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부용해선사소참 芙蓉楷禪師小參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7:47
 

 

 

부용해선사소참 芙蓉楷禪師小參[1]

 

夫出家者, 爲厭塵勞, 永脫生死, 休心息念, 斷絶攀緣, 故名出家. 豈可以等閒利養, 埋沒平生? 直須兩頭[2]撒開, 中間[3]放下, 遇聲遇色, 如石上栽花, 見利見名, 如眼中着屑, 况從無始以來, 不是不曾經歷, 又不是不知次第.[4] 不過翻頭作尾, 止於如此, 何須苦苦貪戀. 如今不歇, 更待何時? 是以, 先聖敎人, 只要盡却今時, 能盡今時, 更有何事? 若得心中無事, 佛祖猶是寃家, 一切世事, 自然冷淡, 方始那邊相應. 你不見? 隱山[5]至死, 不肯見人; 趙州至死, 不肯告人;[6]匾檐,[7] 拾橡栗爲食; 大梅, 以荷葉爲衣;[8]紙衣道者, 只披紙;[9]玄泰上座, 只着布;[10]石霜, 置枯木堂, 與人坐臥,[11] 只要死了你心; 投子, 使人辦米, 同煮共餐, 要得省取你事. 且從上諸聖, 有如此榜樣, 若無長處, 如何甘得? 諸仁者! 若也於斯體究, 的不虧人, 若也不肯承當, 向後深恐費力. 山僧行業無取, 忝主山門, 豈可坐費常住, 頓忘先聖付囑. 今者, 輒斅古人爲住持體例, 與諸人議定, 更不下山‧不赴齋‧不發化主, 唯將本院莊課一歲所得, 均作三百六十分, 日取一分用之, 更不隨人添減, 可以備飯則作飯, 作飯不足則作粥, 作粥不足則作米湯. 新到相見, 茶湯而已, 更不煎點, 惟置一茶堂, 自去取用, 務要省緣, 專一辦道. 又况活計具足, 風景不疎, 花解笑, 鳥能啼, 木馬長鳴, 石牛善走; 天外之靑山寡色, 耳畔之流泉無聲; 嶺上猿啼, 露濕中宵之月, 林間鶴唳,[12] 風回淸曉之松; 春風起而枯木龍吟, 秋葉彫而寒林華發; 玉階舖苔蘚之紋, 人面帶烟霞之色. 音塵寂爾, 消息沈然, 一味蕭條, 無可趣向. 山僧今日, 向諸人面前說家門, 已是不着便, 豈可更去陞堂入室, 拈搥竪拂, 東喝西棒, 張眉努目, 如癎病發相似?[13] 不惟屈沈上座, 况亦孤負先聖. 你不見? 達磨西來, 少室山下[14]面壁九年, 二祖至於立雪斷臂, 可謂受盡艱辛. 然而達磨不曾措了一辭, 二祖不曾問着一句, 還喚達磨作不爲人, 得麽? 二祖做不求師, 得麽? 山僧每至, 說着古聖做處, 便覺無地容身, 慙愧後人軟弱. 又况百味珍羞,[15] 遞相供養, 道我「四事具足, 方可發心」, 只恐做手脚不迭,[16] 便是隔生隔世去也. 時光似箭, 深爲可惜. 雖然如是, 更在諸人, 從長相度, 山僧也强敎你不得. 諸仁者, 還見古人偈麽?[17] 「山田脫粟飯, 野菜淡黃虀, 喫則從君喫, 不喫任東西.」 伏惟! 同道各自努力珍重.

무릇 출가라는 것은 세속의 티끌과 수고로움을 싫어하여 영원히 태어나고 죽는 일에서 벗어나며 마음을 쉬고 생각을 그쳐 반연을 단절하는 까닭에 ‘출가’라 이름한다. 어찌 대수롭지 않게 다만 이익을 구하여 육신을 기르는 것으로써 평생을 매몰시킬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곧장 두 가지를 놓아 버리고 그 중간도 내려놓으며, 소리를 마주치거나 색을 마주치면 마치 돌 위에 꽃을 심는 듯이 여기고, 이익을 보고 명예를 보면 마치 눈 안에 티끌이 붙은 양 여길 것이니, 하물며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일찍이 겪지 않았던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순서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님에랴. 다만 머리를 뒤집어서 꼬리를 삼아 이와 같음에 그친 것에 불과한데 어찌 모름지기 애를 쓰고 애를 써서 탐내고 사모하겠는가. 만약 지금에 쉬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옛 성현께서 사람들을 가르치되 ‘다만 지금 이 때를 남김없이 물리쳐야 한다’ 하였으니 지금 이 때를 능히 다할 수 있다면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만약 마음 가운데 아무 일 없음을 얻는다면 부처나 조사도 오히려 원수와 같겠거니, 일체의 세상일들이 자연히 냉담해 질 것이며 바야흐로 저쪽과 상응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은산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보려 하지 않았고, 조주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고, 편첨은 상수리와 밤을 주워 먹거리로 삼았으며, 대매는 연잎으로 옷을 지었고, 지의도자는 다만 종이 옷만을 입었고, 현태상좌는 단지 베옷만을 입었으며, 석상은 고목당을 지어놓고 사람들과 더불어 앉고 누우며 다만 그 마음 죽이기를 바랬고, 투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쌀을 마련하게 하고는 함께 밥을 지어 같이 먹음으로써 그대의 일거리를 덜어주고자 하였다. 또한 위로부터 모든 성현들에게 이와 같은 모범이 있었으니 만약 장점이 없었다면 어찌 달갑게 받아들이겠는가.

