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2. 사종연기 - 4) 육대연기(六大緣起)

通達無我法者 2007. 4. 11. 17:16



육대연기(六大緣起) 





네 번째 가서 육대연기(六大緣起)라. 육대라는 이것은 밀교에 있습니다. 밀교도 요새 무슨 '탄트라'나 그런게 아니고 순수밀교라는 것은 아주 귀중한 가르침입니다.


육대란 이것은 땅기운, 물 기운, 불기운, 바람 기운, 또는 텅 빈 공 기운, 마음기운입니다. 그냥 우리 눈에 보이는 땅기운, 물 기운, 불기운, 바람 기운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의 성품(性品)으로 해서 기운입니다.

진여불성 가운데는 성품으로 해서 무한의 성품이 있지마는 대개 여섯 개의 속성으로 나누어서 생각합니다.


영생불멸(永生不滅)하는 에너지 가운데는 모든 것을 굳게 만드는, 고체를 형성시키는 그런 땅기운도 있고, 모든 것을 윤택하게 만드는 물기운도 있고, 또 산소와 같이 모든 것을 다습게 만드는 불기운도 있고, 또는 모든 운동에너지 즉, 동력인 바람기운도 있고, 그리고 끝도 갓도 없는 텅 빈 모든 존재의 공간성인 공기운도 있는 것이고, 그 모두의 근본이 바로 마음기운 식()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일체 존재라는 것은 이와 같이 본래 진여불성이 갖추고 있는 그런 땅기운, 물 기운, 불기운, 바람 기운 또는 빈 기운 또 마음기운 이런 것이 어울리고 어울려서 존재가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육대 역시 진여불성, 여래장 가운데 다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알으셔야 바르게 보는 것이고 우리 마음이 안심이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떠한 것이나 내가 지금 당장 교통사고를 만나고 지진을 만나서 선지피를 뚝뚝 흘리고 죽어 가는 그런 마당에도 역시 지금 내 존재가 진여불성에서 잠시간 이렇게 모양을 나툰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바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생각할 때에 모양을 나툰 존재 이것은 사실은 실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몸뚱이는 앞서 말씀과 같이 세포로 구성된 허우대뿐인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신진대사해서 변화무상한 것입니다. 따라서 정확히 본다고 생각할 때는 어느 한 동안도 고유한 내 존재는 없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고유한 존재가 없다고 생각할 때에 바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말한다 하더라도 결국 이대로 다 공()이란 말입니다. 일초 전과 일초 후의 내 세포가 같지를 않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어리석어서 상속되는 찰나를 보지 못하고 이 몸뚱이 이대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우리가 엄격히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일초 전과 일초 후가 같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원리에서 부처님께서 제법(諸法)이 공()이다. 모두가 다 비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법이 공이다. 색즉공(色卽空)이라. 물질이 바로 공이란 것입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우리 불교 하시는 분들은 수천 번 수만 번 하시겠지요. 그래도 그 물질이 공()이라는 것을 잘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이 생기면 거기에 얽매여가지고 허물을 범하고, 누구한테 뇌물(賂物)도 받고, 또 비리(非理)도 저지르고 하는 것입니다.


물질(物質)이라는 것은 고유(固有)한 것이 아닙니다. 시시각각으로 변동해 마지않는 이것은 그야말로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무상이라는 것은 항상(恒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전변무상(轉變無常), 변화무쌍(變化無雙)이라. 모든 물질은 변화무상(變化無常)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내 몸뚱이요, 그런 것이 물질이요, 그런 것이 감투요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연 따라서 남들이 양보해서 추대하면 감투를 써도 그때는 무방하겠지요. 감투를 써도 조금도 집착을 말고 인연이 다 되면 선선히 물러나서 용퇴를 한단 말입니다.

이래 되면 사회가 참 편할 것인데 종교인들도 무슨 감투를 써 놓으면 한 곳에만 붙어 가지고 지내려고 한단 말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가 다 진여연기란 연기법을 몰라서 그럽니다.


