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32. 이리떼의 습격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11:19

 

 

이리떼의 습격

푸른 눈빛들은 반원형으로 달마를 에워쌌다

손에 작은 돌을 쥔 채
달마를 향해 환하게 웃는
소년 티가 남아있는 승려 

달마는 초조하고 불안했다.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입정에 들려고 했다. 모든 것을 잊으려 애썼다. 온종일 꼼짝도 않은 채 앉아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등골에선 여전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생각을 버리려고 하면서도 생각에 휘둘리는 꼴이었다.

어느덧 동굴 밖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달마는 ‘아미타불’을 큰 소리로 외치며 불쑥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허리를 바로 세우고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 아래 바위샘에 갈 생각이었다. 며칠 동안 굶은 창자를 풀과 나무뿌리로 채우고 샘물도 마시고 싶었다.

이미 태양은 서산을 넘어간 지 오래였다. 엷은 비단이 하늘부터 덮어 내려오듯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달마는 샘물이 솟는 바위를 내려다보며 깊은숨을 몰아 쉬었다. 등골의 식은땀은 찬바람에 온몸을 오싹하게 했다. 그는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좀처럼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깊게 숨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몇 걸음도 가지 않아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주변의 공기는 마치 비수처럼 그의 살갗을 후벼댔다. 달마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이십여 보쯤 떨어진 곳에서 한 쌍의 푸른 눈빛이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달마는 마음 속으로 깜짝 놀랐다. 신경을 곤두세워 푸른빛의 정체를 살폈다. 그것은 이리의 눈빛이었다. 늙은 이리 한 마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달마는 어릴 때부터 산천을 노닐었기 때문에 이리의 교활함과 탐욕스러움, 그리고 잔인함과 난폭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이쪽을 노리고 있는 폼으로 보아 늙은 이리를 다루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달마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갈 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날 것인가를 당장 결정해야 할 판이었다. 만약 뒤로 물러서서 동굴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늙은 이리는 얕잡아 보고 등 뒤로 덤벼들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서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리와의 대치 국면을 만들었다간 더욱 큰 위험에 빠질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대담하게 겁 없는 기세로 이리를 제압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인 듯싶었다. “고얀 놈.”
달마는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옷깃에 바람을 일으키며 당당하게 늙은 이리 앞으로 다가갔다. 이리는 꼬리를 감추며 한쪽으로 비켜 서면서 빤히 달마를 쳐다보았다. 달마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리를 지나쳤다.

그러나 이리가 비켜 섰다고 해서 포기하고 물러선 것이 아니었다. 달마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만약 이때 고개를 돌리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이리의 공격을 스스로 재촉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달마는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그대로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채 몇 발자국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갑자기 목 뒤에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이리가 날카로운 두 발로 달마의 양어깨를 막 공격하려는 찰나였다. 달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침착하게 대처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두 손으로 이리의 두 다리를 꽉 잡았다. 이리를 머리 위로 들어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늙은 이리는 바위 밑으로 ‘쿵’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 사지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뻗어 버렸다.

달마는 늙은 이리가 죽었다고 여겼다. 얼른 합장을 했다.

“업보로다, 업보. 아미타불.”
달마는 입으로 “아미타불”을 연호했다. 그러나 늙은 이리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몸을 한 바퀴 굴리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바위 위에 기어올라 강렬한 눈빛을 내뿜으며 짖어댔다.

“우-, 우-.”
달마는 깜짝 놀랐다. 이리의 울음소리는 자기 무리에게 구원을 청하는 소리였다. 이때 서둘러 피하지 않으면 이리떼에게 포위 당할 게 뻔했다. 달마는 무의식적으로 동굴 쪽을 바라보았다. 피할 곳이라곤 그 곳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곳이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동굴 속으로 피한다고 하더라도 이리떼가 몰려들면 막아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우-, 우-.”
달마가 머뭇거릴 틈도 없이 산언덕 이곳 저곳에서 번쩍 번쩍 푸른 불빛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푸른 눈빛들은 순식간에 반원형을 이루면서 달마를 에워싸고 조여들었다. 달마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몸을 날려 동굴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리떼들은 맹렬한 기세로 쫓아왔다. 달마는 동굴 안에서 반격의 자세를 취했다. 이리들이 덤벼들면 그 동안 익혀 온 무술로 막아낼 작정이었다. 이리떼들의 응원에 힘을 얻은 늙은 이리가 맨 먼저 뛰어들어왔다. 그런데 동굴 바로 앞에서 이리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달마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늙은 이리를 뒤쫓던 이리들도 동굴에 접근하자마자 땅 위에 나뒹굴기는 마찬가지였다. 달마는 기이하게 생각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리가 동굴 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휙-’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이리는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리떼들은 더 이상 동굴로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틈에 뿔뿔이 숲 속으로 흩어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동굴 밖은 갑자기 적막에 빠졌다. 달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동굴을 나와 사방을 살펴보았다. 동굴 옆에 우뚝 솟은 나무의 윗가지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승려 한 사람이 사뿐히 뛰어내렸다.