모든 어진 자들이여! 만약 여기에서 체득하여 궁구한다면 분명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이나, 만약 기꺼이 받아들여 수긍하지 못한다면 향후에 힘만 허비할까 매우 두렵다. 산승은 그 행적에 취할 것이 없음에도 욕되게 산문의 주인이 되었는데 어찌 앉아서 상주물만 소비하며 앞선 성현들께서 부촉한 일들을 깜빡 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문득 옛사람들이 주지를 하시던 바탕과 사례를 본받아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논의하여 결정하나니, 다시는 산을 내려가지 않고 대중공양에 나아가지 않으며 화주도 보내지 않은 채 오직 본 사원 장과莊課의 한 해 소득을 가지고 균등하게 3백6십 등분하고 하루에 그 1분을 취하여 사용함에 사람 수에 따라 늘이거나 줄이지 않을 것이니, 밥을 지을 만하면 곧 밥을 짓고 밥 짓기에 부족하면 곧 죽을 쑤고 죽 쑤기에 부족하면 곧 미음을 끓일 것이다. 새로 도착한 이를 맞더라도 차와 간식으로 할 뿐 다시 점심을 준비하지 않으며, 오직 한 곳의 다실을 설치하여 스스로 가서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힘써 반연을 줄이고 오로지 도에 힘쓰도록 할 것이다.

또 하물며 생계가 구족하고 풍경이 쓸쓸하지 않으니, 꽃은 웃을 줄 알고 새는 능히 지저귀며 나무로 된 말은 길게 울고 돌로 된 소는 잘 달리며, 하늘 바깥의 푸른 산은 바랜 색을 띄고 귓가에 흐르는 샘은 소리가 없으며, 뫼봉 위에 원숭이가 우니 이슬은 한 밤중의 달빛을 적시고 수풀 사이 학이 우니 바람은 맑은 새벽의 소나무를 휘감아 돌며, 봄바람이 일어나니 마른나무로 용의 읊조림이 들리고 가을 잎이 시들어 떨어지니 한랭한 수풀로 꽃이 피어나며, 옥 빛 계단에는 이끼무늬가 널려 있고 사람들의 얼굴은 안개와 노을 빛을 띄고 있다. 세간의 소리와 티끌은 고요해지고 소식은 가라앉으니 한결같은 맛으로 한적하기에 즐겨 달려갈 만한 것이 없도다.

산승이 오늘 모든 사람들의 면전에서 집안 일을 얘기하는 것이 이미 정당한 측에 들지 못하는데 어찌 다시 나아가 법당에 오르거나 방안으로 들어서서 방망이를 집어들고 불자를 세울 것이며, 동쪽으로 할喝을 내뱉고 서쪽으로 주장자를 두드릴 것이며, 눈썹을 치세우고 눈을 부릅떠서 마치 놀람병이 도진 것 같이 하겠는가. 이는 다만 그대 대덕들을 짓눌러 가라앉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구나 또한 옛 성인들을 저버리는 것이리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달마가 서쪽으로부터 건너와 소실산 아래에서 면벽을 9년 동안 하였고 혜능은 눈 속에 서서 팔을 끊기까지 하였으니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받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달마는 일찍이 한 마디의 말도 던지지 않았고 혜능도 일찍이 한 글귀도 묻지 않았으니, 그러면 달마가 사람들을 위하지 않았다고 해야만 옳겠는가? 혜능이 스승을 구하지 않았다고 해야만 옳겠는가?

산승이 매번 옛 성현들의 일들을 얘기할 때마다 문득 몸 숨길 곳이 없음을 깨닫게 되고 뒷사람의 연약함을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게다가 하물며 백 가지 맛난 음식으로 갈마들어 서로 공양하며 나에게 말하기를 「네 가지의 공양이 충분히 갖추어져야 비로소 발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지만, 다만 손발을 씀에 채 갈마들기도 전에 손써 볼 틈도 없이 문득 이 삶과 이 세상에서 멀어져 떠나버리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시간의 빛은 화살과도 같으니 더욱 애석할 뿐이다. 비록 이와 같지만 다시금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장점을 좇아 서로 제도할 뿐, 산승이 또한 강제로 그대들을 가르치려 해도 그리되지 않으리다. 모든 어진 자들이여 옛 사람들의 게송을 본 적이 있는가?

