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Ⅱ. 제명(題名)을 해석함

通達無我法者 2008. 3. 24. 11:06

 

Ⅱ. 제명(題名)을 해석함

은정희 역주/일지사/자료입력:도규희

 

 

【소(疏)】
다음은 제명(題名)을 해석한 것이다. 대승이라고 말한 것은, 대(大)는 법에 해당하는 이름이니 널리 감싸는 것으로 뜻을 삼고, 승(乘)은 비유에 붙인 이름이니 운반하는 것으로 공을 삼는다. 총설은 그러하나 그 중에 분별한다면 두 가지 문이 있으니, 먼저는 경에 의하여 설명하고, 뒤에는 논에 의하여 밝힐 것이다.
〔次釋題名. 言大乘者. 大是當法之名, 廣苞爲義. 乘是寄喩之稱, 運載爲功. 總說雖然, 於中分別者則有二門. 先依經說. 後依論明.〕

경에 의하여 설명하자면 허공장경(虛空藏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다. 즉,
“대승이란 무량(無量), 무변(無邊), 무애(無崖)하기 때문에 일체에 널리 두루 함을 말한 것이니, 비유하자면 허공이 광대하여 모든 중생(衆生)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성문(聲聞), 벽지불(?支佛)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대승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依經說者. 如虛空藏經言. 大乘者. 謂無量無邊無崖故. 普?一切. 喩如虛空. 廣大容受一切衆生故. 不與聲聞?支佛共故. 名爲大乘.〕

다음 승(乘)이란 사섭법(四攝法)에 바르게 머무르는 것으로써 바퀴(輪)를 삼고, 십선업(十善業)을 잘 깨끗이 닦는 것으로 바퀴살(輻)을 삼으며, 공덕(功德)의 자량(資糧)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속바퀴(輪)를 삼으며, 견고하고 순수하고 한결같은 뜻으로 관할(管轄:수레의 굴대를 빠지지 않게 꽂는 빗장)과 강섭(:바퀴통의 구명에 끼는 철관)을 삼으며, 모든 선(禪)의 해탈을 잘 성취하는 것으로 끌채(轅:수레의 앞 양쪽에 대는 긴 채)를 삼으며, 사무량(四無量)으로 잘 길들여진 말을 삼으며, 선지식(善知識)으로 수레를 모는 사람을 삼고, 때와 때가 아닌 것을 아는 것으로 발동(發動)을 삼으며,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의 소리로써 채찍을 삼으며, 칠각지(七覺支)의 보배로운 끈으로써 가슴걸이(?靷)를 삼으며, 오안(五眼)을 맑게 함으로써 말 모는 끈(索帶)을 삼으며, 홍보(弘普)ㆍ단직(端直)ㆍ대비(大悲)로써 깃발과 깃대를 삼으며, 사정근(四正勤)으로써 바퀴굄목(?:수레 뒤턱나무이니 수레바퀴를 버티는 나무이다)을 삼으며, 사념처(四念處)로써 평탄하고 곧은 길(平直)을 삼으며, 사신족(四神足)으로써 속히 나아가게 하며, 수승한 오력(五力)으로써 대오를 살피며, 팔성도로써 곧 바로 나아가게 하며, 모든 중생에 대한 장애(障碍)없는 지혜의 밝음으로써 수레(軒)를 삼으며, 주착(住着)함이 없는 육바라밀(六波羅密)로써 살반야(薩般若)에 회향하며, 걸림이 없는 사제로써 피안(彼岸)에 건너 이르니, 이것이 곧 대승이 된다.”고 한 것과 같다.
이를 풀이하면 위에서부터 20구로써 비유를 들어 법에 견주어서, ‘승(乘)’의 뜻을 나타냈다.
〔復次乘者. 以正住四攝法爲輪. 以善淨十善業爲輻. 以淨功德資糧爲?. 以堅固渟至專意爲?轄釘? . 以善成就諸禪解脫爲轅. 以四無量爲善調. 以善知識爲御者. 以知時非時爲發動. 以無常苦空無我之音爲驅策. 以七覺寶繩爲 靷. 以淨五眼爲索帶. 以弘普端直大悲爲旒幢. 以四正動爲 ? 軫也校 木輪也 以四念處爲平直. 以四神足爲速進. 以勝五力爲鑒陣, 以八聖道爲直進. 於一切衆生無障?慧明爲軒. 以無住六波羅密廻向薩般若. 以無?四諦度到彼岸. 是爲大乘. 解云. 上來以二十句擧喩況法以顯乘義.〕

