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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서장(序章)
[4 장]
6. 불교의 우주구조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이 세계(大地)는 물(水)위에 있고 물은 바람(風) 위에 있고
공기는 허공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
그때 장로는 법병(法甁)에 물을 담아다가 밀린다 왕에게 보이고 말했다.
"이 물이 대기(風)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처럼
세계의 물도 공기(風)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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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생명의 기원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불교는 생명의 기원이나 세계의 형성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문제는 불교의 궁극목표인 열반의 성취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방해가 되는 것이라 해서 터부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후기 불교에 와서 여러 불교학자들은 이들 문제에 대해 많은 연구와
나름대로의 설명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부파불교의 논서의 하나인 구사론에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구사론의 설명에 따르면 이 우주는 한없이 광대하고, 그 속에서는 수 없는 소우주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우주 속에는 역시 수많은 지구가 있고, 그 지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살고 있다.
이 우주와 그 속에 사는 중생들은 산이나 조물주 같은 어떤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존재를 생각하지 않았다.
우주와 존재들을 형성하고 유지시키는 것은 ‘어떤 에너지의 작용’에 의해서이다.
이 에너지는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업력(Karma)'이라는 것이다.
불교는 생명의 발생과 그 유지의 문제를 ‘업설’로 설명하고 있다.
업이란 중생들이 짓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업에는 육체적으로 짓는 행위인 신업,
언어로서 짓는 구업,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행위인 의업이 있다.
중생들이 짓는 모든 행위를 업이라고 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모든 행위가 다 업은 아니다.
업의 결과인 과보를 초래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행위라야 한다.
과보를 초래할 능력이 있는 업이 되기 위해서는 의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춘 행위이어야 한다. 의도되지 않은 행동,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행동은 과보를 초래할 능력이 없다.
먼저 마음 속에서 의도하고 그 의도한 것을 육체나 언어를 통해 바깥으로 구체화한 행동이어야 한다.
윤리적인 행동이란 선하거나 악한 행동을 말한다.
업에는 선업악업 이외에 무기업이라는 것이 있다.
무기업이란 무의도적이거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업으로서 아무런 결과를 초래할 능력이 없다.
이 업은 ‘무정란’과 같은 것이다.
업설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라는 ‘인과의 법칙’ 위에 성립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악의 행위라는 ‘륜리적인 법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업설은 인과성과 윤리성의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업설의 인과성은 자연과학에서와 같은 것이지만,
그것의 윤리성, 즉 선한 행위에는 좋은 결과가 나오고 악한 행위에는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은
종교적인 것이다. 업은 개체의 의지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전적으로 개별적인 것이다.
자신이 지은 업을 다른 존재에게 이전시킬 수 있거나
다른 존재가 지은 업의 결과를 자신이 대신 받을 수는 없다.
역시 어떠한 외부적인 영향력도 미칠 수 없다. 자신이 짓고 자신이 그 결과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업은 개체의 운명뿐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도 결정한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중생들이 공동으로 짓는 업(공업)은 그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하고 운명을 만든다. 그들이 살고 있는 국토와 환경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선업을 지은 중생들이 많이 사는 사회도 전쟁도 질병도 없는 살기 좋은 곳이 되고
국토는 풍요롭고 기후는 순조롭다.
반대로 악업을 지은 중생들이 많이 사는 사회는 살기 나쁜 곳이 될 뿐 아니라
국토는 거칠고 기후는 순조롭지 못하다.
따라서 업은 산하대지 등 자연계까지도 만들고 유지하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지구와 우주가 형성되고 소멸되는 것은 우연에 의해서도, 어떤 위대한 존재의 힘에 의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중생들이 만드는 업력에 의해서라는 것이
생명의 기원에 대한 불교적에서의 관점인 것이다.
*출처 : 부다피아 퍼옴
*위에 글이 조금은 쉬워보여 올렸습니다..
불교의 우주관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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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속의 우주
올린이 : isude (김라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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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조(동구대 교수, 불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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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불교에서 본 세계 ·자연 ·우주 1. 우주의 생성과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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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핀 중국이나 인도 신화의 경우와 비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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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우주론은 선명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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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의 방대한 가르침 속에서도 분명하게 불교적 우주론을 설명하는 경전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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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있다 하더라도 상당히 관념적이고 애 매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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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까닭은 불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여하기를 꺼려했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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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세존은 삶의 목표를 깨달음 으로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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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그 깨달음의 완성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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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했기 때문 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 경전들 속에 나타난 불교적 우주론을 정리하여 이해 하는 도리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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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우주적 신화론을 나타내는 경전들로서는 <<세기 경 世紀經>>,<<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 등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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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우주의 기원을 업 業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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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Karma라는 인도 말을 옮긴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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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행위 자체, 또 행위로부터 빚어지는 갖가지 과보 果報 들 을 의미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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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생명 있는 것들을 총칭하여 중생이라고 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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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생들의 생성 소멸은 업에 의하여 주도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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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가운데 가 장 근원적인 것은 무명업 無明業/Avidya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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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 고, 늘 이기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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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명업으로부터 갖가지 번뇌가 생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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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뇌들의 집합이 또 다른 생존 형태를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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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윤회 Samsara라고 말한다.
