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교상과 수행론의 변천] 제6절 달마대사의 이입사행론 - 1. 리입

通達無我法者 2007. 4. 20. 17:12

 

 

 


     제6절 달마대사의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이입(二入) 법문은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이나 또는 달마(菩提達磨 Bodhi Dharma ?∼528) 대사의 소실육문(少室六門)에 있는 법문입니다.

   앞에서도 말씀한 바와 같이 관심론(觀心論) 법문은 굉장히 소중한 법문으로 종전에는 달마 스님이 지었다고 한 것인데, 근래에 와서는 신수 대사가 지었다는 연구도 나와 있으니 우리로서는 진실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마는 아무튼 이 리입(理入), 행입(行入)만은 달마 스님께서 역설한 소중한 법문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 리입 (理入)

 


이入理入行入을말함(金剛三味經上, 達磨少室六門)

理入를 빌어() 하면 一切衆生 同一眞性임을 할수 있으客塵妄想에가리어 나타나지 못한다. 만약 하고 眞에 하면 聖凡等一하여 寂然無爲함을 理入이라한다.

 


   이입(二入)이란 리입(理入)과 행입(行入)을 말합니다. 리입(理入)이란 이치로 해서 먼저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하고 행입(行入)은 행으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달마 스님이나 또는 어떠한 도인들이나 먼저 이론적인 이른바 해오()를 먼저 앞세웠습니다. 먼저 이치를 앞세웠다는 말입니다. 이치를 먼저 알아야 바른 행을 할 수가 있겠지요.

 

   저 유명한 아인슈타인(Einstein,Albert 1879∼1955)도 자기 제자인 하이젠 베르크(Heisenberg,Wemer Karl 1901∼)에게 "먼저 이론이 있어야 참다운 실험을 할 수가 있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사실 어떤 기술이라든가 실험도 역시 정확하고 정밀한 이론이 확립되어야 참다운 실험이 됩니다. 어떤 분야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도리도 이론적인 것이 먼저 확립이 되어야 합니다. 이치를 잘 모르면 우리가 닦는다 하더라도 많은 힘을 낭비하게 됩니다.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자기 행법(行法)이 자기 품성과 안 맞는 길을 그냥 어거지로 정진할 때는, 그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나을지는 모르겠지마는, 자칫 몸도 무리가 오는 것이고 공부가 굉장히 더디어서 자기 스스로 생명의 낭비를 하는 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정확히 바른 체계를 세워 가지고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리입(理入)은 "교()를 빌어서 종()을 즉 종지(宗旨)를 깨달으면 일체 중생과 우주만유가 바로 동일한 불성(佛性)임을 통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객진(客塵)인 번뇌 망상에 가리어 나타나지 못합니다. 만약 망상을 버리고서 진()에 돌아가면, 성범(聖凡)이 등일(等一)하여, 평등일여(平等一如)하여 적연무위(寂然無爲)함을 신해(信解)함을 리입(理入)이라 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아무튼, 우리 불교 술어는 모두가 다 허투로 아무렇게나 붙인 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합리적인 것입니다. 객진(客塵)이란 어째서 번뇌를 하필이면 손객()자 객진이라 했는가? 이른바 번뇌의 별명이 진()인데, 우리가 사는 세계는 번뇌에 때묻은 세계라고 해서 진계(塵界)라고 하는데 이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객진이라 하는 것입니다. 본래 법성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란 말입니다. 중생이 잘못 보아서 허환상(虛幻相)을 내는 것이지 번뇌가 본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는 일미평등한 청정무구한 진여불성의 청정법계인데 우리 중생이 범부의 소견으로 분별할 때 티끌 같은 환상이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분명히 느끼고 마땅히 이런 자리에다 마음을 두고서 설사, 남을 꾸중하더라도 진심(瞋心)이 치성하지가 않고 남에게 베풀 때도 역시 상을 안 내는 무주상(無住相)보시가 될 수가 있겠지요. 물론 범부야 아직 법성과 하나가 못되었으니까 온전히 무주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선 리입(理入)으로, 하나의 도리로 귀일(歸一)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치는 쉬워도 앞서 말씀한 바와 같이 기도나 참선을 해서 마음이 어느 정도 정화되지 않으면 확신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문(無門慧開 1229 無門關著)선사가 무문관(無門關)에서 말씀이, 공부 정진할 때 "구구순숙(久久純熟)이면" 오랫동안 순수히 닦을 때는 "자연내외 타성일편(自然內外打成一片)이라"고 했습니다. 염불이나 주문이나 화두나 애쓰고 지속적으로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닦아 나갈 때는, 자연히 우리 마음 속에나 밖에나 모두가 다 하나로 통일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된 때라야 비로소 "모두가 다 비었구나, 모두 하나구나" 하고 진정으로 확신이 서는 것인데 그러기 전에는 이치로는 "그렇겠거니" 하지만 "정말 그렇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우리가 참선이나 기도나 공부로 해서 하나의 자리를 "진정 그렇구나" 할 수 있는 정도로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론적인 것이 확립이 되면 다음은 행입(行入)입니다.