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29. 모든 승려들이 도열하여 달마를 영접했다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8:38

 

 

모든 승려들이 도열하여 달마를 영접했다

소림사와의 인연



소승과 自利에 안주 중생 제도 못하는 현실 못내 안타까웠다

소림사는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 태화(太和) 19년(단기 2828년, 서기 495년)에 창건됐다. 중원 땅을 밟은 천축의 승려는 달마가 처음은 아니다. 이보다 훨씬 앞선 인물이 발타 대사고, 소림사는 바로 그 발타 대사가 개창한 절이다.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효문제는 발타 대사에게 ‘사념처(四念處)’와 ‘오정심관(五停心觀)’을 배웠다고 한다. 발타 대사가 가르친 ‘사념처’란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의 네 가지가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임을 항상 염(念)하고 잊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정심관’이란 부정관(不淨觀) 자비관(慈悲觀) 인연관(因緣觀) 계차별관(界差別觀) 출입식관(出入息觀)을 이르는 것이다.

‘사념처’와 ‘오정심관’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발타 선법(禪法)은 당시 중원에서 크게 성행했고 제자 혜광(慧光)과 승조(僧稠)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발타 대사의 가르침에 감복한 효문제는 일대 불사(佛事)를 일으켜 큰 절을 짓게 했다. 절이 완공되자 발타 대사는 효문제에게 절 이름을 지어 하사해 줄 것을 간청했다. 효문제는 흔쾌히 승낙했다.

발타선법 중원서 성행

“이 절이 위치한 곳이 소실산이요, 절 앞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으니 수풀 림(林)자를 붙여 소림사라고 하는 게 어떻소.”소림사란 이름은 이렇게 해서 붙여진 것이다.

발타 대사가 주석한 소림사에는 자연히 수많은 승려들이 몰려들었다. 가히 소승불교의 본고장이라 불릴 만했다. 그 많은 승려들 중에서도 혜광과 승조는 단연 출중했다. 발타 대사는 차츰 절 안의 일을 두 제자에게 맡기다시피 했고, 마침내 모든 것을 위임했다. 발타 대사는 제자들에게 나들이 삼아 잠시 산천구경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그러나 끝내 돌아오지 않고 행방이 묘연했다. 다만 서천(西天)으로 돌아가서 부처님께 귀의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발타 대사가 떠난 후 소림사의 주지는 혜광이 맡았다. 그는 승조와 힘을 합쳐 스승의 선법을 펴는 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소림사의 법맥은 날이 갈수록 세를 떨쳤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어느 새 몇 년이 훌쩍 지났다.

이 날도 주지 혜광은 소림사의 본당에서 법회를 주재하고 있었다. 법당 안은 전에 없이 열띤 분위기였다. 여러 승려들은 자신의 수행 체험을 바탕으로 서로 주장과 논박을 펴면서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주지 혜광은 이런 분위기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권장해 마지않았다. 한창 법당 안이 떠들썩할 즈음 행자승 지인(智仁)이 총총걸음으로 법당에 들어왔다. 혜광 앞으로 다가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지 스님께 아룁니다. 문 밖에 천축 스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스스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28대 수법조사(受法祖師)라고 하며, 법명은 보리달마라고 합니다. 주지 스님을 뵙자고 청하십니다.”이 말을 들은 혜광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구쳐 올랐다. 그는 이미 천축의 큰스승인 달마가 이 땅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광주의 법성사에서 불법을 편 이야기뿐만 아니라 양 무제의 부름으로 금릉으로 가서 논쟁한 일까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금릉을 떠난 이후로는 머무는 곳을 알 수 없어 안타까워했던 터였다.

그 동안 혜광은 기회 있을 때마다 달마가 묵고 있을 만한 사찰을 수소문해 보았다. 있는 곳이 확인되면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올리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조사를 소림사로 모셔 오고 싶어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달마 조사께서 몸소 찾아오셨다니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혜광은 기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지인에게 다짐받듯 물었다.

“정말 천축의 조사이신 달마라고 하시더냐?”
“소승이 어찌 감히 주지 스님께 망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 천축의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해 올렸을 뿐입니다. 다만 28대 조사이신지 아닌지에 대해서는…”혜광은 더 이상 지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천축의 승려라면 달마 조사가 틀림없다고 단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서둘러 일어섰다. 즉시 법회를 중단하고 법당문을 활짝 열게 했다. 그 곳에 있는 승려들에게 모두 나가서 환영하도록 일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순식간에 소림사가 떠들썩해졌다. 종소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모든 승려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하여 달마를 영접했다.

달마는 예상치 못한 영접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여간 기쁘지 않았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 곳에서 이토록 융숭하게 예우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달마는 환영하는 승려들을 웃음으로 대하면서 합장한 자세로 몸을 굽혀 예를 표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주지 혜광이 한 발 먼저 달마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말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대사께서는 달마 조사가 틀림없으신지요?”
달마는 그 말을 듣자 웃음을 거두었다. 이미 행자승에게 그렇게 알렸거늘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란 말인가? 달마는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믿지 않으시는 모양이군요?”
이번엔 주지 혜광이 당황했다. 황송하다는 듯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목소리조차 떨렸다.