업과 윤회는 전생 前生, 금생 今生, 후생 後生의 삼생 三 生을 관통하는 광폭한 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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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무명업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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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닭과 달걀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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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근본 이 있어서 다른 것을 생성한다는 수직적 사고를 갖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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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결코 설명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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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달걀은 어느 것이 먼저 생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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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닭이 있으려면 달걀이 있어야 하고, 달걀이 있으려면 닭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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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 은 서로의 필요성, 즉 인연에 의하여 생겨난 것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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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무명업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하는 물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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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인과론적 사고에서 벗어난 견해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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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인과론을 생사의 윤회 유전 관계로 설명한 것을 십이연기 十二 緣起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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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본적인 무명업의 최초 생성에 관해서는 설명되지 않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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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처럼 노사 老死까지 이르는 열두 단계는 다만 둥근 원의 순환 관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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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얽혀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업보의 전개가 바로 우주요, 자연이며, 삼라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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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이 업보 의 전개로서 누릴 수 있는 생명 형태를 여섯 갈래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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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 가장 고통받는 삶의 형태. 아귀 :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는 생존 형태. 축생 : 짐승들의 세계, 난폭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삶. 수라 : 폭력만이 존재하는 생존 형태. 인 : 인간들의 삶. 천 : 하늘나라의 신적인 존재. 이별의 아픔이 남는 세계. 위의 셋을 삼악도 三惡道, 밑의 셋을 삼선도 三善道라 하며, 통틀어 육도윤회 六道輪廻라 말한다. 태초의 우주에는 중생들의 업력 業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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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라 허공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풍륜 風輪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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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륜 위에 구름이 일어나며, 또 다시 수륜 水 輪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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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륜 위에 다시 바람이 일어나 금륜 金輪을 생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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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륜 위에 수미산이 솟고,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일곱 산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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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산과 산 사이에 물이 고여 여덟 바다가 생기는데 수미산 부근의 일곱 산 사이에 생긴 바다를 내해 內海라고 하며, 그들과 바깥 세계와의 사이에 생긴 바다를 外 海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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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해 속에 사대주 四大洲가 있어서 수미산의 동서남북에 위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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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지구)는 수미산의 남쪽 섬부주 贍部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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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중앙에 있는 수미산은 절반이 물에 잠겨 있고, 그 위가 지상으로 솟아 있는데, 해와 달, 별들이 수미산을 싸고 허공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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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이 모여 사는 세계는 수미산의 남쪽 섬부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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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턱에서부터 위 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중생의 경계는 크게 욕계 欲界, 색계 色界, 무색계 無色界의 삼계 三界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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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계는 욕심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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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소유욕으로 파탄이 빚어지고, 희로애락이 상존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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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에 따라 앞 서 말한 육도 윤회가 있게 된다.욕계 다음의 세계가 색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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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은 멸하였지 만 물질 은 남아 있다. 즉, 소멸에 따른 고통은 감수해야 하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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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계 는 크게 나누면 사선천 四禪天이지만, 세분하면 십팔천 十八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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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 세계를 무색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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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마저도 버렸지만, 관념 만은 남아 있는 세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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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관념적인 아픔, 사랑 등이 남아 있는 세계이다. 이도 세분하면 네 가 지로 나눌 수 있다.
다음에 이들 세계가 생성 소멸하는 시간적 단위에 대해서 살펴본다. 우주는 성 成, 주 住, 괴 壞, 공 空 의 네 가지 단계를 반복한다. 그 네 기간의 단위는 겁 劫 이다. 이 겁은 칼파 Kalpa 라는 시간 단위로서 무한한 시간 개념이다. 앞서 말한 우주와 수미산의 생선 기간을 成劫 이라고 한다. 다음에 주겁 住劫 이라는 시대가 온다. 세계는 큰 변동이 없지만 중생들의 과보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초기의 중생들은 형색이 아름답고 빛을 내며,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수명도 장구 한다. 그러나 좋은 음식, 맛에 탐착함으로써 차츰 몸이 더러워진다. 우선 남녀 의 성별이 생겨나고, 갖가지 이기적 욕심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다. 할 수 없이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 국왕을 뽑게 되고 형벌이 제정된다.