얼추 보아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손에 작은 돌을 쥔 채 달마를 향해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달마는 소년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승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본 듯했다. 그는 소림사의 문승(門僧)인 지인(智仁)이었다.

달마가 소림사에 오던 날, 주지 혜광에게 안내한 사람이 바로 지인이었다. 달마가 비록 볼썽사나운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지인은 범상치 않은 기풍을 첫 대면 때부터 느꼈다. 한데 혜광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뜻밖에도 달마는 사원에서 쫓겨났다. 지인은 매우 의아하게 여겼으나 감히 주지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지인은 사형(師兄)들이 쑤군거리며 주고받는 말을 주워 들으며 비로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다. 달마가 펼치려는 것이 대승선법이라서 혜광이 거부하고 내쳤다는 이야기였다. 소림사가 지키고 있는 소승선법과 대승선법은 마치 얼음과 숯처럼 서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들을 하고 있었다.

지인은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총명하고 사려가 깊었다. 그는 법문(法門)과 불지(佛地)가 본래 하나이고 자비로 널리 중생을 제도하는 데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선의 여러 문파가 생기고 서로를 공격하면서 범속으로 흐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달마가 내세우는 선이 설령 소림사의 그것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를 마치 큰 적을 대하듯 경계하고 내쫓은 일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지인의 마음엔 동정심이 계속 뭉게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동정심이 싹트기에 앞서 지인은 호기심 많은 젊은이였다. 달마가 산문을 나서자 몰래 뒤를 밟았다. 천축의 노승이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할 것인지 지켜볼 심산이었다.

그는 달마를 미행하면서 화룡굴에서 일어난 일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화룡이 굴을 떠나는 일대장관엔 다만 경이로울 뿐이었다. 한데 굴 속에 들어간 달마는 몇 날을 지켜보아도 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인은 달마의 정진하는 모습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호기심과 동정심은 어느덧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이 날도 지인은 저녁 무렵 화룡동굴을 찾아들었다. 탁발한 밥을 싸들고 왔다. 달마에게 드리고 그를 스승으로 삼아 대승선법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다. 동굴 입구에 다다르는 순간 그는 달마가 이리와 대치중인 것을 목격했다. 곧 이어 이리와의 격투가 벌어지고 이리떼에게 포위 당하자 달마는 굴 속으로 피신했다.

지인은 마음이 급했다. 탁발을 내려놓고 잽싸게 작은 돌멩이들을 주워 모아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는 동굴 앞으로 달려드는 이리에게 차례로 돌팔매질을 했다. 백발백중이었다. 이리는 예외 없이 끽소리도 못하고 죽었다. 달마는 뜻밖의 응원자로 말미암아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달마는 아무래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소림사의 문승이 이 곳에 왔으며 무슨 신기(神技)로 이리떼를 죽였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달마는 합장하며 예의부터 갖추었다.

“구해 주어서 정말 감사하오. 아미타불.”
지인은 너무나 황공해서 털썩 땅 위에 꿇어앉아 연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조사께서 이렇게 지나친 예로 대해 주시니 소승은 황송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달마는 곧바로 지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일어나시오. 어서 일어나시오.”

지인은 몸을 일으키자 서둘러 숲 속으로 달려갔다. 감춰 두었던 탁발한 밥을 찾아내어 달마에게 두 손으로 바쳤다.

“이것은 소승이 탁발한 밥입니다. 소승의 작은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달마는 탁발을 받아 들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머릿속에선 광주 법성사의 광지, 금릉사의 통미, 낙양 영령사의 자광 그리고 눈앞의 소림사 문승 지인이 겹겹이 아른거렸다. 천하의 승려들 가운데는 공부가 깊고 자비로운 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록 소림사의 행자승이긴 하지만 지인의 몸에서 달마는 대승선법의 진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다시 소림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샘솟았다. 달마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사부와 같은 이런 자비로움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오. 오히려 노납이 부끄럽소.”지인은 달마의 참마음을 알 것 같았다.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조사께서 전심전력으로 면벽 좌선하시는 모습은 저희 불문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소승이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것을 어여삐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변변치 못하지만 저의 성의이오니 이 밥을 받으시지요. 소승은 동굴 밖에 있는 죽은 이리들을 저 아래 깊은 골짜기에 치우고 오겠습니다. 그 동안 천천히 드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