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금강경 음미에 어울리는 차시 해설

通達無我法者 2008. 9. 24. 23:51

 

 

번뇌 티끌 붙을 곳 없는데 닦을 일 있나
 
참됨 거짓 이름 모두 근원 없는데
빼어남-모자람 누가 헤아리리요

밑없는 발우에 향기로운 음식 수북하고
귀뿌리 없는 귀로 말없는 설법 듣네


<사진설명>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설했던 설법 터가 남아 있는 슈라바스티의 기원정사 전경.

금강경 강의가 개시되고 어느덧 차 잎 따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오늘은 금강경 음미를 위해 제가 여러분께 차시(茶詩)를 공양 올립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여왕 때 중국의 차가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운 선생이 지은 쌍계사의 진감선사 비문에도 차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1300년 전 여섯 임금의 스승이셨던 진감선사가 쌍계사에 머무르시던 때, 중국의 승려들이 종종 진감선사를 방문하면서 차 공양을 많이 올렸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차를 법제하여 유통한 게 아니고 그냥 차 잎을 딴 채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가져왔나 봅니다. 그 차 잎을 잘 덖어 법제하고 알맞은 온도의 맑은 물에 우려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진감선사는 그냥 솥에다 넣고 삶아서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스님들이 ‘그 귀한 차를 왜 법제해서 마시지 않고 나물처럼 삶아서 드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진감선사는 그 때 ‘濡腹而已’라고 답하셨습니다.

창자만 적시면 족하지 다도(茶道)에 대해 따질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최치원은 진감국사 비문에다가 진감국사의 이런 모습에 대해 ‘수진-곡(守眞忤俗)’(진솔한 것을 지키고 세속의 흐름을 거스른다.) 이라고 평했습니다. 진감국사 비문으로 미루어보건대 신라 말에는 이미 차 문화가 깊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으며, 또 진감선사는 불교의식이나 다도에 대한 겉치레에서 탈피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를 거쳐 고려까지 이어졌던 차 문화는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쇠퇴했다가 구한말에 이르러 초의선사에 의해 다시 부흥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초의선사는 ‘차(茶)와 참선(參禪)은 일여(一如)하다’ 하여 다산선생과 추사와의 교분을 두터이하면서 차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많습니다. 특히 추사는 초의선사와의 교분에 영향을 받아 제주도 귀양살이에서도 수행이 익었고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휘호도 많이 남겼습니다.


禪詩 맛보기

1) 六月飛霜雪 渾身冷似鐵

유월에 날리는 눈서리에 온몸이 차갑기 쇠붙이 같은데
聲搖洞壑心 色奪虛空骨
소리는 계곡의 심장을 흔들고 빛깔은 허공의 뼈를 앗았네.

- 서산대사 -

<보충설명> 쌍계사에 남아있는 서산스님의 유명한 시입니다. 시원하고 차가운 폭포의 분위기는 그대로 번뇌가 모두 사라진 분위기입니다. 오뉴월 더운 날씨에 차를 마시고 쌍계사 위 에 있는 불일폭포에 올라가 보면 폭포의 비말(飛沫)이 마치 서리와 눈이 흩날리는 것 같고 온몸은 쇠붙이처럼 차가워집니다. 불일보조국사가 지은 불일암이 있었기에 불일폭포라는 이름을 갖게된 이 폭포의 소리와 빛깔은 그대로 금강경과 하나입니다. 계곡을 울리며 떨어지는 물소리는 모든 소리를 다 삼킨 금강경의 원음이고, 허공(無)의 뼈(有)를 다 빼앗아 오로지 폭포의 빛깔만 남은 그 모습은 바로 텅 비운 금강경 모습입니다.

2) 沾衣欲濕杏花雨 吹面不寒楊柳風 (송나라, 문창스님)
옷을 적시려면 살구꽃에 내려앉은 빗방울에 적시고, 얼굴에 바람을 쏘이려면 차갑지 않고 부드러운 버드나무 바람을 맞고 싶다는 뜻.

3) 履雜澗底雲 窓含松上月 (초의선사)
내딛는 발걸음은 냇물바닥의 구름과 섞이고, 창은 소나무에 걸린 달을 머금었다는 뜻.

