것은 당연히 하늘에서 이미 정해놓은 것이다.”

적조스님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아니라고 생각하였는데 막상 자신이 경산사의 주지가 되고보니 그 예정된 48대에 해당하였다.

지난 날 운거사(雲居寺)의 즉암(卽菴)스님은 토지신이 현몽하여, “다만 죽 한 끼의 인연'이라고 하였는데 결국 현몽대로였다.

여러 곳의 주지란 그 과보가 추호의 오차도 없는데 부질없이 남의 자리를 밀쳐내고 빼앗으려다가 갇히는 몸이 된 자 없지 않다. 하늘에서 미리 정해놓은 이름과 토지신의 현몽이라는 이 두 가지 일을 듣는다면 날카로운 기세는 조금이나마 거두어 들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