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마음에 집착해 마음으로 마음을 찾네

通達無我法者 2008. 9. 24. 23:57

 

 

육조 스님의 口訣 해설
 
깨진 거울은 거듭 비추지 못하고

떨어진 꽃은 가지 위로 갈 수 없네

생소한 것은 놓아버려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은 놓아버려 생소하게 하라


금강경오가해는 함허당득통선사의 ‘一物序’ 뒤에 다섯 분 선지식의 상세한 풀이가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六祖스님의 口訣이 가장 먼저 소개됩니다. 오늘은 육조스님에 관해 전해져 온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육조스님의 면모와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하겠습니다. 五祖 홍인스님은 육조스님을 처음 보았을 때 바로 그 法器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대중을 위해 방아를 찧게 하였지요. 그런데 그 방아 찧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700명 대중을 위해 어린 몸으로 자기보다 큰 돌을 짊어지고 방아를 찧는 모습은 그대로 비어있는 모습 아닙니까? 五祖스님은 의발(衣鉢)을 전해주어야 하는데, 신수스님은 미진하고, 노행자(盧行者)는 수계도 안했고… 그래서 많이 고민하다가 납자들에게 게송을 짓게 하였습니다. 이 때, 신수스님은 “身是菩提樹 心如明鏡台 時時勤拂拭 勿使有塵埃”라고 지었고 노행자는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지었습니다. 오조스님은 이 게송을 본 후 노행자에게 의발을 전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당송(唐宋) 시대 스님들의 일화는 ‘송고(頌古)’라는 시로 후대에 많이 읊어집니다.


1) 頌古
六祖當年不丈夫 倩人書壁自塗糊 明明有偈言無物 却愛他家一鉢盂

(육조는 행자 때에 장부답지 못했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벽에다가 글을 쓰고 남의 글은 고치고 풀칠했다네/ 게송에는 분명히 무물(無物)이라 말했으면서/ 남의 집 귀한 발우 훔쳐 갔다네)

이 글은 육조스님이 의발을 훔쳐가기 위해서 절집에 숨어들었다고 폄하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높이 평가해준 시입니다.

육조스님은 의발을 전해 받았지만 행자의 신분으로 남쪽으로 내려가 14년 동안 머리를 기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광동의 법성사에 머물게 되었는데 옆방에서 두 객승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한 스님은 깃발이 흔들린다고 하고 또 다른 스님은 바람이 흔들린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스님은 공(空)과 유(有)를 두고 어느 한 쪽 만의 주장으로 논쟁한 것이지요. 이 때, 육조스님이 “可容俗流 輒預高論否?”(내가 俗스런 부류이긴 하지만 스님들의 숭고한 논쟁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객승의 허락으로 육조스님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두 객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육조스님은 空과 有를 뛰어 넘은 분이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이 때, 제 3자가 나타나서 육조스님에게 “그 마음을 한번 내보이시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리란 언어와 몸짓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2) 不是風幡不是心 沼沼一路絶追尋 白雲本自無無종跡 飛落斷崖深更深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이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로다/ 아득하고 아득한 하나의 길은 미루어 찾을 길이 끊어졌도다/ 흰 구름은 본래 종적이 없는데/ 높은 낭떠러지에 날아 떨어져 깊고 더욱 깊어라)

이 시는,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마음이란 것을 다시 세워서 말하니까, 마음에 집착해서 마음으로 마음을 찾는 오류를 범한다는 내용입니다. 언어와 모습이 끊어진 자리를 언어문자로 찾으려한다면 찾아지겠습니까? ‘깨진 거울은 거듭 비추지 못하고,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3) 是風是幡君莫疑 百草叢中信步歸 王道太平無忌諱 戱蝶流鶯鶯요樹飛
(바람이다, 깃발이다, 그대는 의심할 것 없으니/ 온갖 풀 총총한 가운데 발길은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도다/ 왕도는 태평하여 꺼리고 가릴 것이 없는데/ 춤추는 나비와 흐르는 꾀꼬리 소리가 나무 위를 빙빙 날아가네)

왕도에서 볼 때는, 깃발·바람·마음을 구별할게 없이 모두가 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한 모습의 경계를 여의지 않은 채, 나비와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 각각 그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4) 詩爲禪客添花錦 禪是詩家切玉刀
(시는 선객들에게 금상첨화가 되고/ 선은 시인들에게 옥을 절단하는 칼이 된다)
시와 선은 별개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보완하며 하나를 이루어 그 맛을 더 잘 살려 줍니다.

5) 書狀에서
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생소한 것은 놓아버려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은 놓아버려 생소하게 하라)

금강경 공부는 생소합니다. 그에 반해 TV보고 장부정리 하는 일은 익숙합니다. 이제는 좀 어려운 듯 하지만, 생소한 금강경은 익숙해지도록 애쓰고, 일상생활은 생소해지도록 방하착 해야합니다.


一物序 계속

若大鑒能 圭峰密 治父川 傳與鏡此五大士者 皆人天之所尊 法海之所歸者也
五大士 皆因此經 眼目夫人天 故 曰人天之所尊 無法不了 故 云法海之所歸


대감혜능, 규봉종밀, 야보도천, 부대사, 종경, 이 다섯 분의 큰 스승은 모두 인간과 천상의 존경을 받을 어른이며, 법문의 바다가 모두 돌아가는 바가 되었다.
다섯 스승이 모두 이 경으로 인하여 그 인천의 안목 역할을 했으니 고로 이르기를 인간과 천상의 존경을 받을 바라 하고, 요달하지 못한 법이 없으니 고로 이르기를 법의 바다가 돌아가는 바라고 한 것이다.