그러나 중생의 악업은 더욱 무거워지고, 동시에 수명이 짧아져서 마침내 10세 에 머물게 된다. 삼재 三災 의 괴로움이 닥칠 때, 드디어 중생들은 반성하기 시 작하여 다시 선행을 행하게 된다. 동시에 수명도 증가하여 8만 세에 이르러 풍 요로운 사회가 된다. 그러나 또다시 욕심과 악업이 성해지면서 수명이 10세로 감소된다. 인간 수명은 이와 같이 증감을 반복하는데, 그 횟수는 17번이나 된 다. 그 다음에 오는 시기가 괴겁 壞劫 이다. 중생들의 파멸이 시작되는 시기인 데, 그 순서는 지옥부터이다. 지하에서 차례로 파괴되어 끝내 천상이 무너진다. 그 이후 화,수,풍의 삼재가 발생하여 풍륜으로부터 색계 제 3천에 이르는 영역 이 모조리 파괴된다. 이 괴겁이 지나면 공겁 空劫 이 온다. 이것은 오직 허공 만이 존재하는 시기이다. 공겁의 다음에는 또다시 중생들의 업력에 의하여 성, 주,괴,공이 반복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즉, 우주는 끝없는 생성,소멸이 반복되 는 과정이며, 공간적으로 보면 그 중심은 수미산의 중턱이라는 것이다. 괴겁의 단게를 오탁 五濁/Panca-Kasaya 이라고도 한다. 즉, 수명뿐만이 아니고, 갖가지 의 좋지 못한 현상들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① 명탁 命濁 : 중생들의 평균 수명이 줄어든다. ② 겁탁 劫濁 : 자연 파괴가 가속화된다. ③ 번뇌탁 煩惱濁 : 쾌락주의, 도덕적 문란이 팽배해진다. ④ 견탁 見濁 : 고행과 형식주의가 예찬되며, 종교 집회가 대형화한다. ⑤ 중생탁 衆生濁 : 중생들의 능력이 평균치보다 저하된다.
이것이 불교적 말세 의식을 이루게 되지만, 또 다른 생성의 희망을 갖는다는 면 에서 여전히 낙천적 우주관이라고 볼 수 있다.
2. 수미산 수미산은 인도어 수메루 Sumeru의 음역이다. 전체 높이를 16만 유순이라고 했 는데, 1유순을 약 7킬로미터로 본다면 112만 킬로미터에 해당한다. 그 중 절반 은 바다 속에 잠겨 있고, 8만 유순 정도가 지상으로 솟아 있다. 앞서 말한 중생 들의 경계를 수미산의 공간 배치대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먼저 범천 梵 天(색계의 가장 아래에 위치)이 하생하고, 계속해서 욕계 육천에 해당하는 타화 자재천 他化自在天, 화락천 化樂天, 도솔천, 야마천 夜摩天이 하생하는데, 여기 까지가 수미산의 윗부분이며, 중생들의 입장에서는 하늘나라이다. 다음에 수미 산의 중턱 부분인데, 이곳에는 도리천, 사왕천 四王天 등이 위치한다. 인간이 사는 곳은 그 제일 밑부분으로서 이른바 사대주 四大洲 이다.
축생의 경우에는 바다에 생겨나는데, 혹은 육지나 허공을 맴돌기도 한다. 악귀는 그 밑으로서 염 마왕국이 그 본거지이나 역시 떠돌아다닌다. 그 밑이 지옥취로서, 지옥을 맴도 는 중생들이다. 그 밖에도 아수라가 있는데, 이들은 일정한 거처가 없다. 그저 수미산 주변을 맴돌면서 천상의 도리천과 항상 싸움을 일으킨다. 이렇게 해서 육도의 중생들이 각기 수미산 기슭을 근거로 하여 태어나고 사라지는데, 그 전 체의 기간은 20소겁 小劫쯤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은 이와 같은 세계를 초 월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는 관념은 고대의 인도인들이나 불교인들에게 있어서는 고통스러운 생명의 연장일 뿐이라는 상념에 젓게 하는 것이다. 즉, 윤회의 가치관을 가진 불교인들에게 있어서는 태어남 의 사실 자 체가 고통으로 인식되는 독특한 내세관을 갖게 한다.
