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육조 스님의 구결 해설-3

通達無我法者 2008. 9. 25. 00:07

 

 

닦지 않으면 범부, 닦으면 금강이라
 
앎을 마음으로 실천하면 바라밀이 있고

마음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바라밀 없네

<사진설명>불국사 승가대학장 덕민 스님은 "금강경을 새기며 청정하게 살아가면 그것이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金在山中 山不知是寶 寶亦不知是山 何以故 爲無性故 人則有性 取其寶用 得遇金師 斬鑿山破 取鑛烹鍊 遂成精金 隨意使用 得免貧苦 四大身中 佛性 亦爾 身 喩世界 人我 喩山 煩惱 喩鑛 佛性 喩金 智慧 喩工匠 精進勇猛 喩斬鑿

금이 산중에 있으나 산은 이 보배를 알지 못하고 보배 또한 이 산을 알지 못하니 무슨 까닭인가?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성품이 있어서 보배를 취해 사용할 때,

금을 잘 캐는 스승을 만나 산을 뚫고 깨트려 광석을 취해 달구고 단련시켜 마침내 정금(精金)을 만들어 뜻에 따라 사용하여 빈고(貧苦)를 면할 수 있다.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몸 가운데의 불성도 또한 이러하여 몸은 세계에 비유하고,

남과 나의 구분은 산에 비유하고,

번뇌는 광석에 비유하고,

불성은 금에 비유하고,

지혜는 장인에 비유하고,

정진용맹은 산을 부수고 뚫음에 비유한다.



身世界中 有人我山 人我山中 有煩惱鑛 煩惱鑛中 有佛性寶 佛性寶中 有智慧工匠 用智慧工匠 鑿破人我山 見煩惱鑛 以覺悟火 烹煉 見自金剛佛性 了然明淨

색신의 세계에는 인상과 아상이라는 산이 존재하고,

인아산 가운데에는 번뇌의 광석이 있고,

번뇌광 가운데에는 불성이란 보배가 있고,

불성의 보배 가운데에는 지혜의 스승이 있으니,

지혜의 스승을 활용해서 인아의 산을 뚫고 깨뜨려 번뇌의 광석을 보고,

깨달음의 불로서 달구고 다듬어 자신의 금강불성이 분명하고 밝고 깨끗함을 볼 것이다.



是故 以金剛 爲喩 因爲之名也 空解不行 有名無體 解義修行 名體俱備 不修 卽凡夫 修 卽同聖智 故名金剛也

이런 까닭으로 금강으로 비유를 들고 ‘금강’이라 이름 삼으시니 공연히 알기만 하고 실천이 없으면 이름만 있고 본체는 없는 것이요,

뜻을 알아 수행하고 실천하면 이름과 본체가 구비되는 것이다.

닦지 않으면 범부요,

닦으면 성인의 지혜와 같으니 고로 금강이라 이름 하셨다.



何名般若 是梵語 唐言 智慧 智者 不起愚心 慧者 有其方便 慧是智體 智是慧用 體若有慧 用智不愚 體若無慧 用愚無智 緣愚癡未悟 秪遂假智慧除之也

무엇을 이름하여 반야라 하는가?

반야는 범어이고 당나라 말로는 지혜다.

지(智)는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고 혜(慧)는 방편이 있는 것이니,

혜는 지의 체(體)요 지는 혜의 용(用)이다.

체에 만약 혜가 있으면 지의 사용이 어리석지 않지만,

체에 만약 혜가 없으면 어리석음을 사용하여 지가 없으니,

(중생들이) 다만 어리석음 때문에 깨닫지 못하므로 마침내 지혜를 가자하여 어리석음을 제거해야 한다.



何名波羅密 唐言 到彼岸 到彼岸者 離生滅義 秪緣世人 性無堅固 於一切法上 有生滅相 流浪諸趣 未到眞如之地 並是此岸 要具大智慧 於一切法 圓離生滅 卽是到彼岸 亦云心迷則此岸 心悟則彼岸 心邪則此岸 心正則彼岸 口說心行 卽自法身 有波羅密 口說心不行 卽無波羅密也

무엇을 이름하여 바라밀이라 하는가?

당나라 말로 ‘저 언덕에 이른다’는 것이니,

‘저 언덕(피안)’에 이른다는 것은 생멸을 여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편,

세상 사람들은 성품이 견고하지 못하여 일체의 법 위에 생멸상을 두어 제취(諸趣-혹업에 이끌려 사는 곳)에 떠돌고 진여의 땅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두고 ‘이 언덕(차안)’이라고 한다.

대지혜를 갖추어서 일체법을 원만히 닦아(空한 상태에서 相 없이) 생멸을 여의면 곧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다.

또한,

마음이 미혹하면 이 언덕이요 마음을 깨달으면 저 언덕이며,

마음이 삿되면 이 언덕이요 마음이 바르면 저 언덕이니,

입으로 설명하고 마음으로 실천하면 곧 자신의 법신에 바라밀이 있는 것이요 입으로 설명만 하고 마음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곧 바라밀이 없는 것이다.



何名爲經 經者 徑也 是成佛之道路 凡人 欲臻斯路 應內修般若行 以至究竟 如或但能誦說 心不依行 自心 卽無經 實見實行 自心 卽有經 故 此經 如來 號爲金剛般若波羅密也

무엇을 이름하여 경(經)이라 하는가?

경(經)이란 것은 바르고 빠른 길이니,

이는 부처를 이루는 道路다.