各具通方正眼 直傳諸佛密印 各出廣長舌相 開演最上宗乘 一一威振河嶽 輝騰古今 遂使當世 盲者 得見 聾者 得聞 啞者 能言 跛者 能行
通方正眼者 明眞了俗 達乎中道 無所不通之正眼也 密印者 衆生所迷之眞理 佛祖相傳之法印也 五大士 具如是正眼 傳如是密印 開大口說大話 威光 動地 照映今昔 遂使見聞 皆化 知非遷善 極於宗 說 兼通 解行相應之大化者 皆於此經 得之矣


(다섯 분이 모두) 두루두루 통하는 정안을 갖추어서 모든 부처님의 비밀스런 가르침을 올바로 전해주시고, 각기 부처님의 넓고 깊은 가르침을 이끌어 내어 최상승의 도리와 종지를 열어 연설해 주시니, 낱낱이 위엄을 온 세상에 떨쳤고 찬란한 광명을 고금에 흩었다. 드디어 당세에 눈 먼자는 보게 하고, 귀 먼자는 듣게 하고, 벙어리는 입을 열게하며, 절름발이는 능히 걷게 하셨다.

통방정안이란, 진리에 비추어 세속법을 요달하고 중도에 이르러 통하지 않음이 없는 바른 안목을 말한다. 밀인이란, 중생이 미혹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비밀스런 진리이며 부처와 조사가 서로 전해준 法印이다. 다섯 분이 이와 같은 정안을 갖추고 이와 같은 밀인을 전해주어 진리의 큰 말씀을 說해 주시니, 위엄의 광명이 땅을 움직이고 예나 지금이나 환히 비추었다. 드디어 (금강경을) 보고 듣는 자가 모두 교화되어 그릇됨을 알아 善에 옮기게 하시니, 진리의 깨달음과 이론의 가르침에 함께 통함이 지극했으며 解와 行이 서로 어울려 크게 교화를 펴심이 모두 이 경을 토대로하여 얻은 바이다.

亦爲普覺將來 各自依經著解 以傳天下後世
旣以斯經 現益當世 且造斯解 流芳萬古

당세에 그렇게 제도하고도, 또한 장래의 중생들을 널리 깨닫게 하려고 각각 스스로 금강경에 의거한 해석본을 지어서 천하의 후세에 전하시니
이미 이 금강경으로 당세에 이익을 베풀었고 또한 이 해설을 지어서 만고에 향기를 흘려보내셨다.

豈是彫文喪德 可謂錦上添華
玉無瑕而彫文 反喪良玉溫潤之德 斯解則反是 致令經語 益精 經義 益明 遂使目之者 披雲睹日 耳之者 豁然心開

어찌 옥에 무늬를 새기려다 옥의 덕을 상하게 했겠으리요. 가히 비단에 꽃을 수놓음과 같도다.
티 없는 옥에 무늬를 새김은 도리어 훌륭한 옥의 따뜻함과 윤택한 덕을 상하게 하는 것이지만, 이 해설은 곧 도리어 옳아서 경의 말씀을 더욱 정밀히 다듬고 경의 뜻을 더욱 빛나게 밝혀준다. 그리하여 경을 보는 사람에게는 구름을 헤치고 해를 보게 하며, 경을 듣는 사람에게는 활연히 마음의 문이 열리게 했다.

何止重輝佛日 亦乃光揚祖道
古人道 三乘 十二分敎 體理得妙 何處 更有祖師西來意 則別傳之旨 亦不外乎斯經 尙爲言敎 所攝 隱而不現 今諸祖 稱實發揚 非獨敎義全彰 別傳之旨 亦乃昭然 有云 單傳直指之旨 豈斯敎 所攝乎 看於黃梅曹溪 足可見矣

어찌 거듭 부처님의 해만 빛나게 했으리오. 나아가 조사의 道까지도 빛나게 드날렸다.
옛 스승이 이르되, “삼승과 십이분교의 이치를 체득하여 그 속의 妙를 깨달으면 어느 곳에 다시 조사가 서쪽으로부터 온 뜻이 필요하겠으리오.”하였다. 이는 곧 조사의 교외별전의 가르침도 또한 이 경 밖에 있지 않음을 말함이다. 오히려 言敎에 포섭한 바 되어서 깊은 뜻이 감추어져 나타나지 않거늘, 이제 다섯 스승이 진실한 이치에 들어맞게 (금강경의) 뜻을 발췌하여 드날렸다. 비단 경전의 뜻이 온전히 빛날 뿐 아니라 교외별전의 뜻도 또한 훤히 드러났다. 누군가가 이르되, “한 스승이 한 제자에게 바로 직접 가르치는 禪旨가 어찌 이 금강경에 있겠는가?” 하지만, 황매(오조)와 조계(육조)를 살피면 족히 알 수가 있다.

참고) 君子所過者化 所存者神(-주역에서)
군자가 지나간 자리는 교화의 바람이 불고, 군자의 살림살이는 싱그럽다는 뜻.

1) 破鏡不重照요 落花難上枝라.
2) 진리를 확실하게 깨달은 것.
3) 깨달은 진리를 중생들에게 설하는 것.
4) 聲聞 菩薩 緣覺
5)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열둘로 나눈 것.

‘금강경오가해 강의’는 불국사 승가대학 학장 덕민 스님이 지난 4월 1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불국사교육문화회관에서 강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법보신문은 덕민 스님의 ‘금강경오가해 강의’를 시간적-지리적 제약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해 지면을 통해 그 생생한 현장을 전달합니다.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