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37. 불법에 조예 깊은 사대부 / 왕문헌공(王文獻公)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50
 

 

 

37. 불법에 조예 깊은 사대부 / 왕문헌공(王文獻公)


전조(前朝:元) 천력(天曆) 원년(1328) 천하에서 글씨 잘 쓰는 승려와 유생을 불러들여 항주 정자사(淨慈寺)에 모두 모아놓고 금가루로 대장경을 쓰게 하였는데 왕문헌공(王文龜公)도 부름을 받고 참여하였다. 그는 반드시 대중 승려와 함께 식사를 하였으며 만일 따로 음식을 차려주면 불쾌히 여겼고, 더 나아가서는 팔꿈치를 끌고 욕해도 먹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지금도 그가 어느 스님을 위하여 절벽 위의 난초를 그린 그림에 쓴 시가 생각난다.


간지러운 봄바람 어디엔들 불지 않으랴만

가파른 절벽 위에 몸을 맡김은 무엇을 위함이뇨

그를 따라 스스로 전도망상 피웠으니

절벽에서 손 놓을 때를 보아야 하리.

嫋嫋春風一樣吹  託身高處擬何爲

從渠自作顚倒想  要見懸崖撒手時


소동파의 영정에 쓴 글(題)은 다음과 같다.


오조스님은 세속 바깥의 사람이라

사바인연 끊은 지 이미 오래 전인데

텅 빈 솜씨로 그 아득한 모습 그려낼 자 누구기에

후세에 몸 밖의 몸을 찾으려 하오.

五祖禪師世外人  娑婆久矣斷生因

誰將描邈虛空手  去覓他年身外身


황산곡(黃山谷)의 영정에 쓴 글은 다음과 같다.


그 당시 회당 노스님 비웃더니

만나자마자 계수나무 꽃향기를 이야기했네

그림을 펼쳐보니 옛모습 그대론데

어찌 일찍이 콧구멍이 크고 작고 하였으리오.

笑殺當年老晦堂  相逢剛道桂花香

披圖面目渾依舊  鼻孔何曾有短長


그는 한 시대의 큰 유학자였지만 불법에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마음먹지 않아도 저절로 옛스님들이 제창한 법어와 일치된 것이니 우러러볼 만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