“어찌 소승이 감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께서 오시는 줄도 모르고 멀리 나가 영접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그제야 달마는 빙긋이 웃었다.

“이 몸은 끌리거나 매임이 없소이다. 사해(四海)가 모두 공(空)한데 주지는 하필 그런 속세에서나 하는 말을 하시오. 자, 어서 일어나시오.”달마는 양 팔을 벌려 주지 혜광을 일으켜 세웠다. 혜광은 기골이 장대한 달마를 우러러보았다. 짙은 눈썹에, 방울같이 생긴 큰 눈에서는 신비로운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우뚝 솟은 콧날에 딱 벌어진 입술, 총총히 자란 수염에 어깨까지 늘어진 귀(耳), 어느 것 하나 할 것 없이 조사의 상(相)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다만 달마가 입고 있는 법의는 너무나 남루하고 지저분했다. 군데군데 살갗이 보이고 옷 전체가 먼지와 때로 덮여 있었다. 혜광은 달마 조사가 얼마나 힘들게 먼 길을 찾아왔는지를 알 것 같았다. 혜광은 가슴이 뭉클했다. 곧 합장하며 말했다.

“조사께서 저희 절에 왕림하여 주시니 영광입니다. 정말로 법연(法緣)과 불과(佛果)가 있는 것 같아 감개무량합니다. 진심으로 청하오니 안으로 드셔서 천천히 말씀을 하시지요.”달마는 사양하지 않았다. 주지가 안내하는 대로 성큼성큼 발길을 옮겼다. 주지의 처소에 이르는 길에도 많은 승려들이 줄을 서서 환영 인사를 했다. 달마는 일일이 합장으로 답례했다.

주지 혜광은 온 정성을 기울여 달마 조사를 모셨다. 가장 좋은 차를 올리고 잠시 쉬시도록 했다. 주위는 조용했고 방 안에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달마와 혜광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불법(佛法)과 선기(禪機)로 이어졌다.

혜광이 물었다.

“조사께 여쭙겠습니다. 불법에서는 무엇을 최고로 치는지요?”
달마는 질문을 받고 마음 속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질문은 구태여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혜광이 어떤 속셈을 숨기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달마는 속셈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제대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이야말로 올바른 선법(禪法)을 선양할 때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교화하는 불법이 으뜸이지요. 모든 지파(支派)를 빠짐없이 계도하여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승불법보다 수승한 것은없소이다.”혜광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소승불법을 최고로 믿고 있는 그에게 대승불법의 우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혜광의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천축의 조사가 대승일파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혜광은 감정을 억제하고 달마에게 물었다.

“여쭙겠습니다. 조사께서는 대승불법이 제일 높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 아셨습니까?”달마는 빙그레 웃었다.

“도(道)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요약하면 ‘이(理)’와 ‘행(行)’일 뿐이오.”“무엇을 ‘이’라 하고 무엇을 ‘행’이라고 합니까?”
“내 설명해 드리리다. ‘이’라는 것은 이입(理入)을 말하는 것이고 ‘행’이라는 것은 행입(行入)을 말하는 것이오. 그것은 이론으로서의 경전 공부와 실천으로서의 수행,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이외다.”혜광은 달마가 말하는 ‘이입’과 ‘행입’이 실제로 대승불교의 선학(禪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선학이 팔불(八不), 즉 태어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不生亦不滅). 한결 같은 것도 아니며 또한 서로 다른 것도 아니다(不一亦不異). 오는 것도 아니요 또한 가는 것도 아니다(不來亦不去)라는 여덟 가지의 ‘아니다’로 시작해서 세상의 일체만물은 모두 인연의 가상(假相)일 뿐 공(空)이라는 이른바 일체개공(一切皆空)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대승선법은 소림사에서 탐구하는 발타 대사의 소승선법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당시의 불가에서 대승과 소승은 숯과 얼음, 또는 물과 불처럼 서로 어그러지고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혜광의 얼굴색 변했다

혜광은 한동안 말을 잊었다.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만약 승조를 비롯한 절 안의 승려들이 달마가 대승일파인 것을 안다면 절대로 절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달마를 받아들인 자신의 위상(位相)조차 흔들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천축의 조사라고 할지라도 먼저 쫓아내어 후환을 없애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을 굳힌 혜광은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조사께서는 빈승의 직언을 용서하십시오. 방금 선양하신 대승교파의 선견(禪見)은 저희 절의 소승교파의 그것과 서로 편안하게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청하옵건데 다른 곳으로 찾아가서 의지하시지요.”달마는 혜광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두 그루의 나무가 우뚝 솟은 이 곳이 법연의 땅임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달마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그의 충격은 금새 분노로 변했다. 그러나 이처럼 번창하고 있는 소림사가 여전히 소승과 자리(自利)에 안주하여 이타(利他)로 나아가 중생을 널리 제도하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달마는 갑자기 첩첩 산중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혜광의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