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명구·무비스님

근본을 깨닫다[達本]

通達無我法者 2008. 8. 13. 21:41

 

 

 

근본을 깨닫다[達本]

 

중도에서 공왕(空王)을 섬기지 말고

지팡이 짚고 고향에 돌아올지어다.

구름도 막히고 물도 막힌 시절에 그대는 머물지 말라.

눈 덮인 산 깊은 곳의 나는 바쁘지 않네.

슬프다. 떠나던 날에는 옥 같은 얼굴이더니

돌아올 때는 귀밑머리가 서릿발이 되었구나.

손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와도 아는 사람 없더니

이제는 한 물건도 존당에 바칠 것이 없네.

勿於中路事空王  策杖還須達本鄕

 물어중로사공왕    책장환수달본향

雲水隔時君莫住  雪山深處我非忙

 운수격시군막주    설산심처아비망

堪嗟去日顔如玉  卻歎廻時鬂似霜

 감차거일안여옥    각탄회시빈사상

撒手到家人不識  更無一物獻尊堂

 살수도가인불식    갱무일물헌존당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6

 

 

   불교공부란 그 어떤 기상천외의 특별한 수행을 하더라도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본래로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달아서 그것을 잘 쓰는 일이다. 불교공부를 한다는 것은 예전에 없던 것을 배우고 익혀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배우고 익혀서 나타내어 본들 그것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것은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의 차이인 것이다.

   불법은 무위법을 배우는 것이다. 무위법이란 없던 것을 새롭게 닦아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로 가지고 있던 것을 확인하여 누리는 일이다. 그래서 동안상찰(同安常察, ?~961) 선사의 십현담(十玄談)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존재를 깨닫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공왕(空王)이란 부처님을 뜻한다. 자신의 보물을 잊어버리고 쓸데없이 부처님이나 섬기는 일을 하지 말라. 그것은 본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이 갈 길을 잃고 중도에서 헤매는 것이다. 근본을 잊어버리고 바깥 사물을 쫓아가거나 다른 성인들을 섬긴다면 그것은 불교공부가 아니다. 부디 고향을 잊지 말고 돌아오도록 하라는 가르침이다.

   자신이 아닌 밖에서 진리를 찾는 것은 마치 나그네가 길을 가는데 구름도 첩첩이 쌓여 있고 강물도 수없이 막혀 있어서 돌아갈 길이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육도만행을 쌓으면서 3아승지겁 동안 팔만사천 가지의 번뇌를 끊고 온갖 공덕을 쌓아야만 부처의 경지에 오른다는 머나먼 길은 선택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와 같이 진부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동진출가(童眞出家)하여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수행을 하더라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십신(十信)과 십주(十住) 등의 온갖 수행계위를 다 밟아 올라가도 결국에는 출발하기 이전의 그 사람인 것이다.

   『법화경』「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는 이와 같은 어리석은 수행에 대해 오백명의 제자들이 부처님 앞에서 크게 뉘우치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있다. 소위 ‘옷 속 구슬의 비유’이다.

   “어떤 사람이 친구 집에 갔다가 술에 취하여 누워 자는데 친구는 관청의 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값으로 칠 수 없는 보배를 옷 속에 매달아 주고 갔다. 하지만 그는 술에 취해 자고 있었기에 전혀 알지 못하였다. 깨어난 뒤에 길을 떠난 그는 다른 지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생계를 위하여 돈을 버느라고 갖은 고생을 하였다. 그 후에 친구가 그를 다시 만나 이렇게 말하였다.

   ‘안타깝네, 이 사람아! 어찌하여 옷과 밥을 구하기 위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가. 내가 그 전에 자네가 편안하게 살면서 오욕락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도록 어느 해 어느 날 값으로 칠 수 없는 보배를 자네 옷 속에 매달아 주지 않았던가? 그 보배가 지금도 그대로 있는데 자네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이렇게 고생하면서 궁색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제라도 자네가 그것을 판다면 생활하는 데에 보족함이 없을 것이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 값으로 칠 수 없는 무가보란 모든 사람들이 이미 본래로 가지고 있는 성불의 경지며 열반의 경지며 깨달음의 경지이다. 그것은 알든 모르든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다. 이것이 근본 자리이다. 십현담에서는 사람 사람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 나면 아무 것도 더할 것이 없다는 최상승의 견해를 확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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