3. 삼계 삼게 三界는 고뇌다. 성난 불과 같이, 골짜기의 메아리, 환각의 물거품과 같 으니라. 여래는 삼게를 초월하는 열반의 법을 설하노라(<<방광장엄경 方廣莊嚴 經>> 중에서 필자 초역). 우주를 삼계로 인식하는 것은 고대 인도인들의 공통 된 사고 방식이다. 즉, 우주를 하늘,허공, 대지의 삼계로 구분하고, 그 각각의 세계에 신이 살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불교 또한 이와 같은 사고를 답습하지 만, 그 개념은 판이하다. 우선 신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매우 비판적이다. 인도 신화에서의 신은 서양의 경우아 마찬가지로 절대자이면서 동시에 인격적이다. 즉, 신성 神性과 인간성을 공유하는 신적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예컨대 인 도의 신은 불사 不死, 영원의 존재이다. 또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며, 인간들의 찬양에 귀기울인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신적인 존재 또한 육도 윤회 속에 있다 고 생각한다. 인간보다는 행복하지만, 그 역시 죽음의 고통을 피할 길 없는 불 완전한 존재로 보고 있다. 따라서 하늘나라 또한 욕계 육천 欲界六天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신이 거의 모두 인도 신화에 연원을 갖고 있 음을 분명하다. 불교의 호법신인 제석천 帝釋天은 인드라 Indra의 변형이다.
인 도 신화에서 뇌성벽력의 주재자인 인드라가 불교로 수용되면서 선신 善神이 된 다. 또 관세음보살은 루드라 Rudra의 변형이다. 원래 태풍의 신이었으나 나중에 가축 증식의 신격으로 바뀌었다. 루드라가 불교에서는 자비의 화신으로 변형된 것이다. 심지어는 삼신불 三身佛의 주체인 법신불 法身佛/Vairocana 또한 우파 니샤드에 나오는 변자재신 /Virocana의 변형이다. 불교는 이와 같이 인도의 신 격을 계승하면서도 독특한 자기화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모든 신을 수용하는 것 이다.
이 삼계에 대한 소박한 믿음도 불교 고유의 것이라기보다는 인도적 연원을 답 습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이 삼계는 허공, 하늘,대지 따위의 즉물 적 구분이 아니라 매우 섬세한 철학적 구분이다. 욕계 육천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이 사왕천이고, 가장 높은 것은 타화자재천이다. 그런데 이 욕심의 세계를 섹 스와 관련하여 설명하면 인간 의식의 단계를 어느 정도 선명하게 짐작할 수 있 다. 즉, 사왕천에서는 남녀가 서로를 소유해야만 만족한다. 성교라는 구체적 행 위를 통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위의 하늘인 야마천계 에서는 포옹 정도로 만족한다. 그 이상의 구체적 행위가 없이도 서로의 사랑이 확인된다. 그 위의 하늘은 도솔천인데, 이곳에서는 서로가 손을 잡는 행위로 만 족한다. 그위의 하늘이 낙변화천인데, 멀리서 마주보면서 만족하는 세계이다. 마지막의 타화자재천에서는 영상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세계이다. 여기까 지는 욕계의 사랑이지만, 색계,무색계로 올라갈 때 그 승화 昇華의 단계를 짐작 할 수 있다. 욕계가 소유의 사랑이었다면 색계는 소유하지 않는, 철저한 관념의 사랑이다. 반면 무색계는 관념마저 초월하는 사랑이다. 흔히 사랑의 단계를 에 로스니, 아가페니 하는 구분으로 이해하지만, 이 삼계 속에 나타나는 불교적 사 랑관은 퍽 흥미로운 대비라고 생각한다.
4. 삼천대천 세계 성,주,괴,공을 되풀이하는 세계를 우리는 지구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 속 에는 실로 무한한 세계가 상존한다. 서로 다른 1천 세계를 합해서 1소천 小千 세계라고 한다. 이 1소천 세계를 1000배 한 것을 1중천 中千 세계라고 한다. 이 1중천 세게를 다시 1000배 한것을 1대천 大千 세계라고 한다. 이 소천,중천,대 천 세계를 통틀어서 삼천대천 三千大千 세계라고 한다. 이것을 한 부처님이 통 솔하는 세게라고 보고, 또 다시 백천만억 부처님이라는 표현을 하기 때문에 실 로 세계를 무량,무변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마치 허공의 먼지처럼,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처럼, 광대 무변한 세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세계관을 말할 때, 우리는 무한의 세계관 이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사다카타 아키라는 이 소천을 은하계에 비유했는데, 그것은 적절한 대비이다. 1000의 1000배를 중천 세계로 보고, 그 100만의 세게에 대한 1000배, 즉 10억의 세계를 대천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관념을 우주 속에 있는 모든 생 명들의 세계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60억 가까운 인간들이 모여 살지 만, 서로 얼굴을 맞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생활의 터전, 언어 의 장벽, 즉 서로의 세계 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짐승, 미생물의 세게로까지 생각을 확대시켜 나간다면, 가히 그 세계는 사량 思量할 수 없는 무한으로 치닫 고 만다. 삼천대천 세계는 바로 그 점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 은유를 갖가지 방 편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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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의 우주관 III
* 이해를 돕고자 올립니다 참고하옵소서...-참마음합장-
너무 늦어서 다시 밝은다음 잘정리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