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본지풍광(本地風光) / 삼서근

通達無我法者 2008. 3. 19. 11:24
본지풍광(本地風光)

삼서근

이렇게도 할 수 없으니 삼산三山은 반쯤 푸른 하늘 밖에 솟아 있고
이렇게도 안 할 수 없으니 두 물줄기는 앵무주에서 가운데로 나위어졌다.
이렇게도 할 수 있으니 아침마다 붉은 해는 서쪽에서 뜨고
이렇게도 아 할 수 있으나 밤마다 밝은 달은 동쪽에서 진다.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지 않으며 다 할 수 있고 다 할 수 없으니
꽃은 붉고 버드나무 푸른 어지로운 산속에
예쁜 새 날아와 맑은 소리로 노래 부르네.
어떤 중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삼서근이니라”

여기의 동산洞山스님은 종동종의 개조인 동산洞山의 양개良介선사가 아닙니다. 운문종 문언스님의 제자인 동산洞山 수초守初 선사입니다.
운문스님을 처음 찾아가서“이 밥푸대야! 강서로 호남으로 이렇게 다녔느냐?”고 질책 당한 그 동산입니다. 처음 운문스님을 찾아가 뵈오니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오는가?”
“사도渣渡에서 왔습니다.”
“앞의 여름 안거는 어디서 보냈는가?”
“호남湖南의 보자사報慈寺에서 보냈습니다.”
“언제 출발했는가?”
“8월 25일에 출발했습니다.”
“자네같이 미련한 놈은 60방을 맞아도 시원치 않을 놈이다.”

그 말씀에 동산스님은 밤새도록 열심히 그 뜻을 알려고 해보았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다음 날 운문스님을 찾아 뵈옵고, “어제 저에게 60방을 때려도 시원치 않다고 하셨는데 저의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하니, 운문스님이 언성을 높이며 “이 밥푸대야! 강서로 호남으로 이렇게 다녔느냐?”하고 질책하는 말씀 끝에 확철대오 하였다고 합니다.
이 법문에 대해서 스님께서 다음과 같이 착어하였다.
소를 잡고 양가죽을 벗기며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구나.
이 뜻을 바로 알면 부처도 알 수 있고 따라서 삼서근이라 한 그 뜻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은 말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이것은 부처가 아닌 것입니다.
동산스님이 따라서 경계하여 말하였다.
“말은 일을 벌림이 없고 말은 기름을 던지지 않으니 말을 따르는 자는 죽고 글귀에 머무는 자는 미迷하느니라”
수초스님이“어떤 것이 부처냐”는 물음에 삼서근이라는 법문을 해 놓고 사람들의 오해가 있을까 싶어서 한 말씀입니다. 말은 일을 벌림이 없다(無言展事)함은 삼이라 하든지 나무라 하든지 돌이라 하든지 사람이라 하든지 이런 말은 일을 벌려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삼서근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옷해 입는 그 삼베인 줄 알지 않았겠냐. 바로 그 삼베인 줄로 알 터인데 뜻이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은 기틀을 던지지 않는다(語不投機)함은 그 어떤 법담을 거량함에서 그 무슨 기본이나 기틀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을 이어서 말밑에서 말을 가지고 무슨 뜻이 있는가 하고 거기에서 더듬을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삼서근이라 한 그 뜻은 말 밖에 있는데 만일 누구든지 그 삼서근이라 한 그 말 속에 무슨 깊은 뜻이 들어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다가는 죽는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언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미迷해서 영원히 깨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치 이 삼서근이라 대답한 본 뜻을 알려면 삼서근이라고 답한 그 말 밖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하지. 삼서근이라고 한 그 말 밑에서 그 삼서근에서 더듬어가는, 거기에 머물러 있다가는 영원토록 그 뜻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법문에 대해서 스님께서 다음과 같이 착어하였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고
범을 그리다가 이리가 되었네.
원오선사가 송하였다.
종을 치니 골짜기에 메아리 울리고
못에는 달이 비치고 거울에는 얼굴이 뚜렷하다.
이것이 삼서근에 대해서 근본 뜻을 말한 것입니다. 그대로 이 말은 따라가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못 속에 달이라 하고 거울 속에 얼굴이라 한다고 말로 따라가서 삼서근을 찾다가는 영원토록 모르고 만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저 말 밖에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무슨 물건을 가지고 형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 밖에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일을 벌이고 기틀을 던짐이 아닌데
어찌 미리 긁어 놓고 가려움을 기다리리오.
아직 근지럽지도 않는데 머리 근질어 놓고 가려움을 기다리는 것은 그 미친 사람의 짓이 아니냐. 말로만 따라가는 사람 모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또 그렇게 거꾸로 된 사람이다. 미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무소를 다루어 금으로 만들고
곧은 것은 들고 굽은 것은 놓아 버린다.
한 화실에 수리 한 쌍을 맞히고
한번 움켜쥐니 피가 한 손바닥이로다
보통은 활 하나를 쏘면 수리 한 마리가 떨어질 텐데 어째서 두 마리가 한꺼번에 떨어진다 하느냐. 두 마리가 떨어진다 하는데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니, 이 뜻을 알면 앞의 법문의 뜻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성글어도 새지 않음이여
넓고 넓은 하늘 그물이로다.
하늘 그물은 그 그물코가 하도 넓어 눈에 보이지를 않지만은, 설사 아무리 그 그물코가 넓다 해도 빠짐없이 전체가 그 그물 속으로 꿰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글귀가 심지에 삼서근이라 말한 뜻을 결론적으로 총회향한 것입니다.

