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록(懶翁錄)

21. 장흥사 (長興寺) 원당 (願堂) 주지의 청으로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通達無我法者 2008. 3. 19. 15:23

 

 

 

21. 장흥사 (長興寺)  원당 (願堂) 주지의 청으로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로 탁자를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승의공주 선가와 이씨 영가와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 4성6범 (四聖六凡) 이 여기서 갈라지고 4성6범이 여기서 합한다. 그대들은 아는가. 만일 모른다면 내가 한마디 하여 그대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라.
승의 선가와 이씨 영혼이여, 만일 이 일대사인연으로 말하자면 지옥세계에 있는 자나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세계에 있는 자를 가리지 않고 각기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다니고 서며 앉고 누우며 움직이는 동안 배고프고 춥기도 하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면서 어디서나 갖가지로 작용하는데, 다만 미혹과 깨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즐거움을 누리는 이도 있고 항상 지독한 고통을 받는 이도 있어 두 경지가 같지 않다.
불자들이여, 이 한 점 신령하고 밝은 것 〔靈明〕 은 성인에 있다 하여 늘지도 않고 범부에 있다 하여 줄지도 않으며, 해탈하여 의지하는 곳이 없으며 활기가 넘쳐 막히는 일도 없다.
비록 형상도 없고 처소도 없으나 시방세계를 관통할 수 있고 모든 부처의 법계에 두루 들어간다. 물물마다 환히 나타나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고 버리더라도 언제나 있다. 한량없이 광대한 겁으로부터 나도 따라 나지 않고 죽어도 따라 죽지 않으며, 저승과 이승으로 오가지만 그 자취가 없다.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며, 6근에 두루두루 나타나되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다.
불자들이여, 과연 의심이 없는가. 여기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으면, 바른 눈이 활짝 열려 불조의 혜명 (慧命) 을 잇고 스승의 기용 (機用) 을 뛰어넘어 현묘한 도풍을 크게 떨칠 것이다. 만일 그래도 의심이 있으면 또 한 가지를 들어 남은 의심을 없애 주리니 자세히 보아라."
죽비를 들고 "이것을 보는가" 하고 한 번 내리치고는, "이 소리를 듣는가. 보고 듣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