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52. 선(禪)의 기밀(機密)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21:22

 

 

선(禪)의 기밀(機密)

“그대는 하늘의 이치를 알고 있단 말이오?”

‘공연히 제자로 삼겠다고
절까지 받았으니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꼬’



이미 150세가 넘은 달마가 나이 어린 종횡을 스승으로 삼고 마주 앉은 모습은 보기에도 딱했다. 하지만 달마는 종횡이 요구하는 대로 구배(九拜)의 큰절까지 올렸다. 격식이 갖추어졌으므로 가르침을 청하는 게 순서였다.

“스승님께 우선 불법(佛法)의 도리(道理)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분명히 밝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종횡은 득의만면(得意滿面)해서 대답했다.

“내가 그대를 제자로 삼기로 한 것은 그대의 얼굴을 중의 얼굴로 보지 않고 부처의 얼굴로 보았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밝혀 그대에게 전해 줄 것이오. 나는 일찍이 도문(道門)에 입문하여 도조(道祖)의 도법을 배우고 익혀 왔소. 삼청오행(三淸五行)을 마음과 몸으로 닦아 왔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대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된 처지이니 삼귀오계(三歸五戒)부터 배워야 할 것이오. 내가 전하는 것은 진전(眞傳)이니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어찌 스승님의 진전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삼귀오계의 가르침을 반드시 지키고 따르겠나이다.”“좋소. 그러면 우선 삼귀를 받고 다음에 오계를 전수받도록 하시오. 불(佛)에 귀의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법(法)에 귀의하면 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승(僧)에 귀의하면 윤회에 떨어지지 않으며 법륜(法輪)은 상전(常轉)하는 것이오. 이제 그대는 공삼천(功三千) 과팔백(果八百)이 가득 찬 법을 전수받았소. 그리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시오.”하지만 종횡의 자신만만한 언동(言動)에 찬물이라도 끼얹듯 달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자는 이 자리에서 그냥 일어설 수는 없습니다.”

“일어설 수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종횡은 불쾌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제자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디 자세히 밝혀 가르쳐 주시기 바라나이다.”“나는 이미 그대에게 분명히 가르침을 주었거늘, 무엇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오?”“제자는 남천축 고향에 있을 때도 삼보(三寶)에 귀의했었습니다. 한데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과 제자가 배웠던 것은 비록 글자는 같지만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당혹스럽습니다.”“그래? 그렇다면 그대가 고향에서 배운 삼보귀의가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종횡은 인상을 찌푸리며 달마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달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나의 고향에서는 귀의불(歸依佛)이라고 하면 삼심(三心)을 바로잡고 육욕(六慾)을 깨끗이 쓸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늘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진성(眞性)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을 귀의불이라고 합니다.”정곡을 찌르는 달마의 설명에 종횡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법에 귀의한다는 뜻도 그대가 배운 대로 설명해 보시오.”“그러지요.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행하지도 않으며, 몸으로는 뜻밖의 행동을 하지 않으며, 입으로는 가식이 있는 말을 하지 않아 말마다 도리에 벗어나지 아니 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모범이 되고 모든 이치에 어긋남이 없음으로써 나라의 법에도 저촉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귀의법(歸依法)이라고 합니다.”종횡은 설명을 계속하라는 몸짓을 했다.

“귀의승에 대해서는 일신(一身)을 청정하게 하여 삼계(三界)를 초출(超出)함으로써 법신(法身)이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어머니 태(胎) 안에 있을 때는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했는가. 그리고 태어날 때는 어디서 와서 죽을 때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생사의 문호(門戶)와 길을 알고 청정법신이 있는 곳을 분명히 밝혀 내어 항상 자재(自在)하고 멸(滅)하지 않는 것이 귀의승이라고 했습니다.”말을 마친 달마는 은근히 종횡의 표정을 살폈다. 종횡의 얼굴엔 감격의 파동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번엔 달마가 종횡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스승님께서는 법륜이 상전(常轉)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법륜을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아침엔 3천 번 소리 내어 염불하고 저녁에는 소리 없이 3천 번 염불하면 법륜이 돌게 될 것이오.”대답은 이렇게 하면서도 이미 자신감을 잃어버린 종횡의 목소리엔 힘이 빠져 있었다. 반면 달마는 힘찬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만약 염불에 색(色)이 있고 소리(聲)가 있다면 그것은 청정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염불이 어찌 도(道)에 합당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법륜이 항상 돈다는 것은 염불을 하지 않고도 저절로 돈다는 뜻이 아닙니까? 내가 알기로 이것은 단전(單傳)으로 깨달음을 얻어 진규(眞竅)에 심인(心印)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감히 제가 배운 가르침의 요지를 말씀드리면, 허무(虛無)의 한 구멍에서 맑은 기운이 운반되어 오작교(烏鵲橋)로 올라 중루(重樓)로 내려오고 강궁(絳宮)을 경유(經由)하여 단방(丹房)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그 기운이 방촌(方寸)으로 흘러가고 이어 미려관(尾閭關)으로 들어갑니다. 미려관에서 협척(夾脊)을 통과하여 옥침관(玉枕關)에 이르게 됩니다. 옥침관에서 통천(通天)으로 통하게 되며 통천에서 칠보(七寶)로, 칠보에서 보장(寶藏)으로 들게 됩니다. 그리고 보장에서 철고(鐵鼓)를 뚫고 나가고 철고에서 다시 수미산(須彌山)으로 통하고 수미에서 산림(山林)으로, 산림에서 영산(靈山)으로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산에 있는 팔괘(八卦)의 감리(坎離)에 이르면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문을 만나게 됩니다. 무봉(無縫)의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이 법문은 오직 한 개의 열쇠로만 열립니다. 그 열쇠는 바로 허무현관의 일규가 열려야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 곳이 열리면 자유자재로 천태(天台)에 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법륜이 상전하는 것입니다.”달마의 고답적인 묘론(妙論)에 종횡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설명은 일찍이 들어본 적조차 없었기에 충격이 너무나 컸다. 종횡은 마른 침을 삼키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거 큰일 났는걸. 내가 당초에 늙은 중 보고 일규불통(一竅不通)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어. 이 중의 오장육부 속에는 진짜 보배가 들어 있는 게 틀림없어. 이렇게 도리를 잘 알고 마음조차 맑고 밝은 것을 보면 틀림없이 크게 깨달은 사람같아. 내가 눈이 어두워 사람을 잘못 보고 큰 실수를 했으니 이제 어떻게 한다? 공연히 제자로 삼겠다고 절까지 받았으니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꼬?’종횡은 속으로 크게 후회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습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짐짓 태연한 척 목소리에 힘을 실으면서 달마 쪽으로 다가갔다.