이 법문에 대해서 스님께서 다음과 같이 착어하였다.
맹산군의 집안이요 범단笵丹의 뜰앞이로다
맹상군이란 천하의 부귀영화를 다 누린 사람이요. 범단이란 천하에 가장 가난한 사람을 말합니다.
설두선사가 송하였다.
금까마귀 급히 날고 옥토끼 빨리 달리니
잘 대응하는지라 어찌 일찍이 가벼운 접촉 있으리오.

금까마귀는 해를, 옥토끼는 달을 말하는 것이니, 해도 빨리 가고 달도 빨리 가는데, 무슨 법을 묻든지 조금도 거리낌없이 대답을 척척 잘하니, 그 앞에서는 누구든지 어른대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저 사람이 대답을 잘하는가 못하는가, 잘 맞게 할는지 못할는지,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대처했다가는 절대로 그 사람의 생명을 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벌이고 기틀을 던져 동산을 보면
절름발이 지라와 눈 먼 거북이 빈 골짜기로 들어간다.

말을 따라가고 기틀을 따라가고서는 동산스님이 삼서근이라고 한 그 뜻을 알려고 하면, 결국 절름발이 자라나 눈 먼 거북이 같이 다 병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빈 골짜기로 들어간다 함은 눈이 멀어 있으니 뭘 보이나, 안 보이니까 천지를 모르고 헤맨다는 것입니다. 그 뜻이 무엇인가 하면 누구든지 그 뜻을 알려고 해서는 눈 먼 사람이 방향을 모르고, 천지를 모르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자꾸 이리저리 헤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
남쪽 땅 대竹요 북쪽 땅의 나무로다.

이 게송은 설두스님의 은사 스님 되는 지문 광조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묻기를 “동산스님이 삼서근이라 대답한 그 뜻이 무엇입니까?”하니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하다”고 대답하니,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하고 재차 물으니, “남쪽 땅에는 대나무요 북쪽 땅에는 나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삼서근의 뜻을 바로 일러준 말인데, 이것도 역시 말로만 따라가면 틀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장경과 육긍대부를 생각하노니
마땅히 웃을 것이요, 울 일은 못된다 함을 알겠도다. 허허!

육대부는 남전스님의 제자인데, 남전스님이 돌아가셔서 제사를 지내려고 남전스님이 계시던 절을 찾아갔습니다. 남전스님의 영을 모시고 차려 놓은 제사상 앞에서 허허 하고 박장대소를 하며 크게 웃었습니다. 그 제사상을 차려 놓은 원주스님이 가만히 보니, 육대부가 와서 애도를 표시하기는커녕 제상을 차려놓은 앞에서 박장대소를 하니 마음이 언짢아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오랜 동안 남전스님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많이 하여 인가를 받은 사람인데 어째서 스님의 제사상 앞에서 울지를 아니하고 크게 웃느냐?”하고 힐난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육대부가 “남전스님이 돌아가셨는데 원주스님께서 한마디 분명히 말하면 내가 한바탕 크게 울테니 한마디 일러 보소”하니 원주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육대부가 다리를 뻗고 섧게 크게 울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가슴을 치고 “우리 남전스님이 돌아가셨다”하면서 방성대곡을 하였습니다. 그 일을 장명스님이 듣고서 “대부는 웃어야 할 일이지 울 일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원주가 대답을 못했으니 육대부가 울 일이 아니다”하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웃어야 할 일이지 울 일은 아니다”하는 그 말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법문에 대해서 스님께서 다음과 같이 착어하셨다.
가주의 큰 불상이요 협부의 무쇠 소로다.

이 뜻을 확실히 알면 앞에 말한 법문을 전체적으로 다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사량복락으로 생각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언구로 사물을 알아서는 영원토록 동쪽으로 가라는데 서쪽으로 가는 사람이 되고 그 방향을 모르고 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두 늙은이의 좋은 잠꼬대여, 동산의 뜻에 맞았는가?
애닯다. 천고의 뒤에 어찌 사람이 없으리오.
벽 사이에서 갑자기 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말해보라, 무엇을 웃느냐.
억!


*동산수초洞山守初/910∼990. 운문종. 운문雲門 문언文偃의 법사, 청원하 7세.
*맹상군孟嘗君/중국 전국시대의 제나라 사람으로 정승이 되어 현사를 초빙하여 식객이 삼천여 명에 이를 만큼 부귀영화를 누렸다.
*범단笵丹/후한 때 청빈하기로 이름난 고사. 끼니를 잇지 못할 만큼 적빈하였다고 함.
*가주대상嘉州大像/당대 사문인 해통海通(일설에 도선道宣)이 가주(사천성 파현중경 부근)의 대강大江에 높이 삼육장(약 일백 미터)의 미륵불 석상을 만들었다고 함.
*협부철우俠府鐵牛/협부는 하남성에 속하며 황하의 수호신우로서 무왕이 만들었다고 하는 대철우를 말함. 머리는 하남 땅에 꼬리는 하북 땅에 있다 함. 대력량인大力量人의 무작無作의 묘용妙用에 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