또 허공장경의 그 다음 글에서 말하기를, “이 승(乘)은 모든 부처가 받아들이는 것이며, 성문과 벽지불이 본 것이며, 모든 보살이 탄 것이며, 제석(帝釋)과 범천(梵天)과 세상을 보호하는 사천왕(四天王)들이 마땅히 경례(敬禮)해야 할 것이며, 모든 중생이 마땅히 공양해야 할 것이며, 모든 지혜로운 자들이 마땅히 찬탄해야 할 것이며, 모든 세상 사람들이 마땅히 돌아가야 할 것이며, 일체의 모든 마라(磨羅)들이 깨뜨릴 수 없는 것이며, 모든 외도(外道)들이 측량할 수 없으며, 모든 세상의 지혜 있는 이들이 함께 경쟁할 수 없는 것이다.” 고 하였다. 이를 풀이하면 위에서부터 10구로써 사람에 대비시켜 대승을 나타낸 것이다.
〔又下文云. 此乘諸佛所受. 聲聞?支佛所觀. 一切菩薩所乘. 釋梵護世所應敬禮. 一切衆生所應供養. 一切智者所應讚歎. 一切世間所應歸趣. 一切諸魔不能破壞. 一切外道不能測量. 一切世間不能與競. 解云. 上來以十句對人顯大乘也.〕

논에 의하여 밝히자면 일곱 가지와 세 가지가 있으니, 세 가지 ‘대(大)’의 뜻은 아래 글에서 설명할 것이며, 일곱 가지라 말한 것은 여기에 두 종류의 일곱 가지가 있다.
〔依論明者有七有三. 三種大義, 下文當說. 言七種者, 有二種七.〕

첫 번째는, 대법론(對法論)에서 말하기를
“일곱 가지의 대성(大性)과 상응하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말하니,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경대성(境大性)이니, 보살도(菩薩道)는 백천(百千) 등의 한량없는 제경(諸經)의 광대한 교법을 따르는 것으로 경계를 삼기 때문이요, 둘째는 행대성(行大性 )이니, 일체의 자리(自利), 이타(利他)의 광대한 행실을 바로 행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지대성(智大性)이니, 광대한 푸드갈라(pudgala)와 법이 무아(無我)임을 깨달아 알기 때문이요, 넷째는 정진대성(精進大性)이니, 삼대겁아승기야(三大劫阿僧祇耶)동안에 한량없는 실천하기 어려운 행실을 방편(方便)으로 부지런히 닦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방편선교대성(方便善巧大性)이니, 생사와 열반(涅槃)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증득대성(證得大性)이니, 여래의 모든 힘과 무외(無畏)의 불공불법(不共佛法) 등 한량없는 무수한 큰 공덕을 얻기 때문이요, 일곱 번째는 업대성(業大性)이니 생사의 때가 다하도록 일체의 보리(菩提)를 이루는 것 등을 나타내어 광대한 모든 불사(佛事)를 세우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앞의 다섯 가지는 원인이고, 뒤의 두 가지는 결과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一者如對法論云. 由與七種大性相應, 故名大乘. 何等爲七. 一境大性. 以菩薩道綠百千等無量諸經廣大敎法爲境界故. 二行大性. 正行一切自利利他廣大行故. 三智大性. 了知廣大補特伽羅法無我故. 四精進大性. 於三大劫阿僧祇也方便勤修無量難行行故, 五方便善巧大性. 不住生死及涅槃故. 六證得大性. 得如來諸力無畏不共佛法等無量無數大功德故. 七業大性. 窮生死除, 示現一切成菩提等建立廣大諸佛事故. 此中前五是因. 後二是果也.〕

두 번째는 현양론(顯揚論)에서 말하기를, “대승의 성질이란 보살승(菩薩乘)이 일곱 가지의 대성(大性)과 함께 상응하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말하였으니,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법대성(法大性)이니, 십이분교(十二分敎 ) 중에 보살장(菩薩藏)이 포섭하는 바르고(方正) 넓은 가르침을 말하며, 둘째는 발심대성(發心大性)이니, 이미 무상정등각심(無上正等覺心)을 발하였음을 말하며, 셋째는 승해대성(勝解大性)이니, 앞에서 말한 법대성의 경지에 대하여 수승(殊勝)한 신해(信解)를 일으킴을 말하며, 넷째는 의락대성(意樂大性)이니, 이미 수승한 해행(解行)의 경지를 초과하여 정승의락지(淨勝意樂地)에 들어감을 말하며, 다섯째는 자량대성(資糧大性)이니, 복(福)과 지혜 두 가지의 큰 자량(資糧)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잘 증득함을 말하며, 여섯째는 시대성이니, 삼대겁아승기야에 무상정등보리를 잘 증득함을 말하며, 일곱째는 성만대성이니, 즉 무상정등보리자체를 말하니 성취 만족한 보리 자체는 여타의 성만 자체에 비하여도 오히려 더불어 같음이 없는데, 하물며 무엇이 이보다 더 뛰어나겠는가. 라고 하였으니, 유가사지론과 보살지지론(菩薩地持論)에서도 모두 이 설과 같다.
〔二者顯揚論. 大乘性者, 謂菩薩乘與七大性共相應故, 說名大乘. 云何爲七. 一法大性. 謂十二分敎中菩薩藏所攝方便廣大之敎. 二發心大性. 謂已發無上正等覺心. 三勝解大性. 謂於前所說法大性境起勝信解. 四意樂大性. 謂已超過勝解行地, 人淨勝意樂地. 五資糧大性. 成就福智二種大資糧故, 能證無上正等菩提. 六時大性. 謂三大劫阿僧企耶時能證無上正等菩提. 七成滿大性. 謂卽無上正等菩提自體所成滿菩提自體, 比餘成滿自體, 尙無與等, 何?超勝. 瑜伽地持, 皆同此說.〕