4) 起山以謝茶長句見贈次韻奉和兼呈雙修道人
(起山스님이 차를 보내줌에 감사하며, 또, 長詩를 주었기에 이에 대해 次韻하여 받들어 화답하고, 아울러 쌍수도인에게도 이 시를 바치노라)

萬事從來春消雪 誰知個中自有一段難磨滅
만 가지 일이 종래는 봄눈 녹듯 하건만
누가 아는가, 닳거나 없어지지 않는 한 물건을 스스로 갖춘 것을.
秋空淨涵明月光 淸和難將比皎潔
가을하늘 깊고 깨끗한데 밝은 달빛이여
맑고 조화롭고 皎潔한 그 모습, 비교할 바 없다네.
殊相劣形誰擬議 眞名假號總元絶
빼어나고 모자라는 모양새를 그 누가 헤아릴까
참된 이름, 거짓 이름 모두 근원이 없는데.
始未相動那伽定 誰知香火舊緣結
애초부터 나가정(那伽定)에 들어있어, 서로 조금도 동요함 없었는데
향불로 맺었던 예부터의 도반인연 어느 누가 따지리.
雙放雙收沒處尋 同生同死休提挈
진제(眞諦)며 속제(俗諦)며, 버릴 것도 거둘 것도, 찾을 수 없고
(한 물건으로) 함께 나고 죽는 것도 이끌어내 보일 수 없네.

一回見面一回歡 有甚情懷可更切
한 번 얼굴 보았을 때 한 번 기뻐했으면 족한 것을
어찌 다시 인정이다 회포다 간절할 것 있으리.
三十柱杖曾不畏 等閑隨雲下찰알
삼십 방망이 일찍이 두려워 아니하고
한가로이 구름 따라 험한 절벽 오르내리다가
却看維摩方丈居 白玉界中黃金埒
유마거사 머무른 방장실을 보아하니
白玉세계 가운데의 황금빛 울타리네.
玉女時將天花散 曼殊芬陀蔕相힐
옥녀는 때때로 하늘의 꽃비를 뿌려주고
문수의 흰 연꽃은 꼭지 채 떨어지는데
無底鉢擎衆香飯 沒根耳聽無言說
밑 없는 발우에는 갖가지 향기로운 음식이 수북하고
귀뿌리 없는 귀로 말 없는 說法을 듣는다네.
熱惱塵垢無着處 有誰更願濯淸洌
들끓는 번뇌와 때 묻은 티끌이 붙을 곳 없거니
누가 다시 씻어내고 닦아내고 맑힐 것이 있으리.
不二門中三十人 都無所用廣長舌
유마거사 침묵의 불이법문 듣는 보살
도무지 광장설을 쓸 바가 없었네.
君不見末後都將伊字喩 縱橫幷分也難別
그대는 모르는가, 말후(末後)의 비유, ‘伊字’를
이리저리 나누고 헤아려도 시비분별 어려운 것.
我從長者請下一轉語 法喜供禪悅食還將容饕餮
나 이제 그대의 請에 따라 한마디 굴리어 내려주노니
법희의 공양과 선열의 음식을 食貪 많은 도철과도 함께 나누세.

- 초의선사 -


보충설명> 이 글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추사, 김정희(쌍수도인)에게 차를 보내면서 함께 지어 보낸 시(불이법문)입니다.
*쌍수도인: 추사, 김정희의 별호. *나가정: 번뇌가 없는 선정의 최고경지. *시미상동나가정: 초의선사나 추사나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이, 근원적인 참 모습은 대선정에 들어있는 부처님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는 뜻. *향화구연: 초의선사와 추사는 승려와 속인으로 서로 신분이 다르지만 과거생으로부터 내생까지 함께 공부하는 도반이 아니겠느냐는 뜻. *쌍방쌍수몰처심: 유와 무, 현실과 이상, 조사선과 여래선 등, 방하착 할 것도 거두어들일 것도 모두 진리에 들면 찾아볼 수 없는 한 모습이라는 뜻. *백옥계중황금날: 유무를 초월한 법계의 모습을 표현한 것. *옥녀시장천화산: 유마경의 한 장면. *만수분타: 문수보살이 쥐고 있는 흰 연꽃. *무저발경중향반: 모든 중생에게 향한 한량없는 부처님의 가르침. *몰근이청무언설: 시비선악을 초월한 유마거사의 침묵이나 무정설법(無情說法) 등. *불이문중삼십인: 유마거사를 문병한 30보살. *‘伊’字: 원(圓) 안에 ‘∵’ 모양으로 세 개의 점이 찍힌 ‘이’라는 發音의 梵字. 원만한 眞理를 表象하기 때문에 智母라고도 한다. *법희공선열식 환장용도철: 진정한 차 맛은 모든 중생, 심지어 도철과도 함께 나누어야 법희공 선열식의 의미가 있다는 뜻.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