話頭·參禪

화두 공부의 단계

通達無我法者 2008. 5. 3. 19:26

 

 

 

 

화두 공부의 단계

 

부처님께서는 6년동안 한번 앉으셔서는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참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다 좌선에서 힘을 얻게 됩니다.
화두공부를 지어감에 있어 공부의 단계를 굳이 밝힌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그 계차가 엄격한 것도 아닙니다.
수행자들은 이러한 순서를 금과옥조로 생각지 말고 공부해 나가는데 참조로 삼았으면 합니다.

첫째, 송화두(誦話頭)입니다. 이것은 화두를 입으로 외우지 아니하면 의심은 커녕 화두마저 들리지 아니하므로 부득이하여 입으로 소리를 내어 외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간신히 화두가 들리며 의심이 조금 일어나는 정도입니다. 소리를 내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공부에 방해가 되므로 선방 밖으로 나가서 「송화두」를 지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염화두(念話頭)입니다. 목숨을 떼어 놓고 화두를 애써 외우다가 보니 지금은 소리쳐 외우지 아니하여도 화두가 마음에 잡히고 희미하게나마 의심은 일어나다 말다가 합니다.

셋째, 주작화두(做作話頭)입니다. 위의 염화두로써 죽자하고 애를 쓰니 어떤 날은 제법 화두가 힘차게 들리고 의심이 번쩍 일어서다가 또 며칠 동안은 잔뜩 애만 태우고 공부는 잘 안되는 날도 있게 됩니다. 참선이 잘 되다가 말다가 하여서 애써 주작하는 것이므로 「주작화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넷째, 진의돈발(眞疑頓發)입니다. 이렇게 간절히 애써가므로 공부가 점점 진보되어서 홀연히 八만四천 망상이 뚝 끊어지고 화두에 대한 의심이 정말로 간절하여 앉고 선 줄도 모르며 또한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딱 버티고 힘차게 앉아 있게 됩니다.

다섯째, 좌선일여(坐禪一如)입니다. 그리하여 단정히 앉아서 참선을 하는 때에는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앉은 줄을 모르며 화두 의심 한 생각만이 순일하여 쭉 일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어나서 일을 할 때는 화두가 희미하거나 없어지거나 하고 맙니다.

여섯째, 동정일여(動靜一如)입니다. 이 동정일여가 된 공부에 또한 세 가지 단계의 구별이 있으니 좌선일여를 지나서 일을 하여도 화두 의심이 그대로 버티고 있으나 말을 할 때에는 화두가 끊어지는 경우가 그 첫번째 단계이며, 말할 때에는 잘 되다가 소설이나 잡지 같은 것을 열심히 읽으면 끊어지게 되는 경우가 두번째 단계이고, 소설을 숙독하여도 화두는 제대로 힘차게 나아가며 또한 일부러 저질러서 남에게 죽도록 매를 맞는 때에도 화두가 그냥 힘차게 나아가야 공부가 비로소 「동정일여」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곱째, 몽각일여(夢覺一如)입니다. 비록「동정일여」는 된다 하더라도 꿈을 꿀 때에는 공부는 그만두고 번번이 딴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공부를 더욱 돈독히 힘써 가면 꿈속에서도 「동정일여」 때와 같이 三단계로 진보하여서 힘찬 화두의 의심이 앞서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야 비로소 완전한 「몽각일여」가 되는 것입니다.

여덟째, 오매일여(寤寐一如)입니다. 이와 같이 비록 「몽각일여」는 되었다 할 지라도 잠이 폭 든 때에는 화두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것은 순전한 잠만 자는 것이 아니고 희미한 화두가 들려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드러누워서 잠을 자는 시간이라도 잠은 점점 희박해지고 화두의 의심은 점점 드러나서 확실해지는 때에는 잠은 아주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래로 이 육신이라는 것이 진공의 무(無)가 변화한 환상(幻想)이기 때문에 이 몸은 당초부터 자고 깨고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다만 이 마음이 스스로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움직인 끝에는 피로하게 되고 잠을 자게 됩니다. 이 화두의 의심이 돈독해져서 잠이 없어지고 「오매일여」가 된 지경에 이르면 불원간에 인생의 본래면목인 이 마음자리를 크게 깨달아서 생사를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홉째, 생사일여(生死一如)입니다. 이 마음 자리를 분명히 깨닫고 또한 깨친 후의 공부를 완전히 마친 도인들은 다 생로병사에 자유자재 하였습니다. 병도 앓으려면 앓고 말라면 말며 죽는 것도 병으로 죽지 않고 이 육체 버리기를 옷 벗듯이 자유로이 합니다.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버리고 가며, 이야기하며 걸어가다가 벗어놓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열째, 입태일여(入胎一如)입니다. 비록 이 몸 버리기를 자유로 하여 생사일여가 되었다 할지라도 내생(來生)에 부모될 인연을 만났을 때에 문득 망상을 일으켜서 「생사일여」가 없어지고 태중의 피(血)덩어리가 되어서 생리(生理)에 묻히고 맙니다.

열한번째, 주태일여(住胎一如)입니다. 설사 입태할 때에 「일여」하였다 할지라도 태중에 있는 열 달 동안에 미혹하는 수도 있고, 태중 열 달 동안에 「일여」하였다 할지라도 출태(出胎)할 때에 깜박 잊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열두번째, 출태일여(出胎一如)입니다. 이 「출태」할 시에「일여」하면 영겁에 「일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세번째, 영겁일여(永劫一如)입니다. 이렇게 영겁에 「일여」하여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를 얻어서 성불하게 됩니다 .

이상과 같은 단계가 있으나 이러한 열세 가지 단계를 모두 밟아서 성불하는 것은 가장 참선하기 어려운 근기를 가진 사람이 하는 공부법 이거니와, 만약 정말로 여법하게 정진한다면 대한(大限)은 구순(九旬)이요 소한(小限)은 7일이라 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을 참구해도 안되기도 하지만 7일 만에 화두를 완전히 타파(打破)하고 당장에 「영겁일여」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열세 단계의 공부는 자신의 공부가 어느 단계에 있는가 살펴보면서 더욱 더 채찍을 가할 때 참고로 하면 좋을 것입니다.

 

용화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