산마루의 밭을다녀훑어모은 뉘밥덩이,

저물들녘 나물뽑아묽게무친 채소반찬,

먹겠다면 그대마음내킨대로 먹을게고,

먹지를 않겠다면야그저그리 남으리다.

엎드려 바라건대 같은 길가는 이들은 서로 노력하라. 진중하라.

【1】芙蓉山.道楷禪師, 沂州.崔氏子, 嗣投子.義靑禪師.

【2】根境二處.

【3】中六識.

【4】曾經歷知次第者, 是根境識三也.

【5】《傳燈》龍山和尙是也, 不知何方人氏.

【6】逢人, 只云「喫茶去」, 了無他語.

【7】匾檐山.曉了禪師.

【8】大梅禪師, 偈云「一池荷葉, 衣無盡.」

【9】涿州.紙衣道者, 卽克符禪師也.

【10】一生未嘗衣帛, 時人謂之泰布衲.

【11】師居石霜二十年, 學者多有常坐不臥, 屹若株机, 天下謂之枯木衆.

【12】鶴頸曲, 其聲出戾故, 以鶴鳴爲唳.

【13】癎音閑, 小兒癲病. 醫書, 小兒有五癎, 五臟各有畜所屬: 心癎, 其聲如羊; 肝癎, 其聲如犬; 脾癎, 其聲如牛; 肺癎, 其聲如鷄; 腎癎, 其聲如猪.

【14】崇山有大室‧小室, 故號崇山爲小室.

【15】《智論》云: 「百味者, 有能以百種供養, 是名百味; 有云餠種數五百, 其味有百, 是名百味; 有云百種藥草, 作歡喜丸, 是爲百味; 有云飮食羹餠, 總有百; 有云飮食, 種種備足, 故稱爲百味.」

【16】若能見性, 有黏斯脫則六根互用; 不然, 那能迭相作用諸根也.

【17】牛頭.融禪師偈.

【1】부용산 도해선사는 기주 최씨의 아들로서 투자 의청선사의 법을 이었다.

【2】根과 境의 두 處(āyatana)이다.

【3】中六識이다.

【4】曾經歷,知次第란 곧 根‧境‧識 셋이다.

【5】《전등록》에서 말하는 용산화상이 바로 그인데 어느 지방의 무슨 성씨인지 알 수 없다.

【6】사람을 만나면 단지 「차나 마시고 가게!」 하고는 다른 말이 없었다.

【7】편첨산 효료선사이다.

【8】대매선사의 게송에 이르기를 「못 하나의 연잎이면 옷 지음에 가없으리」라 하였다.

【9】탁주의 지의도자이니 곧 극부선사이다.

【10】평생 동안 비단을 입지 않았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일러 ‘태포납’이라 하였다.

【11】선사께서 석상에 머무르기 20년, 그에게 배우는 자들은 대체로 늘 앉아 있을 뿐 눕지 않았으니 그 우뚝 솟은 모습이 마치 베어놓은 나무 그루터기 같았기에 천하에서 그들을 일컬어 ‘고목중’이라 하였다.

【12】학은 목이 굽어 있어 그 소리가 나오며 어그러지는 까닭에 학이 소리내는 것을 운다(唳)고 한다.

【13】癎의 음은 한(閑)이며 어린아이가 앓는 지랄병이다. 의서에 어린아이에게 다섯 가지의 지랄병이 있는데 오장에 따라 각기 연관되는 짐승이 있다 하였으니, 심장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양과 같고, 간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개와 같고, 지라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소와 같고, 폐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닭과 같고, 콩팥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돼지와 같다고 하였다.

【14】숭산에는 대실과 소실이 있는 까닭에 [단지] 숭산이라 부를 때는 소실이 된다.

【15】《지론》에서 말하였다. 「百味란 1백 가지 종류로써 능히 공양함이 있기에 이를 백미라 이름하는 것이며, 또는 떡이 그 종류의 수가 5백이요 그 맛이 1백 가지이므로 이를 백미라 이름한다고 하며, 또는 1백 종류의 약초로 환희환을 만드니 이것이 1백 가지 맛(百味)이 된다고 하며, 또는 음식과 국 및 떡 등이 모두 1백 가지가 있다고 하며, 또는 음식이 종류별로 모두 갖추어진 까닭에 그것을 일컬어 백미라 한다고 한다.」

【16】만약 능히 성품을 본다면 有黏이 이로서 벗어질 것인 즉 육근이 상호 작용할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어찌 능히 갈마들며 모든 根이 서로 작용하겠는가.

【17】우두 융선사의 게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