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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57

通達無我法者 2010. 12. 28. 00:12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말에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상호의 입장이 있습니다.

상대를 바꾸기 위해서 말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옵니다.

 

어느 말이나 일방적일 때는 말의 기능이 떨어집니다.

옳은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도 단지 자신의 생각일 뿐입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으로 상대를 차별한다면 오히려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상대의 잘못을 핍박하면 상대나 자신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르기는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말이나 모두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어떤 말이나 오직 ‘그렀네!’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교재 대념처경의 41쪽 ‘법을 알아차림’을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다섯 가지 장애를 알아차림입니다.

 

선하다는 것은 보시와 지계와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행위를 하고자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 행위를 하려고 하면 반드시 갖가지 장애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시작은 장애와 만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에서 아름다운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수행은 과거의 정신적 습관으로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에

수행을 시작하면 즉시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의 첫 번째가 다섯 가지 장애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장애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선하지 못한 마음과

선하지 못한 과보심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선한 마음과 선한 과보심이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없다면 선한 것이 오히려 더 장애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릴 대상에는 선과 불선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의 정신적 향상을 가로막은 장애는 한두 가지가 아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장애가 있을 수 있으며,

상대적 조건에 따라서 나타나는 장애도 모두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수행을 하려고 하면 나타나는 장애는 대표적으로 다섯 가지를 꼽습니다.

소소한 장애는 이 다섯 가지 장애 속에서 다른 형태로 나타납니다.

 

다섯 가지 장애는

감각적 욕망,

악의,

나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회의적 의심입니다.

 

다섯 가지 장애를 한문으로 오개(五蓋)라고 합니다.

오개는 청정을 덮어버리는 다섯 가지의 덮개라는 뜻입니다.

이상의 다섯 가지가 마음의 청정을 더럽혀서 오염에 물들게 합니다.

 

하지만 이 다섯 가지 장애는 법입니다.

법은 없애야할 대상이 아니고 오직 알아차려야할 대상입니다.

장애를 완전하게 극복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장애를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장애의 힘은 크기 때문에 없애려고 해도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쌓여온 것이라서 이 장애는 쉽게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리는 힘을 키워서 장애가 저 스스로 소멸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알아차리는 힘이 바로 지혜입니다.

 

청정이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과 부딪칠 때

어떤 번뇌도 스며들지 못하도록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다섯 가지 장애가 이것을 막아서 청정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장애는 수행자들을 세속의 번뇌에 붙들어 매는 족쇄와 같은 것입니다.

 

다섯 가지 장애는 불선심으로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려면 사실 아라한이 되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궁극의 목표이고,

수행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에 얼마나 접근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특히 다섯 가지 장애 중에서 어떤 장애가 자신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는지 알아서

그것에 알맞은 대처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명상주제라고 합니다.

 

명상주제가 분명해지면 그것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만약 이렇게 알아차려서 개선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것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장애는 이렇게 단계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5가지 장애는 저 스스로를 자양분으로 삼아서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이 나타나면 나타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없애려고 하면 없애려고 하는 만큼 더 커집니다.

 

감각적 욕망은 감각적 욕망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더 커집니다.

악의는 악의를 자양분으로 삼아서 더 커집니다.

나태와 혼침은 나태와 혼침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더 커집니다.

들뜸과 후회는 들뜸과 후회를 자양분으로 삼아서 더 커집니다.

회의적 의심은 회의적 의심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이 일어난 순간에 일어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것만이 바른 수행방법입니다.

 

누구도 다섯 가지 장애를 뛰어넘지 않고서는 정신적인 향상으로 도모하기 어렵습니다.

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면 선정의 단계에 이를 수가 없으며,

위빠사나 수행의 청정과 지혜가 나지 못해 결코 도과를 성취하지 못합니다.

뿐더러 선정만이 아니고 선정에 들기 이전의 수준인 정신적 고양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장애는 선하게 살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건너야 할 고통의 바다입니다.

 

이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배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팔정도입니다.

그리고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합니다.

사마타 수행으로 장애를 잠재운 뒤에

위빠사나 수행의 통찰지혜로 이 장애를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장애를 제거한 다고 했을 때

좌선을 할 때 나타나는 현상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좌선을 할 때 움직이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나

고요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들이 두드러지지만

수행은 좌선을 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장애는 수행자의 모든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부터 장애가 시작되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두 장애가 계속됩니다.

잠을 자면서도 꿈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살고 있는 동안에는 이런 장애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겠습니다.

장애는 특별한 시간에만 오는 것이 아니고 원래 있는 것인데

여기서 벗어나려고 수행을 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장애의 늪지대이고

뚫고 나가는 힘은 오직 알아차림 하나입니다.

경전에서는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을 때 스스로

빚에서 헤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풀려난 사람,

자유인,

안전한 곳에 다다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대념처경의 법을 알아차리는 다섯 가지 장애에 대해서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보시겠습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법(法. dhamma)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의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안다.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악의(惡意)가 있을 때 내게 악의가 있다고 안다.

악의가 없을 때 내게 악의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악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악의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악의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나태와 혼침이 있을 때 내게 나태와 혼침이 있다고 안다.

나태와 혼침이 없을 때 내게 나태와 혼침이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나태와 혼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나태와 혼침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나태와 혼침이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안다.

들뜸과 후회가 없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회의적 의심이 있을 때 내게 회의적 의심이 있다고 안다.

회의적 의심이 없을 때 내게 회의적 의심이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회의적 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회의적 의심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회의적 의심이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법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비구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이상은 5가지 장애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그 다섯 가지 장애 중에 첫 번째가 바로 감각적 욕망입니다.

감각적 욕망은 탐욕입니다.

그러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을 감각적 욕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형상, 소리, 냄새, 맛, 접촉, 생각을 할 때 다양한 형태의 욕망이 일어납니다.

 

누구나 산다는 것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라서

여섯 가지 이상의 다른 감각적 욕망은 없습니다.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욕망이 없을 때는 없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때 감각적 욕망이 없기를 바라거나 없애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단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비단 감각적 욕망뿐이 아닙니다.

다른 장애가 일어났을 때 일어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섯 가지 장애는 와서 보라고 나타난 대상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모두 법(法)입니다.

 

부처님께서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욕망이 있는 것을 안다,

없을 때는 없는 것을 안다. 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하게,

이것 때문에 다른 것을 바라거나 없애려고 하지 않고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순간 이미 있는 것은 소멸하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훌륭한 정공법(正攻法)이기 때문입니다.

애써 다른 방법을 끌어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대상을 제거하는데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있을 때는 있는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