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명구·무비스님

높고 높은 기틀[玄機]

通達無我法者 2008. 8. 13. 22:13

 

 

 

높고 높은 기틀[玄機]

 

멀고 먼 공겁 이전부터 거두어드리지 못했는데

어찌 하찮은 근기에 매여 있겠는가.

미묘한 당체는 본래로 처소가 업거늘

두루 통한 그 몸이 어찌 그 자취가 있겠는가.

신령한 한 구절이 온갖 형상을 초월하여

삼승을 멀리 벗어나서 수행을 빌리지 않네.

천만 성인들 저 넘어까지 손을 놓아버리니

돌아오는 길에서 불 속의 소가 되었네.

迢迢空劫勿能收  豈與塵機作繫留

초초공겁물능수    기여진기작계류

妙體本來無處所  通身何更有蹤由

묘체본래무처소    통신하갱유종유

靈然一句超群像  出三乘不假修

영연일구초군상    형출삼승불가수

撒水那邊千聖外  廻程堪作火中牛

살수나변천성외    회정감작화중우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十玄談)」3

 

 

            

   선시(禪詩) 중에서도 승찬 스님의 신심명, 영가 스님의 증도가, 지공 화상의 대승찬은 3대 선시로 손꼽힌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당나라 말기 동안상찰(同安常察, ?~961) 선사의 십현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옛 조사스님들의 평생 살림살이가 무르녹아 있는 대표 선시들을 말대(末代)의 후곤(後昆)이 감히 그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용을 잘 음미해보면 종지의 핵심을 드러낸 고준한 솜씨에서 아무래도 십현담에 마음이 간다.

   ‘높고 높은 기틀[玄機]’이란 무엇인가. 기틀[機]은 본래 베틀을 움직이는 장치와 석궁(石弓)을 발사시키는 장치를 일컫는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여 발동되는 수행자의 정신적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의 대상인 중생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가에서 말하는 높고 높은 기틀[玄機]은 불교가 설명하는 궁극의 이치가 한 인간을 통해 인격화 되었을 때 나타나게 되는 능력을 뜻한다. 동안상찰 스님은 그러한 경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 기틀은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3아승지겁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하여 얻어지는  경지라고들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어쩌면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이 경과하거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이룰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하는 하근기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다. 높고 높은 기틀의 본체는 처음부터 어디 누구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은 온 우주 삼라만상 그 자체다. 삼라만상과 둘이 아닌 그 자체 그대로이기 때문에 달리 무슨 자취가 있거나 흔적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서 그가 내놓는 신령한 한 마디 말씀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어떤 유현한 이론과 기언(奇言) 묘구(妙句)도 미칠 수 없다. 임제의 할, 덕산의 방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구지 화상이 손가락을 세운 일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성문의 경지나 연각의 경지나 보살의 경지를 멀리 벗어나 우뚝하게 높이 있으며, 수행을 하느니 깨닫느니 증득하느니 하는 것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자리이다. 사실 배우고 수행을 하더라도 깨닫고 증득하는 것이 몇 푼어치가 되겠는가.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 가장 높고 가장 귀한 것이다.

   본래 완전무결한 것이야 말로 최상의 것이다. 기성(旣成)도 아닌 기존(旣存)의 것이다. 본래부터 이미 있던 것이 진실로 높고 높은 기틀이다. 그 자리는 천 부처 일만 성인들도 알지 못하고 바람 한 점 통할 수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