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록(懶翁錄)

20. 조상서 (趙尙書) 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通達無我法者 2008. 3. 19. 15:20

 

 

 

20. 조상서 (趙尙書) 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죽비로 향탁 (香托) 을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채 (蔡) 씨 영가는 아는가. 이 자리에서 알았거든 바로 본지풍광 (本地風光) 을 밟을 것이오, 만일 모르거든 이 말을 들으라.
50여 년 동안을 허깨비 바다 〔幻海〕 에 놀면서 온갖 허깨비 놀음을 하다가 오늘 아침 갑자기 4대가 흩어져 각각 제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밝고 텅 빈 〔虛明〕  한 점만이 환히 홀로 비추면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청하면 곧 오는데,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한다.
오직 이 광명은 시방세계의 허공을 채우고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찬란히 모든 사물에 항상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산하대지는 법왕의 몸을 완전히 드러내고, 초목총림은 모두 사자후를 짓는다. 한 곳에 몸을 나타내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나타나고, 한 곳에서 법을 설하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법을 설한다. 한 몸이 여러 몸을 나타내고 여러 몸이 한 몸을 나타내며, 한 법이 모든 법이 되고 모든 법이 한 법이 되는데, 마치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 받아들이고 크고 둥근 거울 〔大圓鏡〕 처럼 영상이 서로 섞인다. 그 가운데 일체 중생은 승속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혜있는 이나 지혜없는 이나, 유정이나 무정이나, 가는 이나 오는 이나, 죽은 이나 산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성불한다'라고.


채씨 영가여, 아는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 의심이 없으면 현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 3세의 부처님네와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다니면서 이승이나 저승에서 마음대로 노닐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 구절을 들으라."
죽비로 향탁을 한 번 내리치고는 "한 소리에 단박 몸을 한 번 내던져 대원각 (大圓覺) 의 바다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