유가론에서 말하기를, “이 중에서 법대성(法大性)에서 시대성(時大性)에 이르기까지의 이러한 여섯 가지는 모두 원증대성(圓證大性)의 원인이고, 원증대성은 앞의 여섯 가지 대성의 결과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풀이하면, 이러한 두 종류의 일곱 가지의 대성이 그 수는 같지만 그것을 세운 뜻은 다르니, 세운 뜻은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승을 해석함을 마치다.
〔瑜伽論云. 此中若法大性, 乃至若時代性, 如是六種, 皆是圓證大性之因. 圓證大性, 是前六種大性之果. 解云. 如是二種七種大性. 其數雖同. 建立意別. 建立之意. 釋大乘竟.〕

‘기신(起信)’이라고 말한 것은 이 《기신론》의 글에 의하여 중생의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믿음을 일으킨다’고 말하였다. ‘신(信)’은 결정코 그러하다고 여기는 말이니, 닦아서 얻을 때에 무궁한 덕이 있음을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이치가 실제로 있음을 믿는다’ 는 것은 체대(體大)를 믿는 것이니, 일체의 법이 그 실체를 얻을 수 없음을 믿기 때문에 곧 평등법계(平等法界)가 실제로 있음을 믿는 것이다. ‘닦아서 얻을 수 있음을 믿는다’ 는 것은 상대(相大)를 믿는 것이니, 본성의 공덕(功德)을 갖추어 중생을 훈습(薰習)하기 때문에, 곧 서로 훈습하면 반드시 마음의 근원에 돌아가게 됨을 믿는 것이다. ‘무궁한 공덕의 작용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용대(用大)를 믿는 것이니, 하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言起信者. 依此論文, 起衆生信, 故言起信. 信以決定爲爾之辭. 所謂信理實有. 信修可得. 信修得時有無窮德. 此中信實有者, 是信體大. 信一切法不可得故. 卽信實有平等法界. 信可得者, 是信相大. 具性功德熏衆生故. 卽信相熏必得歸原. 信有無窮功德用者, 是信用大. 無所不爲故.〕

만일 사람이 이 세 가지 믿음을 잘 일으킨다면, 불법에 들어가서 모든 공덕을 내고, 모든 마경(魔境)에서 벗어나 무상도(無上道)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화엄경(華嚴經)의 게송(偈頌)에서 이르기를, “믿음은 도의 으뜸이요 공덕의 어미인지라 일체의 모든 선근(善根)을 증장하며 일체의 모든 의혹을 없애서, 무상도(無上道)를 개발함을 나타내도다. 믿음은 여러 마경(魔境)을 벗어나 무상해탈도(無相解脫道)를 내노라.” 라고 한 것과 같으니, 믿음은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이 논에 의해 발심하게 되므로 ‘기신(起信)’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若人能起此三信者, 能人佛法生諸功德, 出諸魔境, 至無上道. 如經偈云. 信爲道元功德母. 增長一切諸善根. 除滅一切諸疑惑. 示現開發無上道. 信能超出衆魔境. 示現無上解脫道. 一切功德不?種. 出生無上菩提樹. 信有如是無量功德. 依論得發心. 故言起信.〕

이른 바 ‘논(論)’이라는 것은, 결정적으로 궤범이 될 만한 글을 건립하여 매우 깊은 법상(法相)의 도리를 판단하여 설명하는 것이니, 이 결판(決判)의 뜻에 의하여 논(論)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所言論者, 建立決了可軌文言. 判說甚深法相道理. 依決判義. 名之爲論.〕

총괄하여 말하자면, 대승은 논의 종체(宗體)요, 기신은 논의 수승한 기능이니, 체용(體用)을 함께 들어서 제목을 나타내기 때문에,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總而言之. 大乘是論之宗體, 起信是論之勝能, 體用合擧, 以標題目. 故言大乘起信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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