이것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살기가 참 편한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손해가 없단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장에 죽어 나간다 하더라도 인연 따라서 어차피 죽을 자기 몸뚱이 집착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나투지만 실로 온 것이 아니고 인연 따라서 사라지지만 참으로 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본래 진리 그대로 순수 생명 그대로인 것입니다. 오고 감이 없지 않습니까. 그림자 헛것을 잘 못 보고 생사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람 따라서 물에서 파도가 일어나 바람이 자면 다시 물로 돌아가듯이 이치가 똑같은 것입니다.


영생불멸(永生不滅)한 진리(眞理)에서 왔다가 다시 진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래 고향(故鄕)으로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것뿐인 것입니다.

성인(聖人)들은 그렇게 보기 때문에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한단 말입니다. 예수가 죽음을 두려워했습니까. 석가가 두려워했습니까.

순교(殉敎)하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생각으로 하는 것입니다. 멋도 모르고 하는 사람도 더러는 있겠지만 보통은 다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찮은 그런 눈에 보이는, 사실은 있지도 않는 것 때문에, 내 몸뚱이나 물질이나 감투나 사실 이것은 허망한 것인데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 생명을 오염(汚染)시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업감연기(業感緣起)나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은 불교 기본적인 책을 보시면 정확히 아실 수 있습니다.


업감연기 이것은 번뇌(煩惱)라는 혹()을 일으키고 거기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 행동이나 말이나 뜻으로 해서 업()을 짓고 그래서 인생고(人生苦)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내야 인생고도 우리가 지어서 받습니다. 과거 전생이나 금생이나 번뇌 때문에 행동을 바르게 못해가지고 업을 짓고 고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 원망(怨望)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애매하게 받는다. 내가 무던히 착실하게 살았는데 저 사람이 나를 비방(誹謗)한다. 그 생에 안했으면 과거 전생에 자기가 꼭 그렇게 받을 만한 짓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고 적어도 이 인연을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남을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하물며 더 나아가서 이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라. 모두가 본래는 다 부처님이 아닌가. 일체존재가 부처님이 아닌가. 부처님한테서 잠시간 인연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모양이 되었다가 다시 부처로 돌아간다. 지옥으로 가고 어디로 간다 하더라도 잠시간 가는 것이지 종당에는 다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일체중생(一切衆生)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모든 중생에 다 부처가 들어 있는 것이고 본래불(本來佛)인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일체중생(一切衆生) 개당작불(皆當作佛)이라. 본래가 부처이기 때문에 종당에는 몇만생을 헤맨다 하더라도 다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심(安心)하고 살아야 그래야 안심법문(安心法門)이 됩니다. 지금 기본적인 문제를 알아두시면 나중에 제가 새삼스럽게 말씀을 드리지 않더라도 복사되신 것을 보시면 다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남을 위해서 법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자기가 하는 것은 수월한데 듣는 것은 괴로우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연이 그렇게 되었으니까 제가 주로 말씀을 하게 됩니다. 불교가 복잡하고 어려운 법문이라고 다들 그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인 것이고 오천권 이상이 되는 불교경전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다 독파할 수는 없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참선(參禪)한다고 애쓰고 불경도 그때그때 봤으나 어떻게 그걸 다 자세히 봤겠습니까. 중점적으로 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일반 분들은 체계있게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20년 좀 넘어서 승려가 되었지만 이래저래 고생고생 하고 한 15년 남짓 지나서 40이 되니까 비로소 좀 갈래가 잡힌단 말입니다. 여기 가서 묻기도 하고, 저기 가서 묻기도 하고, 토굴에서 혼자 지내기도 하고, 고생고생 하고 난 뒤에사 조금씩 불경을 봐도 그때야 물리가 익어진단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맨 처음 불교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어렵게 생각이 되시겠구나 하고 동정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이번 법회(法會)도 이와 같이 마련한 것입니다.

사실 경험자들이 간추려서 말씀해버리면 도움이 되시는 분들은 상당히 도움이 되시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