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53. 종횡(宗橫)의 개종(改宗)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21:23

 

 

종횡(宗橫)의 개종(改宗)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종횡은 십팔배를 올렸다.



달마는 종횡에게 이른바 천인일리(天人一理)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다. 하늘과 사람이 하나의 이치 속에 있다는 풀이에 종횡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 태양(太陽), 태음(太陰)의 두 신(二神)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정(精), 기(氣)의 두 신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두 눈(二目)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왼쪽 눈은 해에 해당하고 오른쪽 눈은 달에 해당합니다. 하늘의 태음, 태양은 빛으로 천하를 비추고 하루 낮 하룻밤에 1만3천5백 도(度)를 달립니다. 사람도 그에 맞춰 하루 낮 하룻밤에 1만3천5백 번의 숨쉬기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숨쉬기에 조그만 잘못이라도 있게 되면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만나게 됩니다.”달마는 잠시 말을 멈추고 종횡에게 물었다.

“사부께서는 많은 경전을 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뇌조경(雷祖經)>에 쓰여 있는 ‘신중(身中)의 구령(九靈)’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체투지 자세로 애원
종횡은 그 질문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무지함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선 참스승을 만났다는 기쁨이 꿈틀거렸다. 종횡은 그 자리에서 달마 앞으로 나아가 꿇어 엎드렸다. 이어서 구배(九拜)의 예(禮)를 두 번씩, 십팔배(十八拜)의 큰절을 올렸다.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종횡이 십팔배를 올린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그가 달마에게 구배를 요구했던 것의 두 배에 해당하는 배례(拜禮)이다. 종횡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저는 여태까지 잘못된 방문(旁門)에 빠져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비록 눈은 있었지만 눈동자가 바로 박히지 않아 바른 이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스승님이야말로 참 나한(眞羅漢)이신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스승님께서 무슨 까닭으로 홍진(紅塵)에 내려오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디 저를 제자로 삼으시어 삼계를 벗어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도교에서 불교로 귀의하고자 하오니 고해침륜(苦海沈淪)에서 구해 주시옵소서.”그러나 달마의 대답은 뜻밖에도 쌀쌀했다.

“나는 애당초 당신을 스승으로 삼아 배례까지 했소이다. 그런데 내 어찌 이제 와 당신을 제자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종횡은 당황해서 몸둘 바를 몰라 했다. 고개를 조아리며 거듭 읍소했다.

“스승님이시여, 저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비록 도가(道家)에 입문하기는 했지만 진전(眞傳)을 얻지는 못했나이다. 이제 신묘한 스승님의 법어(法語)를 들으니 막혔던 가슴이 절로 열리는 것 같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고 망언을 일삼은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시옵소서.”종횡은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자세로 달마 앞에 엎드려 애원했다. 그러나 달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오직 들리는 것은 종횡의 흐느낌 소리뿐이었다.

이윽고 달마가 말문을 열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어리석은 인간은 천리 길을 헤매고 다니지만, 그런 인간도 깨달으면 바로 한 구멍의 뿌리로 돌아간다고 했소이다. 그대는 이제 도교를 떠나 불교로 들어와 나를 스승으로 삼고자 하고 있소. 그대의 자세나 식견으로 미뤄 그 마음가짐이 대견스럽소이다. 그대의 원을 받아들이고자 하오.”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종횡은 달마 앞에 예를 올렸다.

“저를 제자로 받아 주셔서 감사하나이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동시에 스승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데 있어 추호도 어그러짐이 없도록 할 것을 다짐하나이다. 부디 제자가 탁(濁)을 벗어나 청(淸)을 찾고 자성(自性)의 법을 밝혀 하차(河車)를 운전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내려 주시옵소서.”

‘종횡’을 ‘종정’으로 바꿔
“좋소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문제(門弟)가 되기에 부끄럼이 없소이다. 이제 그대의 이름 ‘종횡’을 ‘종정(宗正)’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시오. 본래 종(宗)이라는 글자에는 매우 깊은 뜻이 담겨 있소. 조가근원(祖家根源)의 종주(宗主)란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오. 그러나 횡(橫)이라는 글자는 조금 문제가 있소. 그것은 그대가 삿된 길로 빠져 횡행(橫行)한다는 뜻과도 통하오. 수도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진정(眞正)한 구전묘결(口傳妙訣)을 받지 않고는 법문에 들 수 없는 법이외다. 이제 그대의 이름을 바를 정(正)자를 넣어 종정(宗正)으로 개명(改名)하니, 이는 선천(先天)의 바른 이치를 밝히고 정법(正法)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오.”종정은 새로운 법명(法名)에 담긴 뜻을 마음 속에 새기며 스승 달마를 하늘처럼 떠받들었다. 달마가 천성사에 주석한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더군다나 도교의 스승인 종횡이 개종(改宗)하여 달마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천성사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많은 승려들이 찾아들었고, 예불하려는 중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웅보전은 향불 연기로 가득 찼고, 곳곳에 밝혀진 촛불은 천성사의 옛 영화를 재현시키는 듯싶었다.

