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의 강의·혜거스님

〈23〉좌선의 공능 (坐禪功能) ②/신심 조화 이뤄야 ‘四大輕安’ 나타나

通達無我法者 2009. 7. 1. 18:39

 

 

신심 조화 이뤄야 ‘四大輕安’ 나타나

〈23〉좌선의 공능 (坐禪功能) ②

 
 
좌선의 공능 중 제일 먼저 사대가 경안해진다고 하였다. 4대(四大)란 물질계를 구성하는 4대원소(四大元素)로서 지(地).수(水).화(火).풍(風)을 말한다. 지대(地大)란 견고한 것을 본질로 하고 그 본질을 보존하여 유지하는 작용을 가진 것이며, 수대(水大)란 습성(濕性)을 본질로 하는 작용을 가진 것이며, 화대(火大)란 열을 본질로 하고 태우는 작용을 하는 것이며, 풍대(風大)란 움직이는 성질이 있고 만물의 성장 작용을 하는 것이다.
 
<원각경(圓覺經)> ‘보안보살장(普眼菩薩章)’에는 “나의 지금 이 몸은 사대(四大)로 화합된 것이다. 말하자면 머리칼, 터럭, 손발톱, 이, 살갗, 근육, 뼈, 골수, 때, 빛깔들은 모두가 흙으로 돌아오고, 침, 콧물, 고름, 피, 진액, 거품, 가래, 눈물, 정기, 대소변은 모두가 물로 돌아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으로 돌아가나니, 사대(四大)가 뿔뿔이 흩어지면 지금의 허망한 몸뚱이는 어느곳에 있는가.
 
“아금차신(我今此身)이 사대화합(四大和合)이라 소위발모조치(所謂髮毛爪齒)와 피육근골(皮肉筋骨)과 수뇌구색(髓腦垢色)은 개귀어지(皆歸於地)하고 타체농혈(唾涕膿血)과 진액연말(津液涎沫)과 담루정기(淡淚精氣)와 대소변리(大小便利)는 개귀어수(皆歸於水)하고 난기(暖氣)는 귀화(歸火)하고 동전(動轉)은 귀풍(歸風)하나니 사대각리(四大各離)하면 금자망신(今者妄身)이 당재하처(當在何處)오”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육신은 이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일시적인 존재로 환화와 같은 것이다.
 
경안(輕安)은 심소(心所)의 이름으로 착한 마음과 상응하여 일어나서 일을 잘 감당하여 몸이 편안하고 경쾌해지는 작용을 말한다. 혼침(昏沈)을 버린 것을 신경(身輕)이라 하고, 도거(掉擧)를 버린 것을 심안(心安)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혼침이 없어지면 몸이 경쾌해지고 도거가 없어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며,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의 수행 방법인 칠각지(七覺支)에서도 네 번째로 경안각지(輕安覺支)를 제시하고 있다.
 
 
경안은 심소의 이름으로
 
착한 마음과 상응하여 일어나서
 
일을 잘 감당하여 몸이 편안하고
 
경쾌해지는 작용을 말한다
 
 
여기에서 사대경안(四大輕安)이란 뜻은 온 몸이 경쾌하고 편안하다는 뜻이지만 육체적인 경안을 얻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경안이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된다. 그러므로 사대경안은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좌선을 하면 자연히 몸에도 힘이 들어가고 마음에도 힘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오래 오래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망념이 줄어들고 화두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자연히 몸에도 힘이 안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힘이 덜 드는 것’이 생력(省力)이며 ‘힘을 얻는 것’이 득력(得力)이다. 곧 생력(省力)이란 공부가 순하게 익어 힘이 덜어진다는 뜻이고, 득력(得力)이란 힘을 얻는다는 뜻이다. 맨 처음에는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망상만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계속 화두를 놓지 않고 꾸준히 들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화두에 대한 의심이 익어지고 익어져 자연스럽게 화두가 들리게 되는 경지가 온다. 이럴 때는 억지로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화두가 들리게 되며, 또한 화두가 간절해서 화두를 드는 데 전혀 힘이 들지 않게 되어 화두를 밀고 나가는 힘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힘이 들지 않고 저절로 화두가 들리는 바로 그 자리가 힘을 얻게 되는 자리라고 해서 생력처(省力處)가 득력처(得力處)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 1381)선사도 “만일 이처럼 진실하게 공부한다면 곧바로 힘들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힘을 얻는 경지이다. 화두가 자연스럽게 순숙(純熟)하여 한 덩어리가 되면 몸과 마음이 홀연히 공(空)하여져서 응집되어 부동하게 되어 마음은 가는 곳이 없을 것이다(若如此眞實用功이면 則便到省力處리니 此是得力處也니라 話頭自然純熟하야 打成一片하야 身心忽空하고 凝然不動하야 心無所之오)”라고 하였다.
 
두 번째 공능은 정신이 상쾌하고 예리해지는 것이다. 정신이 상쾌하고 예리해 진다라는 것은 성성(惺惺)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성성이란 분명하고 명료하게 깨어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참선할 때 대표적인 병통으로는 혼침과 도거를 들 수 있는데, 참선을 하는 대부분의 수행자들도 오랜 기간 혼침과 도거에 시달릴 정도로 이 두 가지는 수행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마음이 분명하고 명쾌하지 못하고 혼미하여 몽롱한 상태에 빠지게 되면 이것을 혼침(昏沈)이라 하고, 이 혼침이 심하면 수마(睡魔)에 빠지게 된다. 또한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산란하여 들떠 있는 상태를 도거(掉擧)라고 하는데, 마음이 오락가락하여 혼란스러운 상태로 번뇌 망상 때문에 안정을 얻지 못하는 산란심이 그 구체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혼침과 도거에 시달리는 것은 나태한 마음과 망상이 그 원인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 오롯이 화두에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요하기만 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혼침에 잠겨 있는 것이고, 깨어 있기만 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생각에 얽혀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혼침과 도거의 극복방법으로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을 들고 있다.
 
성성(惺惺)이란 어둡지 않고 환히 깨어 있는 마음의 상태이며, 적적(寂寂)이란 한결같이 고요한 마음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혼침이 왔을 때 화두에 의지하여 온 힘을 다해 화두를 들어야 한다. 계속해서 혼침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몸과 마음을 다져 잡고 반복해서 온 힘을 다해 화두를 들고 또 들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면서 혼침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화두와 한 덩어리가 되면서 기대고 의지할 것이 없어지고 마음이 갈 곳도 없어질 것이다. 고요함 가운데서도 화두가 살아 있는 것을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고 한다. 이렇게 적적과 성성이 온전하면 마음의 길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완숙한 공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본문에서 ‘정신이 상쾌하고 예리해진다’ 라고 한 것에서, 상쾌하다는 것은 정신이 분명하고 명확한 것을 말하고, 예리하다는 것은 정신이 티끌 한 점 없이 순수하여 분명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참선은 이와 같이 성성적적이 이루어지고, 정신이 상쾌하고 예리해지는 공능이 있으므로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문에서 큰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혜거스님 / 서울 금강선원장
[불교신문 2536호/ 6월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