범인(凡人)이 이 길에 이르고자 한다면 응당 안으로 반야행을 닦아야 구경에 이를 것이나,

혹 능히 입으로 외우고 설명만 하면서 마음으로 의지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에 경이 없는 것이요,

(금강경을) 여실히 보고 여실히 실천하면 자신의 마음에 경이 있는 것이니,

고로 이 경을 여래께서 이름하여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신 것이다.



〈보충설명1〉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강은 견고하고 예리한 것을 비유한 것이고,

반야란 지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강은 반야를 수식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금강경이라고 줄여 말하면 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모자람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相에 얽매여 살아가기 때문에,

금강의 힘으로 相을 분쇄시키라는 의미로 금강경이라 이름하지만,

엄밀히 얘기하자면 반야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보충설명2〉 불교에서는 體와 用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일이 많습니다.

체(體)라는 것은 본체,

바탕을 이야기하고 용(用)이란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쓰임을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의 경우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진리의 體와 견줄 수 있고,

현실세계에서 우리에게 진리의 깨달음을 시설하는 석가모니부처님은 用에 견줄 수 있습니다.


〈보충설명3〉 ‘저 언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이기 때문에 생멸이 없습니다.

반면 ‘이 언덕’은 시간과 공간에 얽혀서 살기 때문에 생멸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생각의 전환으로 ‘이 언덕’이 곧 ‘저 언덕’이 될 수 있습니다.



선시 맛보기

1. 綠筠軒(東坡)
可使食無肉 不可居無竹

밥상에는 고기가 없어도 되지만,

사는 곳은 대나무가 없으면 아니되네.


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고기를 안 먹으면 여윌 뿐이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속스러워 진다네.


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

사람이 여위면 살찌울 수 있어도,

선비(보살)가 속스러우면 치료할 수 없다네.


傍人笑此語 似高還似痴

옆사람이 비웃으며 말하기를

“고상한 것 같지만, 도리어 어리석다”


若對此君仍大嚼 世間那有揚州鶴

대나무도 마주하고 고기도 먹는다면,

세간에 어찌 양주학이 있겠는가?



〈보충설명1〉 세상살이는 富와 貴를 동시에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은 대체로 청탁(淸濁) 가운데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소동파선생은 오잠의 녹균헌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스님의 삶을 보고 청(淸)과 탁(濁)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 지에 대해 이 시를 지었습니다.

음미할수록 우리의 삶의 지표로 훌륭한 시입니다.


〈보충설명2〉 대나무는 텅 비어 있지만,

마디마디에 응어리가 있습니다.

그냥 허무하게 비어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꿰뚫는 지혜와 바라밀을 실천하는 흔적이 비어있는 마음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또한 항상 푸르러서 선지식의 자취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보충설명3〉 속스럽다는 것은 탁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명예와 이익에 매달리고,

모습에 젖어 사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보충설명4〉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고싶은 모든 것을 소유하려합니다.

그래서 ‘고기도 먹고 또 대나무 심어 수행도 하면 되지 굳이 하나만 선택할 게 무엇이 있느냐’고 말하며 한 가지만 선택하는 사람들을 비웃기 쉽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실컷 먹고 좌선한다면 금강경 공부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러니 대나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혼탁하게 살면 물질의 노예가 되어 일상생활도 엉기고 피곤해집니다.

금강경을 새기며 청정하게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보충설명5〉 중국의 九州 가운데에서 양주는 가장 비옥하고 미인도 많습니다.

그래서 양주자사가 인기 있는 벼슬이었습니다.

어느 날,

세 사람이 모여 서로 가장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은 양주자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鶴(신선)이 되어 천년만년 살고 싶다고 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천하의 富를 다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나는 모든 부를 다 소유하고,

양주자사가 되어,

학을 타고 하늘을 나르고 싶다”

고 했습니다.

‘양주학’이란 이 고사를 말합니다.



2. 碧巖綠 中에서
猿抱子歸靑嶂裡 鳥啣花落碧巖前

원숭이는 새끼 안고 푸른 묏부리 속으로 돌아가고
새는 꽃을 물어다가 이끼 낀 바위 앞에 떨구네

〈보충설명〉 한 납자가 어느 것이 협산의 풍경이냐고 물었을 때 협산이 답한 詩인데 화엄의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원숭이와 푸른 묏부리,

새와 이끼 덮인 바위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도의 세계에서는 서로 도우며 어울립니다.

하얀 눈이 푸른 소나무를 덮었을 때 서로 이질감이 있어 보이지만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3. 화엄경, 화엄품목에서
犀因玩月紋生角 象被驚雷化入牙

물소는 달을 감상하며 아롱진 달무늬를 뿔에 새기고
코끼리는 우뢰에 놀라 번개모양을 상아에 입히네.

〈보충설명〉 연못에 달이 비치면 물소는 달 그림자를 뿔로 저으며 월광욕을 즐깁니다.

그렇게 달을 감상하며 놀다보면 반달, 보름달,

다양한 달무늬가 뿔 속에 들어가 새겨지지요.

코끼리도 상아를 세우고 驟雨落雷를 즐깁니다.

자꾸만 번개 치는 소리에 놀라다 보니 상아에 번개 모양이 새겨지지요.

물소의 뿔에 새겨지는 달무늬,

코끼리 상아의 번개무늬는 자연과 더불어 하나를 이룬 만다라이자 묘유(妙有)입니다.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