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은 세 번 울며 날아가네
십 년을 단정히 앉아 마음의 성을 굳게 지키니
깊은 숲의 새는 길들여져 놀라지도 않는구나.
어젯밤 송담(松潭)에 비바람이 사납더니
고기는 연못 귀퉁이에 모여 있고 학은 세 번 울며 날아가네.
十年端坐擁心城 慣得深林鳥不驚
십년단좌옹심성 관득심림조불경
昨夜松潭風雨惡 魚生一角鶴三聲
작야송담풍우악 어생일각학삼성
- 청허휴정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 선사의 오도송이다. 한 때 우리나라 선원에서 그 해석하는 방법을 두고 시비가 분분했던 글이다. 선원에서는 객기에 불과한 법거량(法擧揚)이라도 있을 때가 좋다. 조실스님을 법상에서 끌어내리기도 하고, 설법을 하는 도중에 밑에 앉아서 할을 하기도 한다. 법문을 듣다가 문득 나가서 절을 하거나 주장자로 어떤 행위를 지어보이기도 하면서 대중들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그런 일이 보고 싶은데 요즘은 기백이 없는지 객기가 사라졌는지 전혀 없다.
앞의 두 구절은 별로 어렵지 않다. 십년 동안 정진하여 마음이 생각대로 잘 조복되었다. 새가 놀라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그 뜻이다. 어젯밤 송담에서 비바람이 사나웠다는 말은 경천동지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하였다. 문제는 마지막 구절이다. 고기가 뿔이 하나 났다고 해석한다. 상당한 명성을 날리다가 열반하신 어떤 조실스님도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고기가 한 뿔따구 나고 학이 세 번 울고 가더라.”라고 깨달음에 기특상(奇特想)을 부쳐 해석하였다.
그러나 반대의 의견은 위에서 해석한 대로 ‘깨달음에는 기특상이 붙으면 제대로 된 깨달음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비가 온 뒤에는 고기들은 당연히 못의 한 모퉁이에 모여 있고 날이 개니 학이 세 번 울고 간다고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평범한 것이며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무튼 서산 스님의 이 게송을 두고 선방에서 왈가왈부하던 그 시절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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