이날도 달마는 여러 스님들과 더불어 아침 공부를 마친 다음 산문을 나섰다. 뒷산에 올라 팔다리를 움직이고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는 도인법(導引法)을 연마하는 것은 하나의 일과(日課)였다. 한데 이날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늘 하던 도인법도 거른 채 정상에 서서 불계(佛界)와 속계(俗界)의 여러 모습들을 헤아렸다. 천성사에도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곳을 떠나 가야할 곳을 머리 속에 그려 보았다.

어슴푸레하게 깔린 안개를 뚫고 말발굽 소리와 요령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필시 누군가가 찾아온 것 같았다. 달마는 그 사람의 환영(幻影)이 시커먼 그림자가 되어 자신을 덮쳐 오고 있음을 느꼈다. 누구일까?얼마 되지 않아 동자승이 황급하게 뛰어올라왔다. 달마에게 몸을 굽혀 절을 하며 말했다.

“조사님께 아룁니다. 조정의 고승인 유지삼장(流支三藏) 법사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달마는 그답지 않게 ‘아-’하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유지삼장’이라는 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유지삼장 법사가 누구인가. 그는 위(魏) 문제(文帝)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당대의 고승이다. 선법과 불경에도 밝아 그를 따르는 제자가 적지 않았다. 위(魏)의 효명제(孝明帝) 또한 그를 제왕과 동격으로 예우했다. 나들이할 때는 보마향차(寶馬香車)를 대령케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유지삼장은 도량이 매우 적은 위인이었다. 자기보다 빼어난 사람을 인정할 줄 몰랐다. 달마는 일찍이 그를 만난 일이 있어 그의 성품을 꿰뚫고 있었다. 서둘러 산을 내려간 달마는 정중한 예의를 갖추어 유지삼장을 맞아들였다. 조사의 방으로 안내하여 상좌에 좌정케 한 다음 최고급의 차를 대접했다. 애써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려고 했다.

“대법사께서 이런 누추한 절에 왕림하셨는데 멀리까지 나아가 모시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유지삼장은 오만한 자세로 턱을 쳐들고 응수했다.

“속담에 이르기를 모르고 한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하였소. 몰랐다고 하는데 내가 어찌 당신에게 죄를 돌릴 수 있겠소이까.”달마는 공손하게 합장하며 읍을 했다. 유지삼장에게 들리도록 “자비로다, 자비로다” 하며 뇌까렸다.

유지삼장은 마치 태도를 표변하듯 큰소리로 웃어제기며 말했다.

“대화상께서는 천축의 조사이시고 선종의 비조(鼻祖)가 아니십니까? 어찌 몸을 굽혀 이처럼 황량한 절에 계십니까? 정말 어려운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달마는 손을 내저었다.

“대법사의 말씀에 오직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출가한 사람으로서 어찌 환경의 좋고 나쁨을 따지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되지요.”달마의 말에 유지삼장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여기 온 것은 달마와 무엇을 토론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달마의 영적인 근기나 깨달음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유지삼장은 궁중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앞세워 달마를 굴복시킴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명성을 한껏 드높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만약 달마와 더불어 이런 식으로 담론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유지삼장은 이미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달마를 향하여 냉소를 보냈다. “아무튼 큰스님의 명성이 멀리까지 자자하니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내가 이번에 찾아온 것은 첫째 경의를 표하고자 하는 것이고 둘째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말을 마친 유지삼장은 달마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품속에서 한 봉지의 차를 꺼내 달마에게 바쳤다. 너무나 갑작스런 행동에 달마는 당황했다.

“내가 어찌 대법사님의 선물까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실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기꺼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양하지 마십시오.”
달마가 받기를 망설이자 유지삼장은 차 봉지를 달마의 경상 위에 올려놓았다. 달마는 어쩔 수 없이 감사의 뜻을 목례로 표했다. 유지삼장은 곧장 몸을 일으켜 방문을 나섰다. 달마는 유지삼장을 산문 밖까지 전송했다. 유지삼장이 탄 수레는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질풍같이 자취를 감췄다.

유지삼장 법사의 방문
유지삼장의 갑작스런 방문에 천상사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의 패악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승려들은 모두 달마를 염려했다.

“나무가 크면 바람 잘 날이 없는 법이지.”
달마의 입에선 탄식이 흘러 나왔다. 사실 천성사를 찾아들었을 때만 해도 달마의 본래 생각은 조용히 공부에만 전념하는 것이었다. 동녘 땅에서의 말년을 조용하게 마감하고 혼이라도 서쪽을 찾아가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그러나 인연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비록 어렵고 괴로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몸과 마음을 바쳐 잘 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천성사의 승려들은 이구동성으로 유지삼장을 피하여 예측할 수 없는 경우를 당하지 않도록 대비하시라고 달마에게 권했다. 그러나 달마는 그런 권고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천성사는 노납이 말년을 마칠 절이오. 어째서 그를 피해야 한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