“제자는 이제 일어서시오.”
종횡은 달마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나 달마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왜 일어설 수가 없다는 것이오?”
달마는 근엄한 목소리로 이유를 설명했다.

“저는 스승님께 정법(正法)을 전수해 주시기를 소원했었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가르침을 내려주시옵소서. 저는 어떻게 해서라도 알고싶은 것이 꼭 하나 있습니다.”“그대가 알고싶어 하는 것을 말해 보시오.”

“스승님께 묻겠습니다. 이 곳에 하늘(天)은 몇 개나 있습니까?”

“혼원일기(混元一氣)이래 오직 하나의 하늘밖에 없소.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오?”“저는 일찍이 사람에겐 누구나 하늘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사람일지라도 다 하나의 하늘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나는 그런 하늘을 인정하지 않소!”

“그런 하늘이 없다면 어떻게 하늘의 이치에 합치할 수 있으며, 나아가 바른 수도(修道)를 마칠 수 있겠습니까?”달마의 이 말에 종횡은 버럭 화를 냈다.

“그렇다면 그대는 하늘의 이치를 알고 있단 말이오? 안다면 당장 말해 보시오.”달마는 한참 뜸을 들인 다음 종횡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스승님께서 물으시니 설명하겠습니다. 옛날부터 불법을 가볍게 누설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선(禪)의 기밀(機密)은 함부로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스승님을 위해 청향(淸香)을 피우고 설명하려고 하니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종횡은 머쓱해 했다. 그러나 달마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하늘(天)을 일컬어 일대천(一大天)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사람(人)을 일소천(一小天)이라고 합니다. 하늘에는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별자리가 있고, 사람에게는 팔만사천의 털구멍이 있습니다. 하늘은 삼백육십일을 셈하여 1년으로 삼습니다. 사람은 그에 부합하여 삼백육십의 골절(骨節)이 있고 이것을 일컬어 일주천(一周天)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이십사 구비(二十四 折)가 있으며 음양으로 본명(本命)을 이룹니다. 하늘에 십팔도(十八度)가 있고, 사람의 소장(小腸)은 십팔구비가 있으며 십팔중지옥(十八重地獄)으로 안배됩니다. 하늘에 십이원(十二元)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인후(咽喉)에는 십이 마디(十二候)가 있습니다. 그래서 1년을 12개월로 안배하고 있으며 인후를 일컬어 중루(重樓)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오두육성(五斗六星)이 있듯 사람에게는 오장육부가 있습니다.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하늘의 오방(五方)에 안배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대장, 소장, 방광, 담( ), 신(腎)이 있고 이를 오후(五侯)라고 부릅니다.

하늘에는 동두(東斗)가 있어 서두(西斗)에 이르기까지 팔만사천 유순(由旬)이 있으며, 남두(南斗)에서 북두(北斗)까지는 십만구천오백 유순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단전(丹田)이 있으며 왼쪽을 정해(精海), 오른쪽을 기해(氣海)하고 합니다. 미려관을 혈해(血海)라고 부르며 천조혈(天潮穴)을 골수해(骨髓海)라 부릅니다. 통틀어서 사해(四海)라고 하지요. 동해(東海)에서 서해(西海)까지에는 팔만사천 혈문(穴門)이 있고, 남해(南海)에서 북해(北海) 사이에는 일만구천오백 혈문이 있습니다.”달마의 청산유수 같은 설법에 종횡은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숙였다. 달마는 종횡의 얼굴에서 잠시도